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주목할 기업] "일 많아도 행복한 이유…말 통하고 믿으니까"
고경표, 여진구, 박규영, 한가인, 하지원, 송중기, 비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2000년대 대학을 다녔다면 떠오를 이름, 맞다, 대학내일이다. 이들은 모두 주간지 대학내일 표지 모델 출신이다. 한때 대학내일 표지모델이 스타가 되는 등용문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대학생 10명 중 9명의 손에 들려 있던 대학내일인데, 지금은 더이상 볼 수 없다. 1999년 발행을 시작해 20년간 대학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대학내일은 2020년 1월부터 '장기 휴간'에 들어갔다. 휴간 3주 전 표지모델은 당시 가장 '핫'했던 펭수. 대학내일은 긴 방학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20대의 트렌드를 쫓아 제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수많은 이들의 20대 풋풋했던 시절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는 대학내일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인지 아쉬웠던 이들이라면, 잡플래닛 컴퍼니타임스가 선정한 '2021 주목할 기업' 순위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컴퍼니타임스는 2020년 한해 동안 잡플래닛에 남겨진 평가를 종합해 만족도 높은 기업을 찾아 소개했다. 2021년 주목할 '신도 모르는 직장'은?
대학내일은 유수의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공기업들을 제치고 '2021 주목할 기업' 종합 24위에 올랐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와 같은 점수이며, 국민연금공단, 한국가스공사보다 앞선 점수다. 중소·중견기업 중에서는 종합 1위다.
순위가 공개되자, 적지 않은 이들이 되물었다.
"대학내일이? 왜?!"
이 짧은 질문에는 사실 '잡지 발행도 못하는 작은 잡지사가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고?' 라는 의문이 담겨있을 터. 대학내일은 잡지사라기보다 종합 광고홍보 대행사다. 350여명의 임직원이 MZ세대 전문 미디어, 마케팅, 리서치 등 업무를 하고 있다. 2019년 420억 원 가량의 매출액을 올렸고, NHR커뮤니케이션즈, 51퍼센트 등 사내 독립 법인도 운영 중이다.
여전히 물음표는 남는다. 도대체 대학내일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전·현직자들이 이렇게 후한 평가를 남긴 걸까? 그것도 송곳같은 평가가 난무하는 잡플래닛에서.
그래서 지난 23일, 대학내일에 찾아가 직접 물어봤다. 대표들 입에서 나오는 광고성 멘트는 거르고, 3·4년차 현직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눠봤다.
"대학내일에서 일한다는 것, 어떤가요?"
(왼쪽부터) 최현덕 매니저, 정지수 매니저, 이시은 캐릿에디터, 김바다 매니저
-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1팀, 3년차 정지수 매니저입니다.
시은/ 콘텐츠팀, 3년차 이시은 에디터입니다.
현덕/ 채용에이전시인 사내 법인 NHR커뮤니케이션즈 채용마케팅 3팀에서 일하고 있는 4년차 최현덕 매니저입니다.
바다/ 매스타깃 마케팅 에이전시인 51퍼센트의 캠페인 2팀에 근무 중인 김바다 매니저입니다.
- 잡플래닛 사내문화 만족도 4점을 넘긴 대학내일만의 문화가 궁금합니다. 대학내일의 사내문화가 좋다고 생각한 이유를 알려주세요.
현덕 / *직원평의회가 가장 신선했어요. 대학내일, NHR커뮤니케이션즈가 통합 운영하는데 가능한 모든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답하려고 애쓰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희 층 탕비실 간식을 요청해봤는데, 바로 반영돼 달걀, 딸기우유 등으로 바뀌더라고요. 좋았죠.
*직원평의회는 전 직원들을 대표하는 자치기구다. 매년 20명 내외의 직원들이 직원대표로 선출되는데, 이들은 정기 간담회를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공론화한다. 의제들은 경영위원회, 팀장회의 등을 거쳐 제도화된다.
바다 / 저희 층에는 몰티져스도 있습니다! 사소하게 들릴 수 있는 탕비실부터 정말 중요한 이야기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가 대학내일 문화 같아요. 익명의 편지에 대표가 사내 인트라넷으로 답하는 '대학내일에 보내는 편지', 50개 이상 '좋아요'가 모이면 관련 직원이 답해야 하는 '아고라' 같은 제도가 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어려운 점이 있을 때 어딘가 말할 곳이 꼭 있는 점, 이게 대학내일의 특징이죠.
지수 / 저는 '협업증진라이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작년 유튜브 라이브가 유행할 때, 이를 사내 소통에 적용해 사후 시청 인증 이벤트, 실시간 댓글 소통 등을 했는데요. 이를 통해 같은 회사지만 접점이 없는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일이었던 유튜브 라이브를 사내 소통에 녹이고, 이벤트로 회사 특유의 문화를 더해 자연스럽게 즐기는게 진짜 좋았죠.
저는 다른 마케팅 기업에서 인턴을 한 뒤, 대학내일에 와 인턴과 계약직을 거쳐 정규직이 됐어요. 여기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인턴도 이거 할 수 있어요?"예요. 인턴도 해외 워크샵이나 회의에 함께 참여하면서 부서의 일원으로 대하는 모습이 너무 달랐죠.
시은 / 대학내일이라고 하면 자유, 소통, 평등을 많이 생각하는데 '내 월급은 내가 번다'라는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는 *책임생산제가 우리만의 차별화되는 문화 같아요. 저는 경력 이직을 몇 번 거쳐서 대학내일에 왔어요. 선배들이 노하우를 전수하고 후배들이 이를 고맙게 여기면서 잘해내려고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대학내일의 문화를 만든 것 같아요.
전 직장에서는 제가 회사의 톱니바퀴라고 느껴졌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내 말을 할 수 있고, 내 의견이 영향력을 얻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책임생산제는 ‘동료의 땀을 탐하지 않는다’는 대학내일의 운영철학 아래 모두가 각자의 업무적 책임을 다하는 제도다.
- 사내문화라는 표현은 애매모호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딱 잘라서 '이것이 좋은 사내문화'라고 기준을 제시하기가 어려운 것 같은데요. 좋은 사내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은 / 입사 전에는 '워라밸'을 사내문화의 유의어로 생각했다면, 몇몇 회사와 대학내일을 경험해보니 워라밸과 좋은 사내문화의 연결고리는 약한 것 같아요. 대신 내가 야근하고 고생할 때, 뭔가 해냈을 때 인정해주고 유연하게 업무 시간을 조정해 쉴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는지가 좋은 사내문화의 기준처럼 보여요.
바다 / 긍정적인 사내문화는 '눈치 보지 않는 연차 사용', '업무 효율을 높이는 일하는 방식'을 회사가 권하는 분위기가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지수 / 사실 대학생 때는 사내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어요. 대학내일에 입사하고 보니 구성원 모두 평등한 입장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 사내문화라고 생각해요. 30분 단위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보상 휴가 제도'로 휴식 만족도를 높여주는 문화가 참 마음에 들어요.
- 잡플래닛 리뷰를 보면 '주도적' '적극적' '인싸 스타일'이 조직에 어울린다는 평이 많은데요. 대학내일은 '인싸'여야 입사할 수 있는 건가요?
바다 / 저는 개인적으로 인싸와 아싸 사이에 있는 관심이 필요한 고양이 같은 사람인데, 낯을 가려서 처음 3개월 동안은 거의 한마디도 안했어요. 그러다 첫 워크샵 가는 길에 차 안에서 DJ 역할을 자처하면서 사내 소통을 시작했어요. 대학내일은 제가 편하게 이야기 할 때까지 기다려준 다음 제가 입이 트이자 '아무 이야기나 해봐', '다 괜찮아', '들어 줄게'라는 느낌으로 무대를 깔아줘요. 이렇게 인싸와 아싸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해주는 '그럴싸' 같은 사람들도 많아요.
지수 / 저는 ‘노력형 인싸’ 같아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이끌어주는 분위기가, 대학내일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인싸가 되게 만들어주는 듯해요.
현덕 / 대학내일의 인싸는 주도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아요. 업무상 고객사와 주도적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싸, 적극적인 사람이 돼 있죠.
- 대학내일은 MZ세대의 소통에 강점을 두고 있는데요. MZ세대도 넓게 보면 1980년생부터 2010년대 초중반생까지 30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이런 세대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은 없나요?
시은 / 요즘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한 2540 직장인들을 위해 MZ세대 트렌드를 전해주는 '캐릿' 에디터로 일하다 보니 10대 언어를 섞어서 말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수다 떠실 분’을 사내 메신저로 찾고 사소한 것 같지만 창의적인 수다타임을 가집니다. 팀 대화방에 요즘 뜨는 콘텐츠를 서로 경쟁적으로 공유하고 수다를 떨면서 아이템을 찾아요.
바다 / 저희는 팀 회의에서 모든 구성원이 유행하는 것, 갑자기 뜬 것을 찾아 공유하고, 여기에 각자 아는 것을 더하며 살을 붙여요. 그리고 '뇌즙짜기'라는 활동을 해요. 누가 어떤 이야기를 던지면 거기에 연계되는 이야기를 끝없이 돌림노래처럼 이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이야기하면서 받아 적어요. 예를 들어 '근본'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의 근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변주해서 던지며 아이디어를 쌓는거죠.
지수 / 저희는 메신저에 요즘 핫한 테스트 링크를 공유하고 있어요. 전사적으로는 '트렌드 워칭 그룹'이라고 격주로 모여 트렌드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MZ세대의 인사이트를 발굴하려는 노력인데 도움이 돼요.
- '20대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분위기' 등 회사 분위기 때문에 공부해야 한다는 리뷰가 눈에 띄는데요. 개인의 성장을 위해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현덕 /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팀 리더가 자격증을 따면 1인당 100만원의 포상을 주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죠. 어떤 공부가 일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경쟁적으로 지원하는 문화가 있죠.
시은 / 업무에 필요한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면 선뜻 서로 가르쳐 주는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다들 바쁜데 일하면서 다른 직원에게 강의까지 해주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힘들잖아요. 저희는 사내 전문가가 나서서 강의를 해요. 직원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데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외부 강사를 섭외하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다양한 지원을 해주려고 해요.
지수 / '당장 써먹는 스터디'라고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참가 신청을 하고 '사진 잘 찍는 법', '영상 편집' 등의 실무 외에 삶에도 도움되는 취미도 회사에서 배울 수 있어요.
- 상대적으로 워라밸 점수는 낮은 것으로 나왔어요. 리뷰에서도 업무 강도가 강하다는 의견이 많고요. 일이 힘들면 갈등이 늘기 마련인데, 높은 업무 강도에도 사내문화가 좋다고 평가받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시은 /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좋으면 다닌다고 하잖아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팀원들이 진짜로 서로 일을 덜어 주면서 같이 끝내는 분위기라 일이 많아도 다닐 만한 회사로 계속 회자되는 것 같아요.
바다 / '120을 혼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60을 해도, 60을 하는 다른 팀원과 같이 잘하는 사람'을 회사가 원한대요. 그래서 내가 지치고 퍼져도 누군가 내 멱살을 끌고 함께 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일은 진짜 많고 야근이 몇 달 내내 이어질 때도 있지만, 그 믿음이 저를 지탱해요. 회사가 칭찬을 받으러 오는 곳은 아니지만 서로 힘들 때 칭찬하는 일의 중요성을 리더들이 인식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의 진심이 느껴지는 응원이 오가요.
현덕 / 개인적으로 힘들어도 고개만 들면 더 힘든 이들이 보이고, 다들 웃으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신기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있어요.
'대학내일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떠한가'를 이야기하는 사이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들은 일관되게 '소통'과 '함께'를 이야기했다. 회사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믿음, 함께 일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엿보였다. 이 정도면 '찐'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완벽한 회사가 있겠느냐만, 이들이 꽤 즐겁게 일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나저나 20대의 추억이 가득 담긴 주간지 대학내일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답은 MZ세대에 있단다.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진화된 소통 방식에 맞춰 대학내일의 콘텐츠는 웹, SNS 등에 계속 새롭게 올라가고 있는데요. 언젠가 지금의 MZ세대가 대학내일의 종이 잡지를 다시 만나기를 원하는 시기가 오면 그때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승혁 기자
sh.oh@compan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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