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본 적 있나요?

병원밥 타령

by 서지현
아이는 때때로 병원밥 타령을 한다


첫째 아이가 여섯 살 때 안과 수술을 받느라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일상에서와 달리 견뎌야 할 점이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 전신 마취를 위해 수술 전날 밤부터 금식이 시작되었다. 수술 이후에도 마취가 완전히 풀리기까지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장장 24시간의 금식이었다.



밥 한 끼 걸러본 적 없는 아이였다. 아이는 수술로 인한 통증보다도 배고픔의 괴로움을 더 크게 호소했다. 마취가 어느 정도 풀리면서부터는 배고픔도 본격화된 모양이었다. 배가 너무 고프다고, 먹을 것 좀 줄 수 없느냐고 측은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린것이 안쓰러워 몇 번이고 담당 간호사를 찾아가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만 앞당겨 죽을 먹이면 안 되느냐 물었다. 그러나 병원의 방침은 칼 같아서 그저 기다리라고만 했다. 아이를 휠체어에 앉혀 병원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처절한 기다림의 끝, 드디어 꿈같은 시간이 왔다.






숟가락을 쥔 아이의 손이 부르릉 떨렸다. 죽을 뜬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는 동시에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 괴었다. 얼마안 가 크다만 눈물이 두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죽 한 술, 또 한 술에 아이는 울음을 참았다 터뜨렸다 했다. 아이는 제 눈물로 간이 된 짭조름한 죽을 말없이 삼켜나갔다. 아이는 그렇게 죽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워냈다.



아이의 식사 모습은 경건했다. 엄마, 아빠, 할머니는 숙연해져서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아이 할머니가 소매로 눈물을 훅 훔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기는 하면서도 친정엄마까지 눈물 바람인 걸 보자니 웃음이 났다.
"아니, 애는 배가 고파 그렇다 치고, 엄마까지 왜 울어요." 했더니,
"사람이 배고픈 게 저렇게 힘든 거여. 배가 고파봐야 안다니깐. 밥이 저렇게 좋은 것을."

하셨다. '배고파 본 적'이 있는 60대 할머니와 6살 꼬마 사이에 순전한 그 무엇이 은밀하게 교감되고 있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아이는 몇 끼니 더 병원밥을 먹었다. 아이는 밥이고 반찬이고 조금도 남기는 법이 없었다. 누가 병원밥이 맛이 없다 했던가. 무슨 음식이든 달게 받는 아이를 보면서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올해로 아홉 살이 된 아이는 병원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엄마, 병원밥이 먹고 싶어."
아이는 배가 고파지면 종종 병원밥 타령을 한다. 심지어 그때 무슨 반찬과 국이 나왔는지를 조목조목 이야기하며 병원 밥을 추억한다. 병원밥 맛의 비결은 아이가 철저히 느낀 ‘공복’에 있지 않았을까, 어림잡아 추측해 볼 뿐이다.






배고픈 아이 곁에서 눈물 바람을 했던 친정 엄마의 냄비밥에 얽힌 이야기다. 친정엄마는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여공 생활을 시작하셨다. 미싱 공장에 취직해 근처에 셋방 하나를 얻어 지내면서 냄비밥을 지어드셨다고.

  


"양은 냄비로 밥을 어떻게 지어요? 금방 타버릴 텐데."

"그러니까 불을 잘 살펴야지. 그때는 연탄을 땔 때라, 불쏘시개 있지? 그거 두 개를 화구 위에 얹어서 냄비를 올리는 거여. 그렇게 지어먹은 냄비밥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양은 냄비’라 하면 솔직히 누가 준대도 안 쓸 물건이다. 다만 라면 끓일 때만은 '레트로 감성' 운운하며 일부러 한 두 번 사용한 적은 있다.

 

 

"그럼 반찬은요?"

"김치가 있잖아. 니 외할머니가 싸주신 거."

"달랑 김치 하나만?"

"그럼. 그것만 얹어 먹어도 얼마나 배부르고 맛있는데. 그 밥을 다 먹고 나면 누룽지 있지? 냄비에 눌은 밥으로 누룽지를 끓여서 뜨끈하게 국물까지 마셔봐. 얼마나 속이 든든하고 좋은지. 그렇게 먹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당게."



김치 외에는 일절 다른 찬이 없는 형편이셨던 모양이다. 점심 도시락조차 냄비밥을 지어 김치만 싸 갖고 다니셨다는 걸 보면.

"아이고, 어떻게 하루 세 끼를 밥에 김치만 먹고 버텨요."

"그러게. 근데 지금에 와서 봐도 신기하고 이상한 게, 그때 그렇게 냄비밥 지어먹고는 살이 올랐다는 거여. 그때 찍은 엄마 사진 본 적 있지? 밥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볼살이 통통하게 오르더라고. 그때 알았지. 이렇게 뜨신 밥에 김치만 먹고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다는 것을."



나로서는 다소 생경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과연 나와 내 아이들은 소박한 밥 한 그릇에 이처럼 감사를 품은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아이를 키우던 방식은 요즘 우리들 육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별도의 예방접종 없이도 큰 병치레가 없었고, 영양소며 균형 잡힌 식단 같은 거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만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유식의 개념도 그다지 또렷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누룽지 닥닥 긁어 먹이거나, 국이나 물에 밥 말아 먹이다가 슬쩍 밥으로 넘어갔다고 한 걸로 보아서는 말이다. 어린아이를 둔 지인이 친정 엄마 앞에서 '아이가 반찬 투정이 심하다'라고 했더니 그녀의 어머니 말씀이, '이것저것 먹이려고 애쓰지 말고 간장에 밥 비벼줘라. 그렇게 해도 잘만 큰다'라고 하시더란다.



그에 반해 오늘날의 육아는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을 요하는가. 이유식 책에는 월령에 맞게 먹여야 할 식재료, 먹여서는 안 되는 재료가 나오고,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된 조리법이 자세하고 친절하게 소개된다. 엄마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판이다.



아울러 아이에게 부족한 영양을 채워준다는 명목으로 간식 먹이는 일에도 큰 공을 들인다. 젖만 빨던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감에 따라 부모는 부지런히 다양한 간식거리를 시도한다. 심지어 시판되는 유아용 과자에조차 ‘+6’ ‘+12’와 같이 월령 표기가 되어 나온다. 내 아이의 월령이 차면 마치 그 과자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이라도 부여받은 것인 양 뿌듯하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물에 밥 말아 먹여 아이를 키웠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가 막혔던 게 사실이었다. 여느 엄마들처럼 똑똑한 육아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젖어 있었다. 지금은 그 옛날과 달리 환경오염도 심하고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기에, 어려서부터 과학적이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영양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아이에게 평생 건강의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게 양육자의 역할이 아니겠느냐고 근거를 대가면서. 



난 아이가 잠시도 허기를 느낄 새 없이 부지런히 간식을 물리기에 바쁜 엄마였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 주지 못한 게 있음을, 죽 앞에서 아이가 흘리던 눈물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공복'의 소중함이었다.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한다.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와 사회의 과잉 보호 속에서 ‘배고픔을 알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자라나고 있다.



분에 넘치도록 먹이는 일보다 절제를 알게 하는 일이 훨씬 어려운 세대임에 틀림없다. 이제 와서 아이에게 그 맛 좋다는 병원밥을 똑같이 지어 순 없지만 적어도 ‘공복’을 아는 아이로 키우겠노라 다짐해본다. 이 담박한 병원밥, 그리고 냄비밥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 앞에서 감사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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