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몸깨나 쓰는 일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어느 것 하나 몸의 힘을 빌지 않는 일이란 없다. 고로 살림을 잘한다는 건 몸을 잘 쓰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체력과 에너지의 한도를 알고 그것을 적절히 배분할 줄 아는 능력. 거기에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임의 낭비를 막고 몸의 피로를 더는 일까지.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살림력과 크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칼에 몸의 힘을 실어
몸 쓰는 게 어렵던 살림 초기에는 칼질에 유독 서툴렀다. 칼질은 칼을 움켜쥔 오른손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손목에 지나치게 힘을 준 탓에 어깨와 손목에 수시로 무리가 갔다. 칼이야말로 온몸에 분산시킨 힘을 활용해 크고 종합적으로 다뤄야 하는 도구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무모하게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뒤론 무엇보다 몸의 균형에 신경을 쓴다. 먼저 양발을 적당히 벌려 무게중심을 잡고 선다. 어깨는 힘을 빼고 툭 떨군다. 몸의 코어를 의식하며 칼에 몸의 힘을 싣는다. 특히 당근이나 무같이 단단한 재료를 다룰 때는 칼을 지긋이 밀며 몸의 힘으로 지나가듯 썬다. 자세가 바르면 칼을 오래 써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정식 교육이나 도제 수업을 거치지 않아도 결국 몸으로 터득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살림이라는 날것의 세계다.
집안일은 유독 고개를 숙이거나 어깨를 구부린 자세로 임할 때가 많다. 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허리를 편 것도, 구부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몇 시간이고 보내게 된다.
언제부턴가 자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몸뚱이를 써야 할 일이라면 몸을 제대로 써서 운동 효과라도 톡톡히 누리자고. 애써 바른 자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막대 걸레질을 할 때는 최대한 허리를 세운다. 바닥에 앉아 멸치나 나물을 다듬을 때도 두 다리를 접는 대신 벽에 등을 기대어 다리를 쭉 편다. 비록 최소한의 스트레칭 수준일지언정 움직임 하나하나를 운동 동작으로 연결시키려 애쓰는 것이다.
조리와 설거지를 할 때는 꼼짝없는 붙박이 자세다. 어깨와 승모근은 굳어 뻣뻣해지고 피가 쏠리는 종아리와 발목은 뻐근하기 일쑤다. 꾀를 내 야구공 하나를 싱크대 발매트 주변에 놓아두었다. 주방에 설 때마다 양발을 번갈아가며 공 위에 얹어 빙글빙글 굴린다. 공을 발 아래 두고 수시로 굴리다 보면 끝날 줄 모르는 주방일도 쉬이 끝이 난다.
결국 몸을 잘 쓴다는 건 자기 몸을 잘 아는 일이다. 몸의 한계를 모르고 살림 의욕만 앞섰다간 얼마 안 가 지치기 십상이다. 매일 무리하지 말고 미리 정해 놓은 분량의 일을 하라는 것이 숱한 살림책의 한결같은 조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조차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 몸의 컨디션이란 게 하루가 멀다 하고 변덕을 부리는데다 그마저 스스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날은 살림 의욕이 크게 넘쳤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쉽사리 사그라들고 마는게 사람 마음인 것을.
힘이 남아도는 날은 넉넉히 토마토를 졸여 소스를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매일 일정한 분량의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살림 리듬을 타는 일이다. 내가 꾸리는 살림이 네 박자 살림이라면 '강- 강- 강- 강', 혹은 '중- 중- 중- 중' 강세로 장단을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힘 빼고 '약- 약- 약- 약'을 고수하기엔 집안 살림이 제대로 굴러갈 것 같지 않다. 차라리 '강- 약- 중간- 약' 이라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귀에 익어 편안하게 와닿는 이 네 박자 강세가 반드시 오선지 악보에만 적용되리란 법은 없으니.
의욕이 샘솟는 날은 마음껏 일하고, 몸과 마음이 의기소침할 땐 한 박자 쉬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형편에 따라 유연하게 살림을 꾸려나갔고 서서히 나만의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기운이 조금 달리는 날엔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에만 겨우 힘을 썼다. 간신히 누울 자리만 마련해 발을 뻗었다. 당장 손을 대지 않아도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크게 지장 없는 일들과 자잘한 살림의 의무쯤 과감히 내려놓기로 했다.
반대로 에너지가 남아도는 날은 조금 무리해서 집안을 돌본다. 대야에 비눗물을 넉넉히 풀어 때가 꼬장꼬장 낀 양말을 문질러 빨고, 오래 벼루어 오던 운동화도 몇 켤레 담근다. 식구들이 깊이 잠든 시각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밑반찬을 만들 때도 있다. 내친 김에 멸치육수도 한가득 우리고 요리에 자주 쓰는 토마토 소스도 넉넉히 쟁여 둔다. 그런 날은 파도파도 식재료가 꿰어져 나오는, 화수분 같은 냉장고 앞에서 웃음이 픽 난다. 어쩌면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어 두고 싶은 내 마음을 쏙 빼닮은 것만 같아서.
살림을 살면서 나와 내 몸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의욕에 넘쳐 일하는 날보다 몸을 사리는 날수가 늘어간다는 점만은 조금 서글프다. 그러다 어느 날 '강- 약- 중간- 약'의 강세를 가지고 경쾌하게 리듬을 타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날의 살림 공백은 무엇으로 메꾸어야 할까. 그것은 고상한 말로는 '살림의 지혜'일 테고, 속된 말로 하자면 '꾀부리기' 쯤 되리라 본다. 몸을 부지런히 쓰다 보면 살림 사는 요령과 지혜가 늘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