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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Feb 18. 2021

집밥은 시간이다

토마토 떡볶이

토마토떡볶이, 미나리를 곁들여 향긋하게.



떡볶이가 하나의 요리로 추앙받는 시대가 됐다. 교복을 입고 교문을 나선 중고생 무리가 떡볶이집으로 향하는 풍경은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이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라는 고백이 뭇 대중의 강력한 공감을 얻은 것만 보더라도 떡볶이 애호가의 저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확대된 셈이다.



떡볶이를 그저 간식의 범주에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게 사실이다. 주된 양념을 무엇으로 하느냐, 어떤 종류의 부재료를 곁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영양학적으로도 손색없는 한 그릇 음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맛과 영양이 풍부한 데다가 조리가 간편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미덕을 갖추고 있으니 현대인에게 이토록 반갑고도 고마운 음식이 또 있을까.



  



떡볶이의 역사를 훑은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간장 양념을 베이스로 소고기, 버섯, 갖은 채소를 넣어 요리한 궁중떡볶이가 떡볶이 1 시대라면, 6.25 전쟁 이후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간장 양념에 가래떡을 볶아 만든, 오늘날 통인 시장에서 파는 기름떡볶이로 추정되는 떡볶이가 2세대다.



고추장과 설탕 따위를 넣고 끓인, 걸쭉한 국물이 있는 떡볶이가 그 뒤를 잇는다. 그 뒤로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써서 보다 깔끔하고 매운맛을 내는 떡볶이가 탄생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곁에 와 있는 4세대 떡볶이라는 것이다. 떡볶이도 기호라면 당신이 선호하는 떡볶이는 몇 세대의 산물인가?    

 




우리 집에는 간장 베이스의 1세대 떡볶이와 3세대 고추장 떡볶이가 공존해 왔다. 매운맛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는 간장에 마늘, 대파 등을 넣은 양념을 쓰거나 짜장 가루를 푼 달달한 떡볶이를 만들어주고 우리 부부는 고추장에 조청을 넣은 맵고도 끈적한 떡볶이를 즐겨 만들어 었다.



아이들은 시커먼 떡볶이 떡을 야물게 오물거리면서도 넌지시 묻곤 했다.

"엄마, 아빠가 먹는 빨간 떡볶이는 많이 매워?"

남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게 분명했다. 하긴 누가 보더라도 거무튀튀한 놈보다야 밝고 빨간 옷을 입은 떡이 훨씬 탐스러워 보일게 아니냐.

"어, 많이 매워. 애들은 아직 짬찌끄래기(짬)가 안 돼서 못 먹어. 더 커서 짬 되면 줄게."

아빠라는 사람은 사전에도 없는 말을 마구 써가며 아이들 기를 팍팍 죽인다. 매울까 입에는 대지도 못하고 빨간 떡볶이를 마냥 사모하는 어린아이들이 불쌍타. 턱주가리에 시커먼 간장, 혹은 춘장이나 묻히고서 이쪽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들이 별안간 안쓰럽다.



모성애는 이미 발동이 걸렸으니 막지 마라. 아이들 떡볶이를 맵지 않으면서도 빨갛게 만들어줄 순 없는 것일까?







만들어두길 잘했다, 토마토소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고민을 하고 있노라니까 이웃집 지인이 고추장 대신 케첩을 넣어보라고 귀띔을 주었다. 그러나 케첩이 양념의 주가 되면 인스턴트 맛이 강해질 게 뻔하다. 대안은 가까이에 있다. 케첩 대신 토마토소스를 쓰면 될 것이 아닌가.



평소에 기회만 되면 토마토소스를 만들어 둔다. 마치 이탈리아인라도 되는 양 토마토가 풍부한 여름철이면 토마토를 박스 떼기로 사다가 대형 잼팟에 넣고 졸인다. 사계절 마트 알뜰 코너를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헐은 가격에 썩 괜찮아보이는 토마토를 기회 닿는 대로 업어와 소스를 만드는 것이다. 소스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하고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양파 다짐, 파슬리, 바질, 월계수 잎 등을 곁들인다. 그렇게 완성된 토마토소스가 한 병 두 병 냉장고 문쪽에 줄을 서는 걸 보자면 그렇게도 가슴이 뿌듯할 수가 없다.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하는 토마토떡볶이 역시 쉽고 간단하다. 충분한 양의 토마토소스에 고추장 반 스푼(혹은 반의 반 스푼), 배즙, 조청 양념에 쌀떡을 넣고 국자로 둥글게 저어가며 가볍게 끓여주면 된다. 이탈리아산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페이스트를 두어 스푼 곁들이는 게 좋다. 토마토 주산지의 산물로 만든 페이스트 색감이 태양초 고추장 이상으로 붉어 선명한 색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약간의 감칠맛을 원하는 입맛이라면 케첩을 가미하고, 매운 맛을 원한다면 고춧가루를 팍팍 치시라.





토마토떡볶이는 빨갛고 안 매워



"엄마, 이거 맵게 생겼는데 매콤한 맛도 전혀 안 나!"

얼마 전 밥상머리에서 아이들과 단어 '맵다'와 '매콤하다' 어감 차이를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떡볶이가 '전혀 매콤한 맛이 안 난다'는 말은 아이들 입에 전혀 맵지 않다는 뜻이다. 자신감이 붙은 아이들은 떡볶이 한 접시를 가운데 놓고 서로 머리를 맞부딪치며 포크의 난을 벌인다. 마음껏 놀리는 입 새로 쩍 쩍 쌀떡 갈라지는 소리만이 방정맞게 새어 나온다. 빨간 떡볶이를 먹는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라도 된 기분일까? 그 '어른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과 마음이 하냥 흐뭇하다.     



이쯤 해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간장 떡볶이든 고추장 떡볶이든, 심지어 토마토 떡볶이마저도 줄곧 조리가 쉽다고 말해왔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간장, 고추장, 토마토소스, 하나같이 조리와 숙성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양념이 구비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결국, 집밥은 시간이다. 요리의 베이스를 위해 누군가는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앞서 이용한 떡볶이 역사를 다룬 기사는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짓는다. '떡볶이 5.0'은 언제 등장할까. 어떤 맛과 모양으로 진화할지 사뭇 기대된다,라고. 조심스레 토마토 떡볶이를 5세대 떡볶이로 제안해본다. 고추장 떡볶이는 텁텁한 맛을 안고 있는 반면 토마토떡볶이는 끈적이지 않고 보다 깔끔한 맛이다. 오래 두어도 잘 굳지 않아 얼마간 두고 먹을 수도 있다.



국민 간식을 넘어 국민 음식의 대표주자로 우뚝 올라선 떡볶이. 이 위대한 대중 음식을 대하는 데 있어 신분의 고하가 있어서야 될 말인가. 미각이 또렷하고 순결한 입을 가진 아이들이 소외된다면 이보다 서운할 일이 또 있을까. 



아이라도 빨간 떡볶이가 먹고 싶다.  



* 본문에서 언급한 기사의 출처를 밝힙니다.

 <고추장보단 고춧가루 깔끔하게 매운맛 지금은 '떡볶이 4.0'시대>, 조선일보 2019.02.25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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