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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Feb 21. 2021

집밥은 약이다

쑥쑥 크라고 쑥인가 보다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어야 했던 곰과 호랑이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생마늘과 날것의 쑥은 금수가 인간계로 향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관문이요, 일종의 시험대였다. 둘 중 하나가 그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것을 보면 쑥 마늘을 생으로 먹는다는 건 차라리 고행이었을지 모른다.



뜬금없는 상상을 해봤다. 호랑이가 사람 되기를 포기한 시점은 어쩌면 마늘이 아닌 쑥이었을 거라는. 생마늘은 요령을 부리면 그나마 먹을만하다. 남편은 프라이드치킨 위에 빻은 생마늘을 꼭 올려먹곤 했다. "왜 생마늘을 치킨 위에 올려 먹어?"라고 물으면,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눈빛으로 "먹어봐,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이런 식이었다. 속는 셈 치고 와사비를 집듯 빻은 마늘을 젓가락으로 한 꼬집 집어 맛을 보았는데, 세상에나 이런 괜찮은 맛이라니! 생각보다 맵지 않았다. 그 뒤로 치킨을 시킬 때면 생마늘을 두 배 양으로 빻는다.



문제는 쑥이다. 쑥이야말로 쓰고 질긴 나물의 대명사다. 쑥은 달래, 돌나물, 냉이 같은 여타 봄 푸성귀와 달리 생채(생나물)로 먹기가 힘들다. 즐겁게 씹을 만한 식감이 아닌 데다가 쓴 맛이 유독 강해서 함부로 덤빌 수 없는 맛이다. 살림 초기엔 이런 쑥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쑥국을 끓였다가 실패의 쓴 맛을 여러 번 맛보았었다. 한 숟갈 뜬 국이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쓴 맛이 감해질까 싶어 콩가루도 풀어보고 국물 요리에 있어 마법의 가루라는 들깻가루도 넣어봤지만 더욱 이상야릇한 맛이 되어갈 뿐이었다.





우리 아이 아프지 말고 쑥쑥 크라고, 그래서 쑥인갑다


어린쑥으로 쑥국을 끓였다. 땅 위로 쏙 얼굴을 디민 쑥을 친정엄마가 잡풀 새를 뒤져 캐낸 것이라 했다. 아무리 보드라운 쑥이라도 일단 쓴 맛을 다스려줘야 한다. 쑥의 정체를 알고난 후, 이제는 쑥의 쓴맛을 제거하면서 향미를 살리는 데 요리의 주안점을 둔다. 애초에 사람으로 난 이상 수련의 대상으로 쑥을 대할 이유란 없으니까.



쑥국을 끓이기 전에 먼저 쑥을 빤다. 일년에 두어번 끓이는 쑥국이지만 그것을 위해 전용 빨래판을 가지고 있다. 깨끗이 세척한 쑥을 판에 대고 치댄다. 섬유질이 너무 뭉개지지 않도록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몸을 둥굴리며 이리 저리 부대낀 쑥은 풀이 죽으며 색이 검어진다. 쑥의 본래 빛깔보다 더 검은 쑥물이 흥건하게 배어나온다. 가볍게 헹궈 쑥을 건져내고 적당히 짜준다.        



미리 준비해둔 육수와 쌀뜨물에 꼭 짜낸 김치를 아삭한 부분만 쫑쫑 썰어 넣고 끓인다. 김치가 충분히 익으면 손질한 쑥을 넣고 된장을 푼다. 뭉근한 불에 지적지적 끓이면 김치와 된장의 간에 쑥이 익으면서 그 질감이 더욱 보드라워진다. 국물이 향긋하고 그 맛이 개운하다. 가족 모두가 아침으로 쑥국을 먹는 날 불현듯 안도감이 찾아온다. 쑥을 씻는 정수물에 손끝이 아직 시린, 그러나 여느 날과 달리 봄 햇살이 아침 식탁 깊숙이 들어온 날이었다.  





쑥국과 함께 차린 혼밥 밥상, 괜스레 힘이 난다


왜 하필 쑥이었을까. 쑥은 차라리 봄 푸성귀의 탈을 쓴 효험있는 약이 아닐런지. 성정과 습성과 부정적인 그 모든 것을 통째로 바꿔 새 삶을 살게 하는. 봄나물을 실컷 먹어놓으면 마음이 놓일 것이다. 몸이 냉한 것이 늘 걱정인 나는 쑥국을 몇 차례 더 끓여먹어볼 참이다. 아이들도 대범하게 환절기를 맞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앓느라 쓰이는 심신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살과 피와 몸으로 가 붙기를. 우리 아이 아프지 말고 쑥쑥 크라고, 그래서 쑥인갑다.



창문을 비집고 스미는 봄햇살은 자꾸만 나가자고 채근하는데 냉이국도 끓여야 하고 달래장을 만들어놔야겠고, 봄은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바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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