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7) - 덕복희의 우수 편지
산달! 오늘도 꽃이 수놓인 양말을 신고 나섰나요? 전 사람들이 꽃을 닮은 옷을 입는 게 참 귀엽게 느껴져요. 철쭉과 벚꽃만 남긴 도시에서조차, 사람들은 실은 무지하게 꽃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어느 부부가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도 아이 앞에선 말을 가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꽃 앞에서만큼은 그를 닮아 사랑스러워지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산달의 기후운동용 전투복은 성능이 굉장한 셈이군요. 산달에게 나눌 절복이 생긴다면 기꺼이 주고 싶어요. 방랑단 때 ‘유니클로’라 부르던 헌옷수거함 센터가 있는데, 그곳에 함께 쇼핑가도 좋겠어요. 꽃양말이 어울릴 절복을 잘 수소문해볼게요.
지난 편지에 산달이 저와 꼭 가까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잖아요. 입춘 편지를 보니 산달이 저와 엄청 닮은 듯이 느껴져요. 산달의 모든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읽었어요. 어떤 부분이 동감이느냐 물으면, 일일이 고르기 곤란할만큼이요. 도시의 쏟아지는 정보 이야기나, 독을 입고서도 끄떡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왜 그런 옷을 입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나무님을 소개시켜달라는 이야기! 나무님이라니! 저와 말습관이 닮아서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모든 존재에 존칭하기란 남들 앞에선 영 쑥쓰러워서 숨기거든요. 나중에 산달이 소개해주는 나무님들과 정중히 상견례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절복을 칼각으로 다려입고 나갈게요.
그리고 ‘어떤 옷을 입느냐는 선택과 의지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주어지거나 휩쓸리기 쉬운 종류의 것’이라고 했죠. 사랑조차도 그렇다고요. 산달의 답신이 늦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요. 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거죠. 그러니 다음에 또 늦더라도 사과하지 않기로 해요. 왜 편지가 늦었을까 상상해보고, 조금은 아쉬워하고, 늦게나마 도착한 편지를 읽고 배로 기뻐하는 시간을 제게 선물했다고 생각해요.
저를 궁금해해주는 산달이 고마웠어요. 이번 편지에 어떤 말을 실을까 고민했어요. 특히 왜 지리산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말하자면 한 통의 편지로는 부족할 거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걸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할 재주가 없는 까닭입니다. 미욱한 설명이 저를 오해하게 만들까봐 구구절절 덧붙이고서야 마음이 놓일 테니까요. (귀촌수다회를 일박이일로 잡는다면 덜 초조할텐데, 딱 이런 자리가 저를 골몰하게 만든답니다.) 어느 시간이 넉넉한 누군가가 ‘마음껏 헤매며 말해도 좋아!’라며 저를 기다려준다면 용기가 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산달의 소한 편지에 적힌 ‘기다림’이 바로 이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편지에 씩씩하게 써보려해요.
저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공부했어요. 대학을 마칠 쯤엔 주말농장과 광화문 광장을 자주 다니는, 짧은 머리의 채식주의자가 돼있었고요. 공부가 끝난 마당에 이제 운동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어쩐지 더 대단한 머시기가 돼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아하던 프랑스문학을 좇아 프랑스로 훌쩍 떠났습니다. 몇 년은 살 작정으로요. 프랑스에서 전 정신병자가 됐던 것 같아요. 토할 듯이 폭식을 반복했고 집에 혼자 틀어박힐 땐 환청이 들렸어요. 거리에 나서면 누군가 갑자기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고, 일이 마음대로 안풀릴 땐 군중 한복판이라도 괴성을 질러야 분이 삭히곤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인종차별이었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아직 테러가 터진 적 없다는 보기 드문 도시에 있었는데, 저에겐 나날이 테러였어요. 당연히 안전하다고 느끼던 공원에서, 마트에서, 강변에서, 집안에서, 학교에서 매일 갑자기 누군가가 욕이나 성희롱을 하고 지나갔어요. 무슨 좀비영화 같았어요. 방심할 틈도 없이 돌연 누군가 총을 뻥 쏘고 가버리는 기분. 그나마 마음을 열고 지내던 친구가 문득 낄낄거리며 인종차별을 하면 순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돼버린 듯한 기시감. 저처럼 편집증을 앓던 유학생끼리 글모임을 하며 버텼어요.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날것의 글을 쓰자는 의미로 ‘팬티를 벗어버리자!’가 모임의 슬로건이었죠.
유학생 친구들에게 ‘넌 망할 프랑스에 왜 왔어?’하고 물었어요. 저마다 이유가 달랐어요. 프랑스가 와인이 최고니까, 프랑스가 철학이 최고니까. 영화가, 건축이, 음악이, 베이킹이, 패션이, 요리가, 문학이… 다 최고니까. 정말 저 많은 분야에서 다 프랑스가 최고라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매일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이 프랑스에 쏟아져요. ‘망할 프랑스놈들 너넨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욕해주고 싶은데, 왜 오만한지 알만도 하더라고요. 그제야 세상이 요지경처럼 보였어요.
서울의 대학이 최고라니까 인천에서 서울로 꾸역꾸역 올라왔던 스무살의 저처럼, 서울이 교통이든 회사든 학교든 인프라든 다 최고라니까 사람들이 마구 모이잖아요. 서울의 집과 지하철은 스툴처럼 변하고 사람들은 옆 존재를 부리로 쪼고마는 공장식 축산 닭들처럼 쉽게 짜증을 내고 인색해요. 눈이 뻑뻑하도록 유튜브를 새벽까지 보거나 배달음식을 배에 쑤셔넣는 것으로 자학해요. 프랑스가 최고라니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마구 몰려오고 결국 사정은 같아요.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해요. 무시하고 동경하고 방자하고 비참해요. 죽어가요.
일 년만에 전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불어가능자라 하면 다들 부러워하는 곳으로. 그렇지만 귀국하고 단 한 번도 불어책을 들여다본 적 없는 실패한 유학생으로요. 그리곤 공동체와 에코페미니즘과 퍼머컬쳐 책들을 체할 듯이 뒤져보았어요. 귀촌할 돈을 모으려고 농민권과 관련한 일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출퇴근 지옥철 탓인지 건강이 많이 악화됐어요. 장염, 위염, 역류성식도염, 만성비염, 방광염… 온갖 잔병을 다 달고 살다가 퇴사해버렸죠. 머리를 채우는 일은 그만 충분히 한 것 같았어요.
시골엔 아주 짧은 줄에 개를 묶어두는 이웃이 많아요. 그 개들과 함께 산책하면 대부분 허겁지겁 목줄을 당기면서 안 가본 곳을 딛어보고, 처음 맡는 냄새를 맡고, 나뭇가지를 와작와작 씹어요. 올드보이처럼 당신을 오래 가둔 놈을 찾아가서 족치는 게 아니고, 그분들이 자유로울 때 하고싶은 거라곤 이런 일이죠. 저도 퇴사하고 서울에 침이나 시원하게 내뱉고 귀촌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하자센터 옥상에서 정수리가 뜨거워지도록 직조를 하다가 낮잠을 잤어요. 낮에 해를 쐬는 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이젠 몸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식민주의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으려고 교섭을 시도했대요. 위스키와 보조금을 줄 테니 산과 강을 내놓으라고 한 거죠. 교섭은 성사되지 않았어요. 인디언들은 더 바랄 게 없는 이들이었고, 식민주의자들이 가진 것 중 인디언들이 탐낼 만한 건 무엇도 없었기 때문이라고요. 도시를 떠난 후 제 마음이 딱 이래요. 도시엔 제가 탐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리산 품에서 저는 더 바랄 게 없음을 매순간 느껴요. 아, 지리산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공동체가 있어 선택한 곳이에요. 공동체와 썩 나쁘게 이별하고서는 지리산도 떠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도시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지, 굳이 지리산일 필욘 없었거든요.
공동체에서 나온 후 집이 없어 반년에 한 번 꼴로 보따리를 이고 다녔어요. 매번 달라지는 시골집 중에서도 저는 반드시 마당에 한 평이라도 흙이 있는 곳을 골랐어요. 제 똥과 오줌을 모으고 씨앗을 뿌려야 해서요. 마당엔 불간을 부릴 곳과 조금의 장작을 쌓을 곳도 있어야 했어요. 숲길을 걸으며 산딸기와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울 때면, 꼭 자본주의자들은 길거리에 돈이 쏟아져있으면 이렇게 기쁠까 싶어요. 숲은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낙원이에요. 숲은 제가 누군지 알게 해줘요. 그곳에서 전 부자가 돼요. 우린 지구에 한 푼도 쥐고 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부자로 태어났음을 느껴요. 이 풍요로운 지구의 일원으로요. 마당에 모은 제 똥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자란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가 다시 제가 되고나면 제가 무슨 일을 하러 지구에 왔는지 배우게 돼요.
지리산에 홀딱 반한 건 방랑단을 하며 그를 구석구석 깊이 만난 이후였어요. 제가 본 가장 우아한 존재였거든요. 우아함이란 너그러움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닐까요? 지리산은 한없이 너그럽고 기품이 넘쳐요. 지리산은 제 전부에요. 제 전부가 지리산인 것처럼요. 이 말을 뱉고 낯간지러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지만, 역시 맞는 말이에요. 엄마이자 친구고, 치료사고, 도서관이고, 놀이터에요. 그래서 나무나 새를, 약초와 나물을 익히는 건 제게 중요해요. 다 똑같아 보이던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호명한다는 건, 엄마의 어린시절 첫사랑이나 꿈을 묻는 일이자,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친구의 숨은 근심을 읽어내는 일이자, 도서관에서 누구도 펼치지 않은 책을 집어드는 일이에요.
휴... 간결하게 말하기는 이미 그르친 마당에 급하게라도 맺음을 해야겠군요. 일목요연은 제 재능이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빠르게 자라는 오동나무가 있는 반면, 느리게 자라는 팽나무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해요. 그리고 산달, 벌써 봄을 알아채고 봉우리를 터뜨린 매화나무가 있는 반면, 늦가을에야 꽃을 피우는 차나무도 있는 법이잖아요. 도시사람들은 차나무 같은 것 아닐까요? 많은 손짓을 놓치며 도시에서 봄을 느즈막히 알아채는 지금 산달의 시간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느껴져요. 이듬해 봄님께서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그땐 산달을 번뜩 깨울만한 손짓을 어련히 보내시겠죠? 올해는 제가 봄님의 심부름꾼으로 산달에게 봄을 전했다니 행운입니다. 봄비와 산달을 곧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산달우드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