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정집 저장창고에서 가을무 몇 개가 발견됐는데 놀랄 만큼 상태가 좋다는 것이 최근 엄마가 전해 온 말이었다. 아삭 달큼한 가을무의 맛이란 퍼석하고 도통 시원한 맛이 없는 여름철 무에 비할 바가 아니잖나. 그런 가을무를 당장이라도 맛볼 수 있다는 기대에 나는 두 귀가 번쩍 뜨였다.
"그거 나 좀 보내줘, 엄마. 소고기뭇국 끓여 먹고 싶네."
그리던 맛을 향한 나의 단순한 일념이 생각지 못한 파장을 일으킬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쾅 쾅.
"택배 두고 갑니다."
거침없는 노크에 택배 기사님의 우렁찬 음성이 메아리쳤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에도 택배사의 비대면 배달은 여전했는데 우리 집만은 종종 예외였다. 친밀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로 우리 집 주소까지 정확히 기억해 내는 기사님은 우리 집 앞으로 온 물건이 무겁다 싶으면 경비실에 맡기지 않고 손수 문 앞까지 날라다 주시곤 했던 것이다.
택배 수령을 알리는 굉음에 나는 정신이 바짝 났다. 아차, 싶었던 것이다. 역시나 현관문 앞에는 강렬한 포스를 내뿜는 상자 하나가 보란 듯이 앉아 있다. 크고 짱짱해 뵈는 상자는 금방이라도 폭파될 듯 온몸이 불뚝하다. 요새 말로 잔뜩 성난 몸매다. 보나 마나 이번에도 꽉 채운 20킬로짜리겠지. 언젠가 엄마가 전화통화로 '20킬로가 조금만 넘어가면 절대 안 받아주는데 아슬하게 19.8킬로인 거 있지. 이게 다 채소라 오늘 출발 못하면 큰일이고, 그렇다고 뺄 건 하나도 없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몰라' 하시던 게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울 엄마는 이번에도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쓸어 담고는 심사대 같은 저울 앞에서 또 한 번 가슴을 크게 쓸어내리셨으리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 배를 갈랐다. 여름 채소를 가득 품은 꾸러미는 가짓수가 예사롭지 않다. 밭에서 막 뜯어 올린 채소들이 아직 숨을 쉬는지 봉지마다 훈훈한 습기가 서려 있다. 가지 12개, 오이 10개, 대파 한 단, 고구마순 한 무더기, 그리고 대망의 가을무가 4개. 분명 4인 가족이 먹을 건데 급식 재료만큼 양이 많은 건 왜일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봉지를 다 드러내니 꼬투리를 입은 동부콩이 상자 밑바닥에 빼곡히 깔려 있다. 역시나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고 야물게 공간을 채워 낸 울 엄마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것은 가장 완벽에 가까운 테트리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가슴은 크고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느낌이다. 가을무에 제대로 홀려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렸던 게 아니고 뭔가. 지금 내 처지에 앞뒤 재지 않고 덜컥 택배를 수락한 게 어디 작은 일일까. 시골 엄마의 택배 스케일을 알면서. 실은 이틀 후면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데.
늘 그렇듯 부모의 사랑은 한도초과요, 택배 꾸러미는 그것의 여실한 부산물이다. 친정집 택배는 언제나 받는 사람이 아닌 보내는 사람 본위다. 원하는 대로 종류를 고를 수 없고 양도 조절 안 되며 불시에 도착하기 일쑤인 부당한 택배인 것이다. 이처럼 버겁고 다루기 힘든 선물 보따리 앞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택배꾸러미야말로 노부모가 자기 자녀와 손주에게 보내오는 사랑의 총체니까.
내가 치러내야 할 한판의 냉장고 테트리스. 여행 갈 채비보다 훨씬 다급하고 중한 일 앞에서 나는 양팔을 걷어붙였다. 집을 비운 사이 채소가 상하거나 무르지 않도록 물성에 맞게 손을 봐야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어마한 부산물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갈무리해야 한다.
가장 설레고 기쁨에 찬다는 언박싱의 순간, 그러나 나는 때때로 두렵다. 반복해 말하지만 나는 그저 시원한 국물이 우러나는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