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다’, ‘짜다’, 혹은 ‘시다’, ‘쓰다’의 미각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의 세계가 있다. 내게는 시래기 요리가 그렇다.
삶은 시래기를 쌀 위에 올려 지은 시래기밥, 들깨가루를 듬뿍 풀어 끓인 시래깃국,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어 졸여낸 시래기 지짐 등 시래기 본연의 맛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래기에서는 구뜰한 맛이 난다. ‘구뜰하다’라는 말은 ‘변변하지 않은 음식의 맛이 제법 구수하여 먹을 만하다’는 뜻이다. 변변찮은 시래기지만 씹을수록 참맛이 난다. 몸과 마음의 허기 모두를 채워주는 속 깊은 자연의 맛이다. ‘단짠(달고 짠맛)’이 유세하는 시대라지만 구뜰한 시래기 맛을 몰라하는 소리다. 몸에 한기가 들거나 해독이 필요할 때 시래깃국을 잡숴보시라. 이만한 보양식이 없다.
'구뜰한 시래기국이 좋다', 아들이 그리고 엄마가 쓰다
밖에서 실컷 놀던 아들이 땀에 흠씬 젖어 돌아왔다.
"엄마, 나 엄청 배고픈데. 지금 바로 밥 좀 줘요."
라고 말하며 와락 달겨드는 아이, 몸이 후끈 달아올라 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들 머리가 딱 내 가슴께 와있다. 아이 정수리에서 시래기 냄새가 났다. 머릿속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에 흙먼지가 가만히 내려앉아 풍기는 그 냄새가 정겹다. 딱히 싫지 않은 건강한 땀 내음이다.
아이가 돌아오면 목욕탕으로 욱여넣을 참이었다. 그러나 아이 땀내를 맡는 순간 퍼뜩 깨달아졌다. 이 아이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시원한 물 샤워가 아닌 따끈한 밥상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뛰놀며 건강한 땀을 흘리고 돌아온 아이, 엄마 손으로 갓 지어낸 따순 밥 한 공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아이가 시래깃국에 밥을 만다. 그렇게 설설 만 밥이 목구멍에 술술 넘어간다. 고된 막일을 막 끝낸 일꾼처럼 녀석은 그렇게 밥술을 뜬다. 밥 한 술, 한 술이 아이에게는 사치도 여유도 아닌 생존 그 자체다. 놀 때는 배고픈 줄을 전혀 모르겠더란다. 집안에 들어서자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달겨들었던 모양이다.
"엄마, 이 국 너무 맛있다."
밥을 먹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비 온 뒤 하늘처럼 말갛게 개인 얼굴이다. 허기로 조바심을 치던 아이가 어느새 순하고 차분해져 있다.
배고픔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깡그리 잊고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가 기특한 동시에 뒤늦게 깨달아진 허기를 채우느라 또 한 번 큰 싸움을 치르고 있는 아이가 문득 가엾다. 애정과 연민을 동시에 느낀다. 이처럼 소박한 밥상 앞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세상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다.
지금쯤 친정집 앞마당 처마에는 짚으로 엮은 우거지가 매달려 있을 것이다.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서 우거지는 시나브로 시래기가 되어갈 참이겠지. 가을 찬바람이 전해주는 세상사 울고 웃는 이야기를 사방으로부터 전해 들으며.
정수리에서 구뜰한 시래기 내가 나는 아들이 오늘따라 유독 사랑스럽다. 내 아이의 하루에도 많은 사연이 담겨있겠지. 특별하진 않지만 제법 들어줄 만한 그렇고 그런 정답고 소담한 이야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