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 코너를 지나치지 못합니다

두 번 떨어진 과일의 맛

by 서지현


친구들과 함께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노라면 저 멀리 마을 어귀로부터 자전거 한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엄마가 탄 자전거가 틀림없었다. 벌써 엄마가 돌아오실 때가 되었는가. 놀이에 빠져 해 가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이울어 그새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엄마!"

반가운 마음에 일단 엄마를 크게 한번 불렀다. 오빠와 나는 그길로 엄마 자전거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자전거를 샘 곁에 대자마자 뒤편 안장에 실은 마대 자루부터 풀기 바쁘셨다. 뭐가 들었을까. 엄마는 허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끙'하고 한번 앓는 소리를 내더니 가까스로 자루를 끌어내렸다. 제법 무거운 게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배고프지? 여기 앉아서 이거 먹자. 엄마가 과수원 일 마치고 떨어진 거 주워온 거야."

"와, 복숭아다! 엄마, 이거 가져와도 되는 거야?"

"그럼, 나무에 달린 건 따서 주인 드리고, 땅에 떨어진 건 맘껏 주워가라고 해서 엄마가 많이 주워 담아 왔지."



엄마는 자루에 담긴 복숭아를 큰 소쿠리에 우르르 쏟아냈다. 하나같이 모양이 온전치 못한, 깨지고 문드러진 복숭아였다. 엄마는 그중 제일 붉고 성해 보이는 복숭아 몇 알을 골라들고으로 향했다. 복숭아를 씻으려고 샘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엄마의 자세가 어쩐지 어정쩡하고 불편해 보였다.



"엄마, 왜 그래? 다어디 아파?"

"아, 엄마가 복숭아 뒤에 싣고 오는데 자전거가 넘어지는 바람에... 허벅지랑 무릎을 좀 다쳤어. 우리 새끼들 주려고 너무 많이 주워 담았나 봐."

라고 말씀하시며 빙긋 웃으시는데 감출 수 없는 고통이 미소 사이로 가늘게 삐져나왔다.

"어디 봐봐, 엄마."

어린 나는 냉큼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의 들춘 바지 새로 깨진 무릎과 퍼렇게 멍든 허벅지가 드러났다.



우리는 더는 묻지 않고 엄마가 샘에서 대충 씻어주신 복숭아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복숭아 한 알이 가까스로 손아귀에 쥐어졌다. 이미 무를 대로 무른 과일은 껍질이 훌렁훌렁 잘도 벗겨졌다. 한 입 크게 베어 무는데 어쩐지 엄마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조막손 사이로 복숭아 과즙이 주르륵, 내 눈물을 대신해 흘러내렸다. 눈물을 훔치듯 복숭아물을 부지런히 핥다. 엄마에게 슬픈 마음을 들키기는 싫었다.



엄마는 복숭아는 아무리 먹어도 탈이 안 난다며 자꾸만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그날 우리는 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복숭아를 까먹었는지 모른다. 문드러진 복숭아는 달고 시원했다. 어쩌면 두 번 떨어졌을지 모를 복숭아였다. 나무에서 한 번, 우리 엄마 자전거에서 또 한 번.



런 탓일 게다. 나에게 무르고 문드러진 복숭아는 우리 엄마 깨진 무릎이요, 멍든 허벅지다.








엄마의 복숭아 때문인가. 난 적당히 무른 과일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런 과일이 요즘에 와서는 마트 한 편의 알뜰코너나 어느 노점상의 떨이 상품이 되어 팔린다. 흠이 있거나 판매 시일을 놓쳤거나, 어떤 이유로든 구매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게 된 '한 번 떨어진' 과일들이다.



장을 보느라 마트에 가면 알뜰 코너를 지나치지 못한다. 최대한 몸값을 낮춘 채 빠른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성치 못한 과일들, 저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가 하고 낮은 마음으로 가만 들여다다.



5월의 어느 화창한 날이었던가. 그날도 알뜰코너에서 장을 보는데 대략 예닐곱 알이 담긴 토마토 한 팩이 2천 원, 꼭지 부분의 작은 흠집만 빼곤 상태가 썩 괜찮아 보였다. '맛이 생으로 먹기에 마땅찮으면 소스를 만들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진열된 토마토를 전부 집어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내가 사 온 토마토는 일반 토마토가 아니었다. 짧은 한 철만 나고 만다는, 당도 높고 맛이 깊기로 유명한 대저토마토였다. 알뜰 코너에 놓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맛도 신선도도 훌륭했다. 매대 위의 토마토를 전부 사 오길 잘한 일이었다.



대저토마토를 듬뿍 올린 아침 샐러드는 맛깔났다. 토마토의 풍미 덕에 어떠한 드레싱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 토마토는 개성 있는 맛을 지녔으면서도 다른 재료들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낼 줄 알았다. 마토 주스로도 그만이었다. 당 첨가 없이 순수하게 토마토만 갈아낸 주스는 몸의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해소해 주었다. 그즈음 며칠간 아침으로 쑥개떡 몇 장을 쪄내 토마토 주스를 곁들였다. 아니, 토마토 주스에 쑥개떡을 곁들였다 해야 옳은 런지도.





생으로 먹고도 남은 토마토는 집에서 숙성되고 있는 완숙 토마토와 함께 토마토소스를 만들었다. 완숙과 대저 토마토를 반반 섞은 소스는 고추장처럼 색이 고왔다. 이 소스는 파스타 소스로, 케첩 대용으로, 홍합 스튜에 요긴하게 사용될 참이었다. 김치찌개와 카레에도 한 숟갈 넣으면 요리의 풍미가 몰라보게 더해질 테지.



나의 토마토 요리가 썩 괜찮았던 것은 알뜰 코너에서 집어온 토마토가 꼭 상태 좋은 대저토마토라서 였을까? 맛의 비결을 말하라면 그것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 '한 번 떨어진' 과일이 사랑과 정성을 덧입으면 맛이 더해진다. 우리 엄마의 '두 번 떨어진', 그러나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맛을 내던 내 어린 시절의 복숭아처럼.



우리 아이들은 내가 만든 토마토 요리에서 '두 번 떨어진' 과실의 맛을 느꼈을 런지, 때때로 궁금하다.










keyword
이전 05화꼰대 엄마와 요구르트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