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지나가는 길.
[세부(Cebu, Philippines) 남부 투어]
#03, 지나는 길.
막탄을 출발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나 드디어 오슬롭 지역으로 들어섰다.
쉬지 않고 운전을 해서인지 허리가 아프다. 잠깐 쉬어갈 생각으로 주차장이 넓은
“오슬롭 성당”에 차를 세웠다. “오슬롭 성당”은 오슬롭 지역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해안도로에
있는 오래된 성당이다.
필리핀은 전 국민이 가톨릭 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톨릭이 국교화되어 있는 나라다.
아시아에서 가톨릭 인구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필리핀이 유일할 것이다.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들어온 가톨릭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덕분에 필리핀에는 오래된 가톨릭 유적이 많다.
필리핀 중부지역인 세부와 보홀 섬은 오래되고 유명한 가톨릭 유적지가 특히 많다. 그래서 아시아의
열성적인 종교인들에게 세부나 보홀이 성지순례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한국 여행사에서 처음 “오슬롭 투어”라는 상품을 개발하던 당시에는 세부 섬 남부에 있는 “시말라 성당(Simala Chuch)”이 “오슬롭 투어”의 메인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다. "시말라 성당”은 고래상어 포인트로
가는 길에 약 30분 정도 산길을 우회하면 갈 수 있다.
이 성당이 유명해진 것은 “성모 상(像)”이 눈물을 흘린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이다.
지금은 증축으로 성당의 규모가 커져서 더 유명해졌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성모상을
보기 위해 찾던 곳이었다. 지금도 이 성모 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시말라를 찾는다.
“오슬롭 투어”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에는 “고래상어, 투말록 폭포, 시말라 성당”이 기본
일정이었다. 그런데 관광객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시말라 성당” 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마리아상이 만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새벽부터 시달린 막바지에 큰 성당을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건 가톨릭을 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지순례를 온 것도 아니고 휴양지에 놀러 온 것인데 종교 유적을 보기 위해 30분이나 비포장에
가까운 산길을 달려 큰 성당을 걸어서 돌아보는 건 솔직히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이런 불만이 많아지자 여행사가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고래상어 관람장로 가는 길에 있는
“오슬롭 성당”이었다.
“오슬롭 성당”은 “고래상어 포인트(Whale Shark Watching Point)”로 가는 해안에 있다.
산길을 찾아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 방문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고 해안의 풍광이 좋아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모든 투어 차량들이 오슬롭
성당에 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도 차를 세우지 않는다.
“오슬롭 투어”는 보통 새벽 3~4시 사이에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성당에 도착할
즈음이면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된다.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일찍 호텔로 돌아가서 마사지나 받으시죠?”라고 가이드들이 슬쩍 던지면,
손님들은 못 이기는 척하고 이 말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극도로 피곤한 상태여서
1분 1초라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오슬롭 투어” 때 가톨릭 유적지를
들르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미사가 없는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성당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성당 안을 훔쳐보니 앞쪽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잠깐 자리에 앉아 결혼식 구경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갈 즈음 밖으로 나와서 바닷가를 걸었다.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이 세부에서 벌써 세 번째이다. 지난번 이 길을 지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막막했었다. 갈 곳도 없고, 돈도 없고, 빚까지 잔뜩 있는 상태였다.
바닷가 벤치에 앉아 예전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났다.
"내가 여길 또 지나가다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낮잖아,
"아직 내겐 차도 있고 주머니에 여관에 누울 정도의 여비도 있다.
이렇게 길을 떠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자."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