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 웃음의 소재가 되는 곳
엄마가 죽었다. 8년 전인가, 아니 어쩌면 9년 전인지도. 2014년 겨울에 돌아가셨으니 8년 전이 아마 맞을 것이다. 2014년에 다른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2014년 하면 그냥 '엄마가 죽은 해'이다. 엄마가 죽은 나는 지금 이방인 같다. 발붙일 데가 없는 기분이랄까. 항상 이 땅 위를 유유히 부유(浮遊)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거의 알리지 않았다. 신비주의자 뭐 이런 건 아니다. 엄마가 죽었다는, 대단할 것도 없는 정보를 나 혼자 독점하는 이유는 그저 단순하다. '죄책감' 때문이다. 당시 아픈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뿌리 깊은 죄책감.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죄책감 때문에 미세한 바늘로 가슴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브런치북 공모전'과 '상금 500만 원'을 위해 나는 죽은 엄마를 팔고 있지 않은가. 혹시 만에 하나 당선이 된다면 상금은 공평하게 나눌 계획이다.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카카오페이 같은 걸로 쏴드릴 예정이니까. (되려나?) 상금 비율은 6:4로 생각 중이다. 6이 누구냐고? 당연히 나다. 엄마,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잖아요.
농담이고. 이제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셨다. 나는 그때 눈빛에 생기라고는 없는, 꿈 없는 학생이었다. 그저 이 사회가 만든 폭력적인 시스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공부를 하는 '척'할 뿐인. 그러다가 20살쯤에 내 동태눈깔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생기를 불어넣어 준 건 다름 아닌 '코미디'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작은 '일본 만담'이었다. 그 당시에는 바다 건너 마츠모토 히토시라는 일본의 천재 개그맨이 내뱉는 화술에 그야말로 매료되었다. 그 짧은 웃긴 동영상(나에게는 거의 예술이었던)을 보고 온몸의 순환이 빨라졌다. 내 생에 첫 꿈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코미디를 해야겠다.
독학으로 찾아냈다. 내가 다니던, 무려 UN사무총장을 배출한 명문고에서는 감히 찾지 못한 꿈을. 하지만 꿈을 찾은 것은 삶의 마찰을 일으켰다. 당시 (딱히 가고 싶지 않은) 대학을 목표로 재수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책상에 앉아 인강이 아니라 만담 동영상이나 보며 시간을 축냈으니 말이다. 코미디가 주는 웃음은 마치 마약처럼 내 호르몬을 분비시켰다. 나는 엄마의 얼굴보다 모니터를 더 자주 봤다. 야한 동영상을 몰래 보듯 만담 동영상을 몰래 봐댔다. 아빠는 화를 냈고, 엄마는 걱정했다. 당신의 내일보다 나의 미래를 더 생각한 것이다.
중요한 건 엄마는 죽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바쁜 현대인의 '바쁜'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내가 보았던 웃긴 동영상의 5분이 엄마에겐 5일 정도 됐을까. 무서운 건 동영상의 타임라인은 얼마든지 다시 앞으로 당길 수 있지만 엄마의 시간대는 되돌릴 수 없었다. 서서히 재생종료가 다가오는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동영상이. 그 이후에는 검은색 화면만 영원히, 끝없이 지속될 터였다. 그런 죽음의 공포에도 엄마는 항상 나를 걱정했다. 농담(코미디)으로 인해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지만 엄마는 죽어가고 있었다. 농담은 모순적인 데서 온다는데 내 삶이 딱 그러했다. 농담처럼 나는 모순적이었다. 슬픈데 웃겼고, 웃긴데 슬펐다.
결국 나는 코미디 작가가 됐다. 대학 대신 코미디 쪽으로 진로를 정한 뒤 나는 지금 그럭저럭 잘살고 있다. SNL 작가로 시작해서 경험을 쌓은 뒤, 시트콤으로 공모전에도 당선됐고, 짧은 드라마도 써봤다. 지금은 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름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잘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잘 살수록 어째 공허함은 커진다. 농담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내 모습을 엄마가 보지 못한 채 죽은 것. 이것은 나에게 있어 마치 실패한 농담(弄談)처럼 뼈저리게 아프다. 내 몸에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공허하다. 그래서 나는 이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똑바로 응시하기로 했다. 하물며 이용할 때도 있다.
상대 ㅋㅋ 게임 존X 못하네. 엄마 없으심?
나 네, 위암 말기로 돌아가셨는데요.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 들려드릴까요?
상대 아 님 ㅈㅅ
-OO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엄마 없는 농담, <엄마가 없으면 좋은 점> 중에서
농담이다. 사실 나는 요즘 게임을 안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흥미를 잃은 것 같다. 슬픈 건,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레 옅어진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조금씩. 역대급으로 큰 사건이 그저 하나의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꿈에 나타난 지도 꽤 된 것 같다. 내가 잘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신 것일까. 아니면 조금씩 엄마를 잊어가는 내가 불효자인 걸까. 어느 쪽이든 나는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속으로 죄송하다고 고해성사를 할 것이다. 그 소리가 우표 없는 편지처럼 닿지 않을지라도. 앞으로 잘 살게요. 농담은 어떤 치유력 같은 것이 있어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여전히 내 일인 농담(弄談)이 좋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과 내 죄책감의 농담(濃淡)은 점점 옅어져만 간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내 인생은, 농에서 담으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