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떠나는 여행

(1) 단양으로 떠난 여행(2019년 12월)

by 서지현
단양 충주호, 겨울 찬기운에 얼어붙다


남편이 휴가날을 받아왔다며 의기양양해서는 묻는다.

"어디로 떠나면 될까?"

마치 다음날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의 천진한 표정이다. 아, 그새 때가 된 건가. 어린아이 둘을 이고 지고 어디로든 훌쩍 뜨지 않으면 안 되는, 결코 달갑지 않은 바로 그 시기가.



여행, 언젠가부터 '숙제'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불편함을 꾹 참고 치러내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 아이가 생기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 여행에 관해서라면, 까놓고 말해 설레기는녕 버거운 마음이 앞선다.



여행은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여행지로 발길을 떼기 전 준비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한껏 마음을 부풀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여행 앞에서 난 아이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하기는커녕 도리어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만다. 속사정은 따로 있다.





단양 새한서점을 찾아



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은 '일상의 부재'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에 여행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일상에서는 자잘한 삶의 의무로부터 놓여나기 어렵고, 일이 반드시 뜻대로 되지만은 않으며, 때로는 예측 못할 일들이 일어나는데 반해 여행 중에는 '삶에 대한 통제력을 온전히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이란 대개가 여행자의 주관과 그가 짜낸 계획 안에서 순적하게 굴러가게 마련일 테니까.



그러나 아이를 동반한 여행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여행지에서 벌어질 일들에 관한 통제력을 온전히 획득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의 연령과 기호에 따라, 혹은 그날그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여행 경험의 내용과 질이 크게 달라진다. 게다가 어린아이일수록 돌발상황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



우선 먹거리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기는 느낌이다. 아이에게 제 손으로 밥을 지어 먹이는 일만큼 안심되고 흐뭇한 일이 또 있을까? 집을 떠난 엄마는 여행지에서조차 삼시 세 끼를 고민한다. 누군가는 메뉴의 선택지가 다양한 여행지에서 신나는 일이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도리어 난 그러한 예측불가능한 상황과 임의성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잠자리도 쉽지 않다. 숙소를 바꾸어가며 움직여야 할 때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온습도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아이들은 쉽사리 감기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잠자리가 신경 쓰이는 부모는 여행지에서 수시로 잠을 뒤채곤 한다.




단양 빛축제, 수양 개빛터널에서


여행에 대한 통제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대개는 여행의 경험을 축소하는 방편을 취하게 된다. 일종의 타협안이다. 아이 위주로 숙소를 잡는다.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거리도 제한한다. 부부의 취향과 바람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유원지나 시설물을 염두에 둔다. 어른의 눈높이에 맞는 관광지에 들르면 아이는 다짜고짜 치고 들어온다. "근데, 난 여기서 뭐해요?"



엄마인 나도 똑같이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엄만 여기서 뭐해?"라고. 브롤스타즈 캐릭터나 카봇의 변신로봇을 보며 멋지다고 억지로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일만큼이나 맥 빠지고 지루한 일들이 여행지에도 허다하다. 아이가 가장 환호하고 즐겨하는 볼거리가 실은 부모에겐 전혀 구미에 당기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녀석은 알까, 모를까.



이를테면 한겨울의 워터파크 같은 것. 단양 여행 중 굳이 한 가지 일을 꼽아 말하자면 그렇다. 몸의 기운이 펄펄 끓는 아이들이 계절을 잊고 물놀이장을 휘저을 때 난 온탕에만 곱게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상태로 장시간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스스로 열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온탕을 빠져나와 억지로 몸을 움직여댔다. 그날은 정말로 울고 싶었다.





부루마블 게임으로 세계일주 하던 날


집에서 아이는 부모가 한가해 보인다 싶으면 <부루마불> 판을 깐다. 세계 일주 보드게임이다. 그러나 시작했다 하면 기본이 한 시간이라 매번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때마다 여행을 꺼리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한 맘이 들곤 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아이야말로 가상의 여행조차도 한없이 즐거워하며 환호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가짜 여행일 망정 아이는 나라와 수도를 익히고, 땅을 사고 팔 줄 알게 되었으며, 돈을 셈할 줄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는 여행을 통해 여러모로 성장해온 것이다.



남편을 실망시킬 수도 없는 노릇. 며칠간의 휴가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반년을 묵묵히 달려온 그가 아니던가.



싫은 내색을 할 게 아니라 엉덩이를 스스로 가볍게 해야만 했다. 나름의 의식을 치러서라도. '익숙한 나'로부터 벗어나고 '일상의 루틴'과 작별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 비록 남들처럼 낯선 곳으로의 여정 앞에서 절로 마음이 부풀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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