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다이슨 에어랩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물었다. "꼭 필요한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갖고 싶은 거야"라고 대답했다. “일단 결제부터 해 봐. 결제하고 설명할게" 핫딜을 놓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내가 한 달 전부터 에어랩 얘길 했던 터라 남편은 일단 결제부터 했다. 나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첫 번째, 다이슨 에어랩의 정가는 599,000원인데 지금 리퍼 핫딜이 399,000원에 떴다. 무려 20만 원이나 싸다. 이건 중고가 45만 원 선보다 싼 가격이다. 그러니 일단 사야한다. 사서 써보고 안 맞으면 중고로 팔아도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 (물론 나는 절대 팔 생각이 없지만)
두 번째, 다음 주에 유튜브 촬영이 있는데 그럼 그전에 머리를 해야 한다. 근데 미용실 가서 머리를 해도 일단 10만 원이 넘게 나온다. 나는 미용실에 가지 않을 것이고 대신 에어랩을 사겠다.
세 번째, 나는 10월 1일 내 생일날 생일선물을 사지 않았다. 이건 내 생일선물이라고 해 두자.
‘생일선물’이라는 말에 남편은 그제야 더 묻지 않았다.
에어랩이 머리를 잘한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곰손 똥손을 금손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 홈쇼핑에서 종종 판다지만 우리집에는 TV가 없으니 본 적이 없고, 근처 백화점에 팝업 뷰티 랩이 있다지만 낮엔 바빠서 갈 시간이 없었다.
에어랩의 실물은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살 생각은 못하던 차에 아이와 놀러가기로 한 아는 언니가 마침 에어랩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코로나 집콕 시기, 미용실에 갈 수 없어 머리가 엉망이었을 무렵 자신의 마음을 달래준 유일한 아이가 바로 에어랩이었다며.
언니는 “그냥 대충 느낌만 봐. 나도 똥손이니까”하며 에어랩 전원을 켜고 내 머리에 갖다댔다. 배럴을 통해 바람이 슝~ 나오더니 스스륵 머리가 감긴다. 바람에 자동으로 머리가 말리자 저절로 '우와!' 하고 감탄이 나왔다. 뜨거운 바람과 차가운 바람을 차례로 맞은 머리는 전원을 끄자 차르르 풀리더니 탱글탱글한 볼륨을 자랑했다. 어! 이거 뭐지?'
언니는 옆머리를 잡더니 다시 전원을 켠다. 또다시 바람에 감싸인 머리는 또르르 말리더니 컬이 돼서 내려앉았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것을 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그래도 60만 원은 너무 부담스러운 거다.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끽해야 가끔 미팅이 있을 뿐인데. 만나는 사람이라곤 동네 언니들과 친구들뿐인 내가 ‘머리 마는 기구’에 6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가?
적은 돈은 아니라 내 생일에도 에어랩을 사지 않았다. 사고 싶은 걸 사라는 남편의 말에 ‘살 게 없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나 갖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친언니마저 다이슨 에어랩을 샀다며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다 됐고, 이건 가심비가 아주 굿굿이야!” 그래, 가성비보다 중요한 건 가심비. 그 세계에선 이성적인 판단 또는 합리적인 생각을 넘어서는 기분의 세계가 있다.
언니가 에어랩을 샀던 그날 밤 나도 그 핫딜 정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고민하는 5분여 사이 300대가 품절돼 버렸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다음 핫딜 때는 일단 결제부터 하리라.’
밤 10시쯤 아이들과 침대에 누웠는데 언니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뭐지? 이 밤에? "야 지금 핫딜 떴어! 링크 보냈으니까 빨리 사" 그녀는 이 한 마디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말한 거다. "나 다이슨 에어랩 살 거야. 일단 결제부터 해" 하고.
이틀 만에 배송된 에어랩을 받아 든 나의 기분은 참으로 좋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연습을 하겠다며 밤마다 머리를 말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었다. 밤 9시, 잘 시간에 머리를 말면서도 나는 행복했다.
두둥! 다이슨 에어랩 개봉
아들은 “연아네 집에서 한 거 샀네, 엄마 예뻐!”하고 두 엄지를 세우고 감탄을 한다. 연예인 머리 마냥 볼륨이 살아난 머리가 마치 예쁨 +10, 기분좋음 +20을 해주는 것 같다. ‘가성비’가 아니라 ‘가심비’라는 말이 이해되던 참이다.
에어랩을 사고 싶다는 말에 남편이 ‘필요하냐’고 물어서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고 하자 한 친구는 말했다.
"필요한 것만 사면서 사는 삶은 너무 팍팍하다.
세상을 즐겁게 하는 건 필요 없는 것이거늘"
그렇지. 모든 물건을 가성비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디자인이 예뻐서 사기도 하고, 비싸도 좋아하는 브랜드여서 사기도 하고, 제품에 담긴 스토리가 맘에 들어서 살 때도 있다. 그냥 갖고 싶은 것도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