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보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집중력이 좋으며, 친절하고 다정하다. 워낙 가정적이기도 하고. 요즘 내가 그를 보며 무척이나 부러운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많은 부분에 호기심이 있고, 알고 싶어 하며, 직접 해보고, 그것을 더욱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그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나와 생각의 로직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식당에서 맛있는 탄두리 치킨을 먹었다. 그럼 나는 “아 맛있네”하고 생각하는데, 그는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맛있지?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만들어본다. 탄투리 치킨의 맛을 내는 핵심은 치킨에 숯향을 입히는 것인데, 그는 그릇에 구운 닭을 넣고 불에 달군 숯에 오일을 부은 뒤 연기를 피워 닭에 그 연기가 스미게 한다.
그런 남편이 요즘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아주 나오지를 않는다.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끝 방말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늦게 퇴근해서도 이 방에 들어가서 뭘 그렇게 만들어댄다. 그 모습을 보니 이 방이 어쩌면 남편의 머릿속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어 두었다.
자, 그럼 우리 집 취미 부자가 사용하는 방을 살펴보자.
일단 창문 앞에 보이는 새싹, 바로 밀이다. 밀가루 만드는 그 밀 말이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싶겠지만 남편은 지금 밀싹을 기르는 중이다. 밀을 키우면 일주일 만에 자란다는 얘길 듣고 길러보는 중이다. 샐러드용이다. 밀과 함께 보리도 샀으니, 밀싹을 다 잘라먹으면 보리도 키울 예정이다.
그 아랫단엔 수경재배로 각종 허브를 키우고 있다. 바질과 애플민트 등이 자라는 중인데, 한 달 전 인터넷으로 각종 허브 씨앗을 4만 원 값이나 주문했다. 씨앗 하나의 가격이 2000원 안팎이니, 얼마나 많이 샀는지 짐작이 갈 거다.
그 씨앗을 뿌려 직접 발아과정까지 거쳐 이렇게 키워냈다. 여기서 핵심은 씨앗이 아니라 수경재배를 한다는 데 있다. 화분에 흙이 있으면 벌레가 생긴다며 자긴 수경재배로 식물을 길러보겠다고 맘먹은 게 올 초의 얘기다. 처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달라고 할 때는 설마 진짜 할까 싶었다. (평생 책은 한 권도 안 읽는 분....)
그리곤 수경재배 공부를 한참 했다. 아니 논문을 쓸 것도 아니고, 외국 수경재배 자료까지 찾아보는 정성이라니. 그리고 이해했다 싶으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3D 프린터로 모든 부품을 직접 만들었다. 우리 집 수경재배 시스템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스탠드형으로 모터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려 위에서 흘려내리는 형식과, 물을 담에 두고 그 물을 흐르게 하는 구조. 식물이 자라는 데는 빛과 바람도 필요한데, 식물에게 필요한 LED 등과 팬까지 달아서 완벽한 재배 환경을 만들었다.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여하튼 혼자 잘 자랄 수 있는 구조다. 바질 많이 키워봤지만, 잎이 이렇게 큰 건 저도 처음 본다.
그다음은 3D 프린터로 사진의 오른쪽의 검은 물건 되겠다. 이걸로 뭘 하나 싶겠지만, 생각하는 모든 걸 만든다고 보면 된다. 보통 3D 프린터를 쓰는 사람들은 피규어나 아이들 장난감 등을 많이 만드는데, 남편은 철저히 실용주의자. 정말 집에서 필요한 것들을 만든다.
주방의 그릇 스탠드, 냄비 뚜껑 거치대, 칠판 옆 보드마커 꽂이, 욕실의 칫솔 꽃이, 거꾸로 컵 거치대, 비누 받이 등. 하다못해 조명부터 나사까지 만들어 쓰는 사람이다. 핵심은 자신이 필요한 최적의 형태로 스스로 디자인해 만든다는 데 있다. (그가 만든 것들은 따로 블로그에서 정리를 해봐야겠다.)
그리고 그 앞으로 ㄷ 자 모양의 나무와 테이블 위의 나무 보인다. 이걸로는 현재 책상을 만드는 중이다. 작업방에 책상이 필요하다며 직접 책상을 만드는 거다. 결혼하고 목공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라 이런 책상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며칠을 사포질하고 오일 바르고를 반복하여 이제 각 부분을 붙이는 중이다.
사진 한쪽 구석에는 요가매트도 보인다. 그는 가끔 요가도 한다. 몸이 무겁거나 땀을 흘리고 싶을 때 유튜브에서 요가 동영상을 켜놓고 땀을 뻘뻘 흘린다. 같이 요가를 해도 나는 설렁설렁이라 땀이 안 나는데 그는 혼자 정식으로 해서 땀이 비 오듯 온다.
마지막으로 왼쪽 벽에는 기타가 걸려 있다. 그는 음악도 참 좋아하는 사람. 집에서 기타 연습을 하겠다며 사일런스 기타(소리가 나지 않는 기타)를 사서 연습을 하다 종종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배기기도 한다. 물론 음악을 하는 주기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가을쯤? 한 번씩 가을을 타며 기타를 친다.
며칠 전, 집에 첫째 아이의 친구가 놀러 왔는데, 이 방에 하도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니 이건 뭐야?, 이건 뭐야? 하고 물어보다 이렇게 되물었다 “네네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야?” 하고. 그러고 보니 그도 그럴 것이 3D 프린터로 만들고 싶은 걸 만들고, 밀과 각종 허브를 수경재배로 키우고 있으며,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한편 벽엔 기타가 여럿 걸려있는 사람의 직업은 무엇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단순히 하고 싶은 걸로만 치면 나도 몇 개 있다. 그런데 그와 나의 차이점은 정말 그것을 하느냐 여부. 결국 실행력의 문제다. 내가 그가 부러운 이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게 많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해내고야 마는 실행력에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것을 시도해 보고 결국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사람. 부럽다 취미 부자에 실행력까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