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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Jul 29. 2023

꿈을 꾸고 있습니까?

이게 꿈이야, 생시야.

오래전부터 내 꿈은 세계평화였다. 세상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꼭 필요한 곳에 퍼주고 싶다. 마치 로빈후드처럼, 세계의 부를 재분배하고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여행가이자 구호 전문가 한비야 씨의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이 무척 유행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택한 내게는 별달리 선택지가 없었고 다만 유엔기구에서 일하는 꿈을 꿨다. 부끄럽지만 기근이 심각한 나라에서 촬영한 삐쩍 마른 어린아이 사진을 자습실 책상에 붙여놓고 공부했다. 지금은 안다. 불행을 팔아 동정을 사는 일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그래도 어린 나이에 꾼 꿈이 지금까지도 얼마간은 유효하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 말이다. 이런 꿈에 동조해 주는 친구들과는 깊은 유대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친구는 자기가 평생 가질 직업들은 모두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인생의 목표는 남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처음 만났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에 가서 세 시간 동안 수다를 떤 후에야 헤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누군가는 자기 가족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 글에 그림을 그려주는 로빈은 무병장수가, 또 다른 친구는 석사를 무사히 마치고 지금 몸담은 교직에서 정년을 채워 명예퇴직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어떤 사람은 자기 친구에게 들은 꿈이 ‘진짜’라고 했다. “걔는 무회전킥을 차고 싶대. 그게 꿈이지.”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유튜브에서 호날두 무회전 킥 영상을 감상했다.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인간들이 사랑스럽다. 소박한 꿈을 꾸는 인간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고 싶다. ‘어른들’의 기준에서 아이들의 ‘꿈’은 ‘장래희망’과 동의어가 돼 버린 사실은 누구나 안다. 장래희망란에 쓰는 아이들의 꿈은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것도. 그 시시때때로 바뀌는 꿈들의 목록이 대부분 직업을 의미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 걸까? 세상에는 꿈꿀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다가 꿈의 또 다른 의미에 생각이 미쳤다. 꿈을 꾸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





한 때는 매일 같이 꿈을 꿨다. 전장에서 포위된 채 총알세례를 받거나, 나도 모르게 알몸으로 거리를 누비게 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죽어 있는 새파란 내 머리채를 오도카니 보고 있는, 꿈에 나올까 무서운 악몽들. 그럼에도 반복되는 장면들과 서사, 데자뷔처럼 철마다 한 번씩 만나는 세계관들도 있다. 자주 꾸는 꿈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이빨이 한여름 오디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꿈을, 누군가는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이 점이 아주 흥미롭다. 꿈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계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꿈을 매일 꾼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인생의 3분의 1을 다른 우주에서, 다른 인격 혹은 다른 종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한 번뿐인 것은 없는 것과 같다고. 장자는 호접지몽을, 물리학자 볼트먼은 평행우주에서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볼트먼의 두뇌’를 이야기했다. <롤리타>와 <창백한 불꽃>으로 알려진 소설가 나보코프는 나비를 수집했다. 시간의 억겁에 비하면 찰나는 보잘것없는 것일까? 우주에 비하면 우리 일상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일까? 자고 일어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음표만 남도록, 기억을 하려 하면 할수록 보란 듯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맥거핀 같은 것일까? 현실과 꿈을 구분 짓는 것은 중요하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 짓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꿈같은 인생에 꿈꾸는 걸 꿈도 꾸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두 가지 ‘꿈’은 합쳐졌다. 터무니없는 것, 현실과 동떨어진 것, 그러나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어떤 우주에서는, 어떤 먼 미래에서는.


만약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면 허망한 일이다.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맥거핀 같은 것이니까. 일상을 지속할 동기를 부여하지만 결국은 실체를 찾지 못하고 끝나는 그 무언가. 당신이 행복 대신 꿈을 좇았으면 좋겠다. ‘진짜 꿈’을 꾸며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무엇을’보다 ‘어떻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일체유심조라고 한다. 나는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당신이 한 번 뿐이지만 이렇게 강렬한 삶을, 이토록 뜨거운 감정들을 무시하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궁금하다. 인생은 꿈일까? 꿈같은 일상을 살고 있나요? 꿈을 위해 일상을 살고 있나요? 당신의 꿈은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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