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두고 보는 식물 가운데 고구마순만큼 잘 자라는 식물을 보지 못했다. 더없이 작은 몸에서 새순을 부지런히 피워내며 쭉쭉 줄기를 뻗어 올리는 품새가 볼 때마다 당차고 멋스럽다.
고구마를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지난겨울 끝자락 집안의 서늘한 기운을 피해 고구마 상자를 주방 한 구석에 두었던 것인데, 통풍이 안 되었던 탓인지 몇몇 고구마에서 보랏빛 싹이 보였다. 그대로 두면 걷잡을 수 없겠다 싶어 아쉬운 대로 크기가 적당하고 몸이 매끈한 고구마 한 알을 골라 물을 채운 화병에 꽂아두었다.
그날로부터였다. 상자 안 어둠에 갇혀 존재감 없이 지내던 고구마 한 알이 밝은 탁자 위로 올라 애정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 아무리 식물 문외한이라도 수경재배의 성공적 시작이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일이라는 것쯤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온전히 식물 제 스스로의 몫이라는 사실까지도. 우리 가족은 마음을 모아 응원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거 없어 뵈는 이 고구마 한 알이 제 힘으로 물속에 한 가닥 가는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하기를. 아이들이 새 생명의 싹을 볼 수 있길 염원하며 고구마에게 '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건 그만큼 고구마 한 알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동안 '순이' 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순이'가 몸을 담근 물을 보면 생명의 움을 틔우려 그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알 수 있었다. 미동 없이 고요하기만 한 물에 뽀글뽀글 귀엽고 작은 수포들이 수없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순이'의 호흡으로 물은 늘 맑았다. 테이블에 앉아 어린 '순이'와 투명한 물을 마주하는 일은 일상의 작은 기쁨이었다.
그러기를 닷새쯤 지났을까? 드디어 '순이'의 자줏빛 단단한 몸에 새하얗고 여린 털 몇 가닥이 수줍게 돋아났다. 평생을 거친 땅속에 묻혀 몸을 키워오다 돌연 찬 물이라는 낯선 터전을 만난 그가 드디어 새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작은 존재의 생명에의 강한 의지와 집념 앞에 나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날로 '순이'는 나무처럼 쑥쑥 키를 키웠다. 그의 생장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동화 <잭과 콩나무> 속 콩나무와 견주고픈 마음이 일 정도였다. 딸아이는 일기장에 '순이가 나보다 많이 먹고 잘 큰다'라고 썼다. 어린아이조차 고구마의 빠른 생장을 의식할 정도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화병에 부지런히 물을 채워 주는 것과 뿌리가 바닥을 치면 깊이가 더한 화병으로 바꾸어 주는 일뿐이었다. 하루는 화병 입구까지 물을 꽉 채우고 외출을 했는데 반나절만에 돌아와 보니 물이 그렇게 심하게 줄어 있을 수가 없었다. 심한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가는 누군가가 '순이'의 물을 '꿀꺽꿀꺽꿀꺽' 그렇게 크게 세 모금 들이켰나 싶을 정도였다.
'순이'는 아래로 마음껏 뿌리를 뻗는 동시에 줄기와 이파리를 한껏 키워냈다. '순이'가 아이비나 스킨답서스쯤 되었더라면 하루가 다르게 길어나는 줄기를 아래로 아래로 멋들어지게 늘어트려 주었을 테다. 그러나 순이의 줄기만는 위로 위로 치켜세워주고 싶었다. 담쟁이나 나팔꽃처럼 덩굴손이 있는 게 아니어서 줄기를 군데군데 테이프로 벽에 고정시켰다. 만세를 하며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보는 '순이'는 과연 어디까지 줄기를 뻗을 것인가? 나는 '순이'의 여한 없는 성장과 꿈을 매일 응원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순이'가 잘 자라주는 우리 집 아이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거짓말처럼 달라져 있는 아이들. 특별한 찬 없이 차려내는 엄마의 소박한 밥상을 받고 이들은 매일 몸과 키를 키운다. 하루라 해 봐야 겨우 몇 마디 주고받을 때가 많은데 그것으로 마음이 자라고 생각이 영근다. 가끔은 그럴듯한 부사를 한두 마디 섞어 어른처럼 품위 있게 말할 때도 있다. 부모로서 이렇다 할 뒷받침이라곤 해주는 게 없어도 즐거이 제 할 일을 찾아 해내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저 혼자 잘 자라주는 '순이'를 보며 종조 미소짓듯,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자주 과분한 행복을 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 내 아이가 품고 있는 모습을 내일은 더는 볼 수 없다는 점이 섧다. 아이들이 이렇게 쑥쑥 자라기만 하다가 너무 빨리 부모 곁을 떠나버릴까 조바심이 난다. 이들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 생각보다 일찍 내줘야 할까봐, 그것이 애가 탄다.
오늘도 '순이'에게 물을 주며 밤새 얼마큼 자라났는지,어느 방향으로 줄기를 뻗었는지 유심히 살펴 본다. 그러고보니 '순이'도 하트 모양 새 이파리를 피워올리며 나에게 부지런히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 사람 뜻대로 안 되는 일 두 가지가 자식과 식물이라던데, 이렇게 기대 이상으로 큰 기쁨을 안겨주는 식물이라니.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