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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Feb 14. 2021

집밥은 계절감각이다

봄동을 씹으며

봄동나물과 봄동겉절이


시댁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께서 검은 봉지 하나를 손에 들려주셨다.

"다른 건 짐이 될까 싶고 이거나 한 봉지 가져가거라. 밭에서 막 뽑아온 건데 이거 무쳐먹으면 꼬소하고 맛있데이."

"어머, 어머니 이거 봄동이네요? 벌써 이게 올라왔나 봐요."

귀한 것을 본인이 드시지 않고 아들 며느리에게 건네신 어머니의 진심이 느껴졌다. 나헤벌쭉 벌어져서는 무슨 보배나 되는 듯이 봄동을 가슴에 꼭 품고 집에 왔다. 먼저 익은 과일이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던가. 앞서 선을 보인 봄푸성귀 역시 한 몸에 사랑을 입는 법이다.



귀한 채소가 있을 때는 반찬의 가짓수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알뜰하게 조리해 끝까지 먹는 일에 집중한다. 먼저 봄동 손질을 시작한다. 떡잎과 누런 잎은 걷어내고 겉 이파리를 뚝뚝 떼낸다. 큰 볼에 가득 물을 받고 이파리 가닥가닥을 손에 쥐고 쌀쌀 흔들어가며 씻는다. 작배추라는 별명을 가진 봄동, 잎이 땅바닥에 붙어 옆으로 퍼지며 자라는 터라 흙먼지가 유독 다. 세척한 봄동은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고 밀폐용기 바닥 키친타월을 한 장씩 깔고 소분해 보관한다.   





끓는 물에 막 몸을 담근 봄동의 초록이 싱그럽다


귀한 채소가 있을 때는 알뜰한 조리로 끝까지 먹는 일에 집중한다  



이들을 위해서는 봄동 나물이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가는소금 ,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시금치처럼 조물조물 무치면 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봄동의 초록빛이 개운하다. 영락없이 막 세안을 마치고 나온 어린아이의 낯빛 같다. 싱그러운 색감에 거짓말처럼 하루의 피로가 씻긴다.



우리 부부가 먹을 것은 액젓과 식초, 고춧가루와 마늘 등의 최소한의 양념을 곁들여 겉절이로 낸다. 주인공은 여전히 갖은양념이 아니라 봄동 그 자체다. 봄동이 본연의 질감을 잃지 않도록, 연한 잎이 문드러지지 않도록 아기 다루듯 살살 버무린다.



봄동겉절이가 아삭하고 시원하며 달착지근하다. 누가 뭐래지 않아도 꼭꼭 오래도록 씹게 된다. 언뜻 보기에 푸성귀 잎이 두껍고 투박해 질기지 않을까 싶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씹고 보면 그렇게 부드럽고 아삭할 수가! 양상추처럼 시스럽게 바스러지는 그런 아삭함이 아니다. 씹는 만큼만 씹히는 질감이다. 



봄동나물 씹다 보면 마치 연한 육질의 소고기를 질겅거리고 있는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진다. 고소하고 달큼한 채즙이 육즙마냥 푸른 잎 사이로 팡팡 터져나온다. 심지어 하얀 줄기 부분마저 달다. 분에 겨우내 잠자고 있던 온몸의 감각이 머리를 털며 즐겁게 깨어난다.





주방에 서서 복닥이느라 시대의 흐름엔 다소 뒤처지지만 계절만큼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좇아 살아간다. 계절을 알고 고개를 불쑥 내민 것들을 밥상에 올리는  일이 어찌  사명으로 다가온단 말이냐. 게 다 뭐라고.



봄동 겉절이가 대번에 입맛을 돋운다. 달큼하고 아삭한 봄동 겉절이를 씹으며 생각하기를, 춥고 서러운 겨울을 잘도 견뎌왔구나.



가장 먼저 봄을 알려온다는 봄 푸성귀 봄동, 곧 봄이 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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