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Cebu, Philippines) 남부 투어]
#01, 프롤로그
나는 “필리핀 세부(Cebu, Philippines)의 ‘한국인 가이드(Guide)’이다.
“세부(Cebu, Philippines)”는 한 해에 수십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드나드는 동남아시아에서 꽤
유명한 관광지이다. 이런 관광지에는 ‘관광 가이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인에게 한국
가이드는 매우 귀중한 존재이다.
“가이드(Guide)”는 관광지를 소개하고 일정을 관리해서 여행객이 편하고 안전한 여행을 하도록
도와주는 “여행 도우미”를 말한다.
하지만 한국 여행사가 운영하는 “패키지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이 말이 사전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지금 동남아시아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한국인 가이드는 '여행 도우미'
라기보다는 여행사의 “영업사원”라 해야 맞을 것이다. 아니 “장사꾼”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해외 관광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가이드들은 급료가 없다.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문이 들것이다.
그래서 "아니 그럼 어떻게 생활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음~~ 돈 엄청 번다더니 역시 월급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엄청나게 돈 들어오는
구멍이 있나 보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가이드는 고정급이 없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손님(관광객)에게 뭔가를 팔아야 생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럼 뭘 팔까?
가이드가 파는 “물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옵션(현지 놀거리)' 나머지 하나는 '쇼핑'이다.
'옵션'과 '쇼핑'은 가이드 수입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걸 팔아야 생계가 유지된다.
이 바닥에도 '신뢰 = 돈'이라는 시장의 등식은 성립한다. 그러니 고객으로부터 신용을 쌓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3일이라는 짧은 패키지여행 기간 동안 '신뢰'를 쌓아서 '돈'을
만들어 내는 일은 웬만한 능력자가 아니고는 해내기 힘든 일이다. 그러니 다른 여느 직종과
마찬가지로 이 바닥에서 돈 버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손님이 돈으로 보이면 가이드로 성공할 수 없다.
가이드의 본분을 충실히 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이 말을 처음 가이드 교육을 받을 때 수도 없이 들었다.
옳은 말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현대인이라면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이 말이 교육장에서 하는 형식적인 말인걸 알면서도 장사꾼 DNA가 부족했던 난
철저히 믿고 따르려 했다.
결국 액수로 나오는 무능을 정신승리로 포장하며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했다.
내가 장사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건 매우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
돈은 못 벌었지만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말을 따르다 보니 보람은 꽤 느꼈다.
내가 한 일로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의외로 기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질적 보상은 부족했지만 이런 정신적 충만은 긴 세월 이 일을 하는데 큰 힘이 되어 줬다.
나는 세부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가이드 일을 했음에도 돈을 벌지도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여행사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가이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둔다는 말을 하고 회사를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이 짓을 다시 하나 봐라!!"
"하늘이 무너져도 이 건 안 한다."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잠깐 놀면서 다음 일을 생각하자."
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여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그런데 지금부터 뭘 하지?"
(#01,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