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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18. 2023

다정예찬(多情禮讚)




얼마 전에 묵호에 갔을 때 행사가 끝나고 모인 사람들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생선구이가 나왔는데 내 옆에 앉으셨던 한 선생님은 꽤 익숙한 솜씨로 생선을 발려 드셨다. 남자들은 보통 생선 가운데 부분의 살만 파먹는다. 누군가 선생님께 생선을 잘 발린다고 하자 그분은 딸이 어릴 때 자주 살을 빌려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따님은 생선 살을 발라 밥숟가락 위에 놓아주던 다정한 아빠의 손을 평생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때의 아빠 손을 잡고 일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가끔 찐빵을 만들어 주셨다. 밀가루에 베이킹파우더와 설탕을 넣고 물로 질척하게 반죽을 한 다음 솥에 찜기를 얹어 반죽을 넣고 쪘다. 연탄 아궁이에 올려진 솥에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솥뚜껑을 열면 하얀 찐빵이 먹음직스럽게 부푼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는 뜨거운 찐빵을 조심조심 꺼내 먹기 좋게 잘라 주셨다. 뜨거운 빵 조각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에 퍼지던 달큰한 맛과 보드라운 촉감은 아직도 기억난다.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이셔서 나는 아빠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사춘기 때는 아빠와 마주치기 싫어 공부를 핑계 삼아 학교에 일찍 갔고 밤에 늦게 집에 왔다. 하지만 빵을 잘라 어린 내게 내밀던 아빠의 손은 사춘기 때나 지금이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빠도 다정함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요즘도 길을 가다가 커다랗게 잘라 파는 찐빵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나는 잠시 갓 쪄낸 빵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어린아이가 되어 행복해진다.



한 사람의 기억은 그 사람이 키우는 나무다. 기억나무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같이 산다. 좋은 기억은 좋은 모습으로 자라 꽃을 피우고 잎을 드리운다. 힘들 때 그 나무 아래 쉬면서 기운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나쁜 기억은 가시덩굴로 자라 힘겨운 상황에 놓인 사람을 더욱 옭아매 버린다. 하여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더 절망하게 된다.



나는 내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많기를 바란다. 하지만 야단치고 꾸중했던 적도 많았으니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도 가지고 자랐을 것이다. 기억 가시를 만들어 준 것이 미안하다. 다시 아이들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꽃을 많이 피우고 그늘이 시원한 기억나무를 키워주고 싶다. 이제라도 좀 더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만드는 방법이 단순한 찐빵도 조리법을 알아야 만들 수 있듯이 다정함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요즘 다정함을 배우려 애쓴다. 누군가 내게 해준 조곤조곤 다정한 말투를 배우려 한다. 지난번 직장을 옮기면서 많이 힘들었을 때 커피 상품권을 건네준 다정한 마음도 배우려 한다. 상품권과 함께 준 손편지 속의 다정한 쓰기도 배우고 싶다. 이렇게 배운 다정함을 내 아이들과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내 아이들도 내게 받은 다정함을 친구와 애인과 동료들과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살면 살수록 다정함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다정함은 찐빵 같아서, 밀가루 반죽이 빵이 되면서 부풀어 오르듯, 나누면 부풀면서 따뜻하고 보드라운 새로운 다정함을 만들어 낸다. 여럿이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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