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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Aug 18. 2023

어떤 표정을 하고 계십니까?

암 룩킹 앳더 맨 인 더 미뤄.

친구가 찍어준 사진 속의 내가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로가 무슨 색깔을 띠고 있느냐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꽤 고민한 끝에 나는 친구가 “남색을 품고 있는 노란색”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동안 찍은 내 사진을 여럿 보며 깔깔댔다. “언니 진짜 심각해 보여!”


종종 찍힌 사진 속에서 나는 무척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발을 땅에 딛고 살지 않을 정도로 칭얼대며 업어달라고 떼를 썼던 아이였어서인가? 할머니와 오빠와 친척언니와 찍은 네 살 무렵 사진도, 6살 무렵 에버랜드에서 찍은 사진도 모두 세상 다 산 사람의 힘없고 어두운 눈동자였다. 무심코 걸어 다닐 때 찍힌 요즘 사진도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 그에 걸맞은 빠른 팔자걸음. 첫인상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를 나는 아무렇게나 막 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찍어준 영상을 볼 때 특히 내가 못나 보인다. 아랫입술의 왼쪽을 비죽거리는 습관 때문이다. 시니컬한 성격을 대변이라도 하듯 나는 늘 문장 하나를 말할 때마다 수시로 입술을 비죽거린다.


SNS에서 다양한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을 본다. 하회탈처럼 웃고 있는 말과 개, 접시 깨진 소리를 듣고 놀란 고양이의 눈동자와 물에 헹구려고 했다가 사라져 버린 솜사탕을 본 허망한 수달의 표정, 도축될 것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소의 커다란 눈망울까지. 미시적으로 관찰한다면 더 많은 동물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으로 쥐의 표정을 알아챌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지도 3년이 넘었다. 표정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사랑을 들켰을 때의 표정은 숨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표정 짓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에서 방수포, 다용도 가위, 황토 발바닥 패치 등을 파는 상인들. 길거리에서 얼굴을 파묻고 엎드린 채 구걸을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얼굴에는 씁쓸함도, 외로움도, 수치심이나 모멸감도 없다. 그저 약간의 피곤함과 공허함뿐. 단 한 번도 목소리 톤에 변화를 주거나 눈썹 하나 까딱 않은 채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사람이 그렇게 무뎌진다는 건 뭘까? 사람이 그렇게 무뎌지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한가? 사람이 그렇게 무뎌지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어야 하는 걸까?


반대로, 마음을 사정없이 사로잡은 표정들도 떠올려본다. 얼굴을 주체 없이 찡그리며 웃는 얼굴들. 파안대소. 주변 사람에게서 기억에 남는 표정은 대체로 그렇게 활짝 웃는 얼굴이다. 발터 벤야민이 <일방통행로>에 썼듯, 그 얼굴의 가장 그늘진 주름의 골에 내 감정의 새는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 얼굴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벤야민이 쓴 대로 감정이 장소에 깃든다면, 내 감정은 그 사람의 웃는 표정, 그 순간에 시공간을 모르고 붙들려 있으므로. 그 얼굴을 보고 파르르 떨리는 내 감정, 감정의 창인 내 표정은 어떨까? 당신이 만약 남몰래 설레어하는 사람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설레어하는 표정을 본 당신은 아주아주 행운아이다. 당신이 설레어하는 표정을 들킬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무척 기똥차게 기쁜 일이다. 하지만 사랑에 실패한 사람의 허망한 표정은 숨길 수 없다. 그 표정을 당신은 어떻게 다뤘었나?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3학년 여름이었으니 입시는 거의 끝나갈 무렵, 갈 수 있는 대학의 윤곽도 대체로 나온 상태일 때다. 그때까지 제2외국어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프랑스어 시간에 선생님은 동급생의 프랑스어 시 낭송 영상을 틀어주었다. 때로 얼굴을 한참 찌푸렸다가 온몸을 앞으로 내밀어 부르르 떨고, 콧구멍까지 벌름거리며 한 편의 모놀로그를 펼치는 그 표정을 보고 반 아이들은 하나둘씩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영상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예술을 감상할 줄 모르는 것들이라나. 글쎄, 12년 동안 입시만을 향해 달려온 아이들에게 그 영상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와닿는 게 그 사람의 표정 말고 또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어른이 된 지금은 노래 부를 때의 표정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표정은 아주아주 중요하기도 하지만, 또 하찮은 것이기도 하고, 잘못 읽히기도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아니, 하지만 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을까? 사람은 그럴 수 있는 존재일까? 표정은 가장 은밀한 것인가, 아니면 가장 적나라한 것일까? 표정을 믿어야 할까, 말을 믿어야 할까?


요즘은 옥상에서 눈을 감고 매미 떼 합창 소리를 듣는다. 휴가지에 온 것 같은 설렘과 옛날 살던 시골집에 온 것 같은 평온함이 깃든다. 이 표정을 감상해 줄 누군가가 없어서 아쉽다. 이 표정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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