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되든 밥이되든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인생 이였다. 20년 동안 7번을 무너지고 세운 8번째 가게의 마지막 철문이 닫히던 날 , 아빠의 칩거가 시작되었다.
집에는 방이 3개였지만 아들과 딸 , 각방쓴지 한참 된 아내가 각자의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있으니 , 아빠 자리는 늘 거실 이였다. 사방이 뚫려 있지만 사방이 막힌 듯한 적막함 속에서 아빠는 먹고 자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세상을 등지듯 누워 잠을 주무시거나 , 세상을 잊은듯 티비만 보고 있는 아빠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곁에 있어본 적 없는 아빠가 , 갑자기 가족들 곁에서 함께 한다는 것. 서로에게 낯설고 불편한 일이였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집 한 가운데 망부석처럼 있는 아빠가 불편한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안보는게 낫겠다 싶은 마음반 , 방에서 편히 지내시는게 낫지 않나 싶은 마음반으로 동생방에서 지내실것을 여쭤봤다.
“아빠 , 거실에 계속 계시는것보다 동생 방에서 계시는게 어떠세요? ”
“그래도 가장인 내가 거실을 지키고 있어야 전체를 어우를 수 있지 , 그냥 여기가 편하다 “
사라져가는 본인의 자리를 그렇게 나마 지켜내고 싶으셨는지 , 아들에게 미안해서 였는지 알 수 없지만 , 가족들은 꽤나 불편했다.
그동안 아빠는 ‘ 돈이 없어서 가족들이 나를 무시한다’ 는 생각으로 본인과 가족의 마음을 갉아 먹었다. 가족끼리 보듬고 감싸 안으며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국에 , 그는 7번을 탓했고 , 8번째 역시나 그랬다. 탓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가족은 없었다.
아빠가 외출하실 땐 자유롭게 거실을 오가며 생활을 한다. ‘투-벅 투-벅’ 아빠의 발자국 소리에 스르륵 각자의 방에 들어간다. 대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가 마주하는 건 ,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텅-빈 거실과 문틈으로 고개만 내밀어 “오셨어요” 하고 들어가버리는 자식들 뿐이였다. 외딴섬 같은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곁을 주기 싫은 감정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어린시절 바퀴벌레가 출몰하던 단칸방에서 조차도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바랬던 건 , 돈 많은 부모가 아니라 , 서로를 보듬고 서로에게 다정한 가족 , 그거 하나였다. 그런 가족이였다면 , 아빠 바램대로 , 거실에서 우리 가족이 어우러졌을 것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우리에게도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우린 어떻게 될까? “라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남편 답은 심플했다. “그래도 잘 살아낼꺼야 우리는! ” 이 한마디가 참 든든했다.
‘ 울고싶겠지 , 힘들겠지 , 하지만 잘 살아낼 수 있으리라’ 이 남자를 믿고 , 이 남자는 나를 믿고 , 서로의 손을 잡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 유지되지 위해 중요한 건 텅텅 비어버린 잔고가 아니라 , 그럼에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 우리의 마음잔고 라는걸 알기 때문이다. ( 물론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
마음잔고가 넉넉해진 지금 , 시간을 돌려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있다면 , 망부석처럼 서 있는 아빠와 가족을 이어주고 , 돌덩이처럼 얼어붙었던 아빠를 꼭 안아 녹여주고 싶다.
“아빠 , 우리 다시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잠깐 쉬는 시간이예요. 다 내려놓고 잠시 쉬어요 우리 , 그리고 다시 해봐요.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