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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도시를 떠나다

#02, 도시를 떠나다..

by 벼랑끝

#02, 도시를 떠나다..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방바닥을 뭉개고 있다 보면 다시 잠이 들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한참을 뒹굴거리다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 세차한 지 오래되어 색깔 구분이 안 되는 회색빛 싸구려

자동차가 보인다. 오랫동안 날 태우고 다녔던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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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비춰보니 묘하게 생긴 녀석이 퀭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한참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등을 돌렸다. 뭔가 할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몇 가지를 가방에 챙겨 넣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이드미러 속의 녀석이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뭐 하냐!! 여기서…….”


194b78cee9f825941e533b1af760756d.png 세부(Cebu, Philippines) 막탄 섬 - 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곳은 필리핀 세부(Cebu, Philippines)의 “막탄(Mactan)”섬이다.

막탄(Mactan) 섬은 필리핀 중부 지역의 중심인 "세부(Cebu) 섬"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부속 도서이다.


'세부(Cebu)'라는 관광지의 휴양시설과 놀이시설, 국제공항, 리조트 등은 모두 '막탄섬'에 집중되어 있다.

세부 관광은 막탄에서 시작해서 막탄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탄섬의 도시 이름은 “라푸라푸 시티(Lapulapu City)”이다.

그래서인지 현지인들은 “막탄(Mactan)”이라는 지명보다 “라푸라푸(Lapulapu)”라는 도시명을 일상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


한국 사람 중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대부분 ‘라푸라푸 시티(Lapulapu City)’에 거주한다고 보면 된다.

여행사와 가이드의 본거지인 셈이다.

47e167f698edbccaf34c6ad97b9812d2.png 오슬롭 가는 길

나는 지금 “막탄(Mactan)”을 출발해서 세부 본섬의 남쪽으로 이동 중이다.

새벽에 집을 나선 지 약 2시간이 지났다. 이 길을 2시간쯤 더 달리면 “고래상어(Waleshark)”로 유명한

“오슬롭(Oslob)”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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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롭(Oslob, Cebu)"에는 “고래상어(Waleshark)”라는 녀석들이 산다.

아니 ‘산다’는 표현은 틀렸다. 고래상어들은 오슬롭으로 “출퇴근(?)을 하니 ‘나타난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언제부터 고래상어들이 이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동네 해안에 고래상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공격성이 없는

녀석들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커다랗고 신기한 동물이 착하게 구니까 어부들은

올 때마다 먹이가 될만한 것들을 나눠줬고 이 녀석들은 그 달콤함에 빠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쪽으로

마실을 오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녀석들이 동네에 나타나는 것이 소문이 나자 정부가 나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어 고래상어들이 이곳으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고 한다.


05b65dc3a973ed4d92ebe884f8960dcb.JPG 벼랑끝 & Miss 고래상어


고래상어들이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자 필리핀 정부는 적극적으로 먹이를 주며 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고래상어들이 이웃에 친척까지 몰고 와 숫자는 금방 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래상어들이

출퇴근을 하자 이건 인간들에게 기막힌 돈벌이가 됐다.


이들이 규칙적으로 해안에 나타나자 필리핀 관광청은 “고래상어 관람장(Whale Shark Watching)”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고래상어들과 함께 스쿠버 다이빙이나 수영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고래상어는 필리핀의 지방직 공무원(?)이 됐다.


이 녀석들은 3월의 며칠을 제외하면 1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른 새벽에 오슬롭 해안으로 출근을

한다. 쉬는 날도 없이 매일 새벽 4시경에 출근을 해서 오후 2시쯤 퇴근을 한다. 인간들과 놀아주는 게 주

업무고 급료는 새우나 오징어 같은 먹거리로 받는다. 매우 성실해서 빠지는 날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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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정부는 밥만 주면 공짜로 일하는 멋진 공무원들을 이용해서 떼돈을 번다.

덩달아 관광객이 몰리며 지역 경제도 엄청나게 성장했으니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었을 것이다.


고래상어 입장에서는 이게 어떤지 잘 모르겠다.

하는 일이라고는 먹이만 먹는 것이니 그리 나쁜 직장은 아닐 듯싶기는 한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매년 3월이면 가끔 안 오는 날도 있는데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짝짓기 기간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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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슬롭(Oslob)"의 고래상어를 관광상품화 하는데 대해서 반대 여론도 많았다고 한다.

환경단체에서 관광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방식의 관광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이 일이 환경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고래상어에게 얼마큼 나쁜 영향을 주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족관에 가두어 놓고 관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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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상어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의 놀라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런 경험은 어항 같은 수족관에 갇혀 있는 물고기를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오슬롭의 고래상어들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상처받고 피해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인간이 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그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간과 함께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후손 역시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부 끝)




덧)

'오슬롭 고래상어' 관람은 물속에서 1미터 이상 고래상어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임의로 터치를 할 경우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강한 제재를 받음.

필리핀 정부는 최대한 고래상어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관람장을 운영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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