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조금씩 곁을 내주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엄마가 된 이후 일 것이다.
엄마가 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아이에게 맛있는 집밥을 뚝딱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비록 10분이면 되는 반찬을 30분 동안 레시피를 수도 없이 돌려보고, 그렇게 만든 반찬이 2프로씩 늘 부족한 맛이라 갸우뚱하곤 하지만 , 편한 밀키트를 포기하고 여전히 레시피를 들춰보며 나만의 집밥을 휘리릭 만드는 그날을 꿈꾼다.
사실 요리에 딱히 소질이 없는 듯한데 , 왜 이렇게 나는 ‘ 그래도 엄마(혹은 아빠)가 해주는 집밥 ’이라는 상징적인 것을 놓지 못하는 걸까? 요즘처럼 바쁜 일상에 너무 고리타분 한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이유들이 꼬리를 물곤 하지만 ‘그럼에도 가정의 중심에 집밥이 빠질 수 없지!’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내가 생각하는 ‘집밥’은 엄마의 품, 가족의 온기다.
가끔 드라마에서 다 큰 자식이 밖에서 힘든 일을 겪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차려준 집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집밥 한 그릇이 위로가 되고, 언 마음마저 녹이는 따뜻한 엄마의 품 같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 나도 내 아이가 즐겁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 집밥 생각나서 왔다"라고 말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싶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을 곳 없었던 아빠가 떠오른다.
가족의 품을 떠나 부산에서 서울까지 , 돈 한 푼 없이 상경한 10대 남자아이, 보일러도 없는 추운 단칸방에서 5-6명씩 자면서 터득한 기술로 본인 장사를 시작했던 20대 청년,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살아온 인생 속에서 , 마음이 고플 때 사이가 틀어져버린 아내에게 갈 수도 , 본인의 엄마에게 갈 수도 없어, 음식점 거리를 서성이는 60대 중년의 남자.
참 많은 세월 마음이 고팠겠다. 그랬겠구나..
예전에는 ‘자업자득이지 뭐’ ‘그러게 진작에 가족한테 잘하지 ‘라는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
엄마가 되어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건지 , ‘우리에게 잘하지 못했던 아빠‘ 이전에 ‘ 사랑받지 못한 , 가족의 따뜻함을 모르고 자라온 아이이자 청년 이었던 사람’ 에게 느끼는 연민이 깊어진다.
그러니 내가 ‘집밥을 뚝딱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아빠에게 , 아빠의 내면 속 어린아이에게 ,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아빠! 마음이 고플 때, 저희 집으로 집밥 드시러 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