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엄마와 요구르트 아줌마

플레인으로 주세요

by 서지현

그는 대파가 참 맛있다고 했다. 쫑쫑 썬 파를 넣지 않은 사골국은 어쩐지 잘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파의 푸른 대보다는 흰 대가 훨씬 맛있단다. 그런 그에게 난 '흰 대가 맛은 좋을지 모르지만 영양은 초록 대가 훨씬 더하다'라고 말해주었다.



오물오물 딸기를 씹던 그가 난데없이 말했다.

"딸기에서 깨소금 맛이 나네."

"설마, 딸기에서?"

"이것 좀 봐. 딸기 씨 있잖아. 여기서 깨소금 맛이 나."

눈을 새로 뜨고 보니 정말로 딸기에 깨소금이 콕콕 박혀있다. 딸기의 재발견이다. 누구나 딸기의 새콤달콤한 과육의 맛은 쉽게 즐기지만 씨를 씹을 때 터져 나오는 고소함과 질감을 음미하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는 치킨무는 너무 맛이 세다며 손사래를 친다. 다만 도톰하게 썬 무를 쌀에 얹어 무밥을 짓고 간장 한 숟갈 , 들기름 한 숟갈 둘러주면 세상 맛있게 먹는다. 단맛이 오른 가을무로 쇠고기 뭇국이나 오징어 뭇국을 끓여주면 '무를 너무 익히면 맛이 없으니, 앞으로는 살캉하게, 살짝만 끓여달라'라고 주문한다. 가을무는 원체 잘 익는 성질이 있으므로 무조림을 하거나 국을 끓일 때 불에 오래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했던 여름 무더위가 사그라들고 가을 찬바람이 코끝에 스치기만 해도 그는 대번 '청국장이 당긴다'라고 한다. 겨울철, 구뜰한 시래기밥을 지어주거나 시래깃국 한 그릇이면 다른 반찬은 찾지도 않는다. 태생은 서울 놈인데 입맛은 완전 토종이다.



70대 노인의 입맛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다름 아닌 우리 집 아홉 살 꼬마 녀석이다. 그리고 아이의 배후에는 꼰대 엄마가 힘겹게 버티고 있다. 먹거리에 있어서만큼은 한결같이 꼰대 짓을 하는, 조금 별난 엄마다.





우리 동네에서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인기 절정이다. 요구르트 빛깔을 연상케 하는 유니폼을 입고, 꼭 같은 색깔의 커다란 카트를 끌고서 동네 방네 쓸고 다니시는 분. 카트 속에는 '유산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많은 단것들이 들어있다.


언제나 큰 웃음을 띄며 아이들을 예뻐하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 정 많고 사람 좋은 그 분을 나 역시 아주 많이 좋아한다. 놀이터에서 실컷 뛰놀고 힘겹게 걸음을 떼는 아이를 보시면,

"태워줄까?"

하시고는 전동차에 아이를 얹어 집까지 바래다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아이도 귀갓길에 아주머니를 만나면 얼굴이 환해진다.



"메치니코프 플레인으로 두 개 주세요."

"메치니코프? 맛없어요. 떠먹는 요플레가 나을 텐데?"

일침에 나의 주문이 거절됐다. 메치니코프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맛없다'는 아주머니의 단호한 평가에 '떠먹는 거'를 사달라고 성화다.

"그럼 플레인으로 주세요."

화가 났지만 꾹 참고 한 발 물러섰다.

"아이고 엄마, 애들한테 왜 자꾸 맛없는 걸 먹이려고 해요. 기왕 먹이는 거 맛있는 걸로 사줘야지."

하며 까끄름한 눈으로 날 바라보신다. 그러더니 엄마의 뜻에 상관없이 '골라 골라' 한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딸기 맛, 블루베리 맛, 복숭아 맛, 아 맞다. 망고도 있지. 뭘로 줄까?"

아이들은 화려한 선택지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져 선뜻 결정을 못 내린다. 엄마는 그 길로 민망한 꼰대가 되어 가만히 서있을 뿐.



평소 아주머니와의 친분 때문에, '엄마가 사주겠다는데 뭘 고르든, 뭘 먹이든 무슨 상관이시냐'라고 매몰차게 굴지 못했다. 말 한마디 못하면서도 큰 권리를 빼앗긴 기분에 속이 부글댄다. 다만 속으로만 크게 외쳐본다.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만든 새콤하기만 한 요플레도 아주 잘 먹는다구요!'





200미리짜리 메치니코프 사과맛(혹은 불가리스)에 우유 4-500미리를 부어두면 쉽게 요플레가 만들어진다. 요즘같이 방안 공기가 훈훈할 때는 하룻밤 새에 걸쭉한 요구르트가 완성되기도 한다. 이걸 보면서 집 밖의 소란과 추위에 상관없이 집안은 이렇게나 아늑하고 따수운 걸, 한다. 집안 온기에 감사하게 된다.



"아주머니, 메치니코프 사과맛 하나랑 우유 큰 거 하나 주세요."

"메치니코프 사과맛이요? 오늘 요구르트 만드는 날이에요?"

"네. 방안 공기가 따뜻해서 그런지 하루 만에도 뚝딱 만들어지더라고요."

"부럽다. 애들이 잘 먹나 봐요. 우리 집 애들은 내가 이렇게 장사를 해도 플레인 맛은 도통 안 먹어요."

"집에서 요구르트 만들어서 과일이나 견과류 뿌려서 주면 엄청 맛있다 해요. 아주머니도 한번 해보세요."

"그래 봐야겠어요. 입맛은 어려서 길들이기 나름이긴 한데..."



평소 떠먹는 요플레든 마시는 음료든 플레인은 잘 팔리지 않아 한 두병씩밖에 안 갖고 다니신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만큼 단 것만 찾는다고. 뜬금없이 헤픈 상상을 해본다. 요구르트 아주머니께서 집에서 요구르트 만드는 법을 아셨더라면, 아주머니 댁 아이들이 플레인도 아주 잘 먹는 입맛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당이 첨가된 과일맛 요플레와 더불어 플레인맛 요구르트도 아주 잘 팔리지 않았을까?





때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외롭고 고되다. 특히 먹거리 분야에서 나름의 소신과 철학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 '입맛을 형성해가는 아이들에게 질 좋은 먹거리를 주어야 한다.'는 가치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크다고 본다.



단맛과 짠맛은 갓난아이라도 아는 맛이다. 모유조차도 단 성분과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맛과 쓴맛은 경험적으로 알아가야 하는 맛이다. 맛에 익숙해지고, 그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아이를 기르는 공동체가, 사회가 힘을 보태준다면 얼마나 수월할까.



단 것을 권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소신을 지키려는 꼰대 엄마 사이에서 줄타기가 이어진다. 아이들이 또래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때때로 그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누구나 다 먹는' 단 것을 어느 정도 허용해 주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겠느냐고 누군가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대다수가 가지 않는 길을 대담히 걸어가는 용기있는 육아의 사례도 필요한 법이다.



다만 우리집 아이들이 바른 입맛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힘이 되어준다. 누군가 손에 쥐어준 사탕을 내려다보며 먹어도 될까 망설이는 우리 아이들보다도, 질 좋은 자연 재료로 만든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받고도 먹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불쌍타.



그나저나 난 언제까지 아이들 입맛을 지키기 위해 꼰대 짓을 하며 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할까? 요구르트 아두머니와는 서서히 화해 중이다. 아이들에게 달고 인위적인 맛을 권하는 이 사회와도 조속한 화해가 이루어져야 할 텐데.



keyword
이전 04화나의 호박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