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빠는 동시집 두권을 들고 나와 동생에게 매일 시 한편씩을 외워 아빠 앞에서 낭독할 것을 명령 하셨다. 취지는 좋았다. 시를 가까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으셨을 것이다. 그 좋은 걸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테지
배움이 짧았던 아빠는 시를 외우고 , 낭독하는 것 말고는 , 달리 아이들에게 시를 접하게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강압적으로나마 시를 외우면 분명 너희에게 도움이 될거야 , 그리 믿으셨나보다.
그시절 우리는 시가 무시무시했다. 꾀를 쓴다고 처음에는 짧은 시들을 골라 외우고 , 남아있는 긴 시를 외우는 날에는 자신이 없으니 ,무릎을 꿇고 앉아 낭독을 하기도 했다. 낭독을 피하는 방법은 낮에 아빠가 계시면 집에 안들어갔고, 밤에 퇴근하시는날엔 자는척을 하는것이였다.
아빠는 자신을 피해 다니는 우리들에게 화가 났고 , 그럴수록 우리는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을 두려워 했다.이런 불협화음 속에 , 결국 동시집 한권을 다 읽기도 전에 ‘시 외우고 아빠 앞에서 낭독하기'는 막을 내렸다.
아빠의 취지와는 다르게 , 그때 외운 시는 한줄도 기억이 나지 않고 , 무릎꿇고 있던 장면만 기억나는 걸 보면 , 아빠의 시 교육은 무시무시한 혹평만 남긴 실패작이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요즘 내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보여질 때가 있다.
영어책을 읽어주면 좋다길래 구입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줬다. 아이는 재미가 없는지 책을 계속 덮는다. 끝내 자리를 이탈한다. “하 –” 순간 내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 “원 오렌지 ~ 투 토마토 ~ 솔이야~ 토마토 좋아하잖아 이것 좀 봐 봐~ 응~? “
좋은 시를 알려주고 싶어서 가져온 시집 , 찬찬히 읽어봤으면 해서 외워보라 하고 ,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 좋다니까 낭독까지 하게 하셨을 아빠의 어설픈 시 교육의 장면이 그대로 재현되는 내 모습에 요즘 나는 꽤.나. 머.쓱.하.다.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줄도 모르고 , 부모 마음을 몰라준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니 , 나는 안 그럴줄 알았는데 똑.같.다
이제라도 나는 , '적어도 아이에게 무시무시한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아빠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 아이에게 다가가는 엄마가 되고싶다.
“ 아빠 ! 저도 동시집 한권을 샀어요 . 웃기죠 ? 그렇게 무시무시한 존재였는데 , 아이들이 시를 접하면 좋긴 좋다더라구요..! 대신 저는 아이에게 제가 읽어줄꺼예요! 그 시절 제가 바랬던건 , 아빠와 함께 시를 읽고 부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였더라구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