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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어린 Apr 29. 2023

팬티를 벗어버린 덕복희에게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8) - 산달의 우수 편지

이번 편지도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늦게 보낸 편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 고질적인 습관인데요. 늘 할 일을 끝까지 끝까지 미루다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어서야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정신이 아득해지고는 한답니다.. 늘 그래요 늘. 게다가 복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저는 편지나 글을 날쌔게 쓰는 데는 영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또 급한 마음으로 쓴 편지를 복희에게 주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거 있죠. 그래서 저는 아예 하루를 편지 쓰는 날로 잡고서 복희에게 해줄 말들을 고르기로 했답니다. 늦어도 그럴 만한더 늦지 않기로, 약속할게요. 새끼 손가락 걸고.


지난 번 서울에서의 짧은 만남이 복희의 기다림을 덜 지루하게 만들었길 바래요. 아, 그 날은 정말 완벽했어요! 사실 그 날의 저는 집을 떠나 떠돈지가 오래인 터라 말끔하거나 신선하다고 볼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방랑단 분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마주치니 맑은 기운이 제 묵은 마음을 싸악 씻겨주는 거 있죠. 봄을 맞은 지리산의 마음을 방랑단을 통해 엿보기라도 한걸까요? 그 순간 저는 몸이 있는 곳으로 제 마음을 불러올 수 있었어요. 준비해주신 유자청과 시금치 페스토, 수제 복숭아 잼과 짜이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동네방네 뛰다니며 남산 사람들에게 한 입씩 맛보게 해주고 싶었답니다. 그렇지 못했던 저는 아쉬운 마음에 이 편지를 보는 분들에게라도 굳이 알려보아요.


우리 그 날 누가 서로의 짝꿍인지 꽁꽁 감춘 채로 얼굴을 맞대었잖아요. 네 사람 중에 덕복희가 누구일까? 덕복희는 나를 알아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계속 제 마음은 짜릿하고 설레어 두근거렸어요.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로 대화와 웃음을 나누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어색했지만 고마웠어요. 말이 터져나오는 길대로, 생각이 뻗은 모양대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서로의 특별함을 오히려 온전히 느낄 수 있었거든요. 소한의 첫 편지를 주고받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되새겨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각자 짝꿍의 편지 중 나누고 싶은 문장을 낭독할 때는 정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말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는 한, 우린 언제든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 편지에 빼곡히 쓰여진 복희의 이야기들이 참 고마워요. 그 이야기들은 저로 하여금 복희와 지긋이 눈을 맞출 수 있게 해줘요. 삶을 사랑한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줘요. 앞으로 풀어놓을 순간들이 참 많겠지만, 첫 발을 잘 뗀 복희에게 고맙다고 진한 포옹을 보내주고 싶어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 서로를 궁금해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해요. 매우 반갑고, 기뻐요.


프랑스든 서울이든 복희가 그곳에서 잘 견뎌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때때로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가 마치 ‘잡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잡초는 실은 다 이름이 있는 풀들이잖아요. 나름대로 그들만의 생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풀들을 뽑아서 버리거나 태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대해요. 안타깝고 무심한 일이죠.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버려지고 태워지죠. 복희가 살다 온 프랑스의 뒤르켐이라는 사회학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기계적 연대가 해체된 유기적 연대의 사회라고 말했다더군요. 별로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었답니다. 누구도 종속된 채로 간 쓸개 모두 내어주는 관계를 연대라고 말하지는 않죠. 받는 쪽은 만족할 줄을 모르고, 주는 쪽은 말라 비틀어져 병들어가요.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일거에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아파 본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아픔을 겪고 있는 존재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서로의 상처를 궁금해하고, 손이 닿지 않는 환부가 있다면 연고를 발라주기도 하고, 그 모든 과정이 사랑임을 깨달아요.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고 똥이 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런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다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 상태를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픔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반대로 모두가 아프기 때문에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지 못하죠. 자식들이 제 몸에 깔려 죽어도 어찌할 수가 없는 스톨에 갇힌 어머니 돼지처럼요. 누구 하나 안 그러겠어요?


저는 스스로 별로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통증에 둔감해지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더라구요. 한국에서 지정성별 남성으로 태어나 자란 저는 늘 제가 ‘속해 있는’ 집단의 해로움을 물려받았을 거에요. 괴롭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죠. 저는 그런 내가 어떻게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나름대로 내린 답은, 오히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것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발 딛고 있는 남성성의 지배와 폭력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아주 익숙하고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어떻게 결점이 이렇게 많은 우리가 기후운동을 하냐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복희, 이제 우리 이렇게 대답하기로 해요.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온 건 늘 못나고 이상하고 아프고 무가치한 존재들이었다고. 추한 날것의 존재들이었다고요.


저는 복희가 거쳐온 삶의 궤적이 바로 그런 존재들을 직접 만나며 사랑해온 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 복희가 지리산과 함께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 길에서 복희는 아픔들을 충분히 다독일 수 있었나요? 이미 스스로를 활짝 열어놓을만큼 단단해진 복희를 느껴요. 진심으로 존경해요. 이제서야 이 말을 뱉을 수 있겠어요.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모두를 존경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걸 요즘 알아가고 있거든요. 누군가를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 깊이만큼 들여다보고 나의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걸요. 아직 이르고 설익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만큼의 존경을 복희에게 드리고 싶어요. 팬티를 벗어버린 걸 축하해요!


저는 아직 머리를 채우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책도 보고, 기획안도 작성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에 대해서 세밀하게 표현해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하루하루 몸이 찌뿌둥해지는 거 있죠? 더는 일을 게을리 한 채 채우기만 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현실에 존재한다는 감각에 둔감해져버린 거죠. 그래서 요즘에는 복희가 어떤 감각들을 느끼는지 절실히 궁금해져요. 지리산과 함께라면 바랄 것 없이 온전하다는 감각, 숲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자의식, 공동체 속에서 주고 받는 온기와 용기, 똥과 오줌으로 거름을 만들고 그곳에서 난 토마토의 맛, 이런 것들이 참으로 궁금해져요. 이런, 제가 너무 질문이 많나요? 벅차게 할 의도는 아니였으니 겁먹지 말아주세요. 그저 천천히 마음에서 떠오르는 감각들을 제게도 전해주세요.


어느덧 우수의 편지도 가득 채워져가네요. 이 편지를 보내고 난 다음 날 저는 광주로 데모하러 갈 예정이에요. 국립공원의 날을 기념해서 광주의 증심사라는 절에서 기념 행사를 한대요. 며칠 전 설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도록 허락했으면서, 염치도 없는지! 지리산에서도 케이블카를 짓네 마네 하는 싸움이 한창인걸로 알아요. 복희가 사랑하는 지리산을 건들지 않아야 할텐데..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저도 싸우고 오려구요. 응원해줄거죠?


언젠가는 함께 싸울 날도 올 것입니다. 내일도 그때도 저는 늘 복희에게서 받은 용기를 한아름 안고 있을거에요. 오래 간직될 따스함이 되어주어 감사해요. 복희가 말한대로, 저 스스로가 어느 누구보다 차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온기가 있으니 올 가을에는 꽃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떤 색일지 누구에게 어떤 향으로 다가설지 기대되네요. 어련히 때가 있음을 의심치 않겠어요. 그때는 제가 복희에게 무언가를 가지고 달려가는 심부름꾼이 될게요.


찌뿌둥한 산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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