brunch

무시무시한 택배

무조건 머리를 조아립니다

by 서지현

나의 소박한 바람이란 그저 시원한 가을무를 맛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친정집 저장창고에서 가을무 몇 개가 발견됐는데 놀랄 만큼 상태가 좋다는 것이 최근 엄마가 전해 온 말이었다. 아삭 달큼한 가을무의 맛이란 퍼석하고 도통 시원한 맛이 없는 여름철 무에 비할 바가 아니잖나. 그런 가을무를 당장이라도 맛볼 수 있다는 기대에 나는 두 귀가 번쩍 뜨였다.

"그거 나 좀 보내줘, 엄마. 소고기뭇국 끓여 먹고 싶네."

그리던 맛을 향한 나의 단순한 일념이 생각지 못한 파장을 일으킬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쾅 쾅.

"택배 두고 갑니다."

거침없는 노크에 택배 기사님의 우렁찬 음성이 메아리쳤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에도 택배사의 비대면 배달은 여전했는데 우리 집만은 종종 예외였다. 친밀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로 우리 집 주소까지 정확히 기억해 내는 기사님은 우리 집 앞으로 온 물건이 무겁다 싶으면 경비실에 맡기지 않고 손수 문 앞까지 날라다 주시곤 했 것이다.



택배 수령을 알리는 굉음에 나는 정신이 바짝 났다. 아차, 싶었던 것이다. 역시나 현관문 앞에는 강렬한 포스를 내뿜는 상자 하나가 보란 듯이 앉아 있다. 크고 짱짱해 뵈는 상자는 금방이라도 폭파될 듯 온몸이 불뚝하다. 요새 말로 잔뜩 성난 몸매다. 보나 마나 이번에도 꽉 채운 20킬로짜리겠지. 언젠가 엄마가 전화통화로 '20킬로가 조금만 넘어가면 절대 안 받아주는데 아슬하게 19.8킬로인 거 있지. 이게 다 채소라 오늘 출발 못하면 큰일이고, 그렇다고 뺄 건 하나도 없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몰라' 하시던 게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울 엄마는 이번에도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쓸어 담고는 심사대 같은 저울 앞에서 또 한 번 가슴을 크게 쓸어내리셨으리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 배를 갈랐다. 여름 채소를 가득 품은 꾸러미는 가짓수가 예사롭지 않다. 밭에서 막 뜯어 올린 채소들이 아직 숨을 쉬는지 봉지마다 훈훈한 습기가 서려 있다. 가지 12개, 오이 10개, 대파 한 단, 고구마순 한 무더기, 그리고 대망의 가을무가 4개. 분명 4인 가족이 먹을 건데 급식 재료만큼 양이 많은 건 왜일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봉지를 다 드러내니 꼬투리를 입은 동부콩이 상자 밑바닥에 빼곡히 깔려 있다. 역시나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고 야물게 공간을 채워 낸 울 엄마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것은 가장 완벽에 가까운 테트리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가슴은 크고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느낌이다. 가을무에 제대로 홀려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렸던 게 아니고 뭔가. 지금 내 처지에 앞뒤 재지 않고 덜컥 택배를 수락한 게 어디 작은 일일까. 시골 엄마의 택배 스케일을 알면서. 실은 이틀 후면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데.




늘 그렇듯 부모의 사랑은 한도초과요, 택배 꾸러미는 그것의 여실한 부산물이다. 친정집 택배는 언제나 받는 사람이 아닌 보내는 사람 본위다. 원하는 대로 종류를 고를 수 없고 양도 조절 안 되며 불시에 도착하기 일쑤인 부당한 택배인 것이다. 이처럼 버겁고 다루기 힘든 선물 보따리 앞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택배꾸러미야말로 노부모가 자기 자녀와 손주에게 보내오는 사랑의 총체니까.


내가 치러내야 할 한판의 냉장고 테트리스. 여행 갈 채비보다 훨씬 다급하고 중한 일 앞에서 나는 양팔을 걷어붙였다. 집을 비운 사이 채소가 상하거나 무르지 않도록 물성에 맞게 손을 봐야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어마한 부산물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갈무리해야 한다.



가장 설레고 기쁨에 찬다는 언박싱의 순간, 그러나 나는 때때로 두렵다. 반복해 말하지만 나는 그저 시원한 국물이 우러나는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사진 출처: pixabay

keyword
이전 02화뫼비우스의 집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