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마음조각가 Oct 20. 2022

가을 다음엔 늘 여름이 오듯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해는 짧아지고 마음은 한산하다. 운동장을 걸으며, 이 계절을 돌아 나온 무늬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의 무늬가 한쪽으로 닳는다. 어떤 구간에선 펑크도 난다. 생각의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긁어 부스럼 같은 생.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펑크 난 선택들을 수리한다. 그 사이 새 몇 마리가 벤치 옆 모과나무 안에 들어 주유 중이다. 꽉 채우지는 않고 갈 때까지만 갈 만큼 울음을 채운다. 한 마리인 줄만 알았는데, 두 마리의 새가 문득 푸드득 솟구친다. 모과나무의 그늘이 동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나도 십오 년 전 이맘때 그렇게 세간을 이뤘다.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자랑삼아, 그렇게 굴러먹었구나. 굴러먹다 도착한 곳이 지금 여기다. 나는 자리에 일어서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속도를 들여다본다. 이렇게 완벽한 정지는 없다. 타이어는 가을이 남긴 열매다. 씨앗이다. 가을 다음엔 늘 여름이 오듯 나는 만추의 계절에 머뭇거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가가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