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
BTS가 지미 팰런 쇼에 출연한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BUTTER에 이어 신곡 Permission to dance를 스크린에 크게 띄워 놓고 나는 넋을 놓았고, 두 아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맥주를 마시며 화면을 응시하던 남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생애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
BUTTER는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통산 9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HOT 100에 1위로 데뷔한 역대 54곡 중 7주 이상 연속으로 정상을 지킨 노래는 BUTTER가 8번째라고 한다. 2021년 7월 초 발표한 Permission to dance는 유튜브 조회수 5.3억 회를 돌파했다(2022년 10월 13일 기준). 음악중심 1위 하듯 빌보드에서 1위를 하는 한국 가수라니!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들이 처음 빌보드 무대에 올랐을 때 그것 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니! BTS는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아니 팝 음악의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다. 누군가 BTS의 업적을 알려달라는 말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글로 적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김연아 선수가 완벽한 연기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 때도 나는 남편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내 생애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말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는 말엔 비단 BTS의 음악적 성과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정확히 짚어 말했다. 서양 여성이 동양 남성을 보며 환호를 지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고.
실제로 유튜브에서는 BTS의 영상을 보는 팬들의 리액션 영상을 볼 수 있는데, 한국 혹은 동양 여성뿐 아니라 동양 남자에겐 관심도 없을 것 같은 서양 여성들이 BTS의 노래와 춤을 보며 소리 지르며 눈물 흘리고 있다. 심지어 스웩 넘치는 흑인 남성들조차 BTS에게 "Crazy!"를 외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있겠는가!
서양 여성이 동양 남성에게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 일반적이지 않다. 많은 서양 여성들은 섹시한 남자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동양 남자의 체형은 그들이 말하는 섹시함과는 차이가 있다. '서양 남자 + 동양 여자' 조합은 덜 어색하지만, '서양 여자 + 동양 남자' 조합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분명히 말하건대, 이건 인종 차별과는 다른 얘기다.
올해로 45세인 나의 남편이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동양에서 어학연수를 온 많은 남학생들이 있었지만, 서양 여자들에게 그들은 이성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고 고백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 남편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보통의 일반적인 동양 남자들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남편 의문의 1패)
그런데 그 어려운 걸 BTS가 해낸 거다. 물론 그들은 깎아 놓은 돌보다 더 조각처럼 잘 생기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한국 남성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남편은 보통의 한국 남자로서 한국 남자를 보며 환호하고 소리 지르는 서양 여성들의 반응이 실로 낯설고 신선하다고 했다. BTS보다 인스타 팔로워가 많다는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서양 남자들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인 것은 분명하다. 그건 그들이 일궈낸 음악적 성과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내 생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BTS는 정말 대단하다고. 내 남편은 그런 힘도 없지만, 이 정도면 BTS 군대 안 가도 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군대 문제에 아주 민감한 한국 남자가 군대 면제 카드를 꺼내는 건 진짜 크게 맘을 쓴 거다.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BTS 병역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니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내 남편이 BTS를 본 지극히 남성적인 시선의 소감이지만, 어쨌거나 BTS는 그 어려운 걸 해낸 거다. 견고한 팝 음악의 장벽을 넘어 틀에 박힌 서양인의 인종 혹은 이성에 관한 고정관념까지 무너뜨려 버렸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또 넋을 놓고 BTS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