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남편과 집 근처 호프집에 치맥을 즐기러 갔다. 오랜만에 즐기는 데이트.
“딸랑”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홀로 들어와 기웃기웃 앉을 자리를 찾는 머쓱한 눈빛과 행동. 익숙했다. 주인아저씨 안내로 빈자리에 앉아 폰을 보며, 홀로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그 분을 보니, 잊고 있던 사람이 떠올라 한없이 무거워졌다.
아빠는 치킨을 참 좋아했다.
귀가가 늦은 저녁에도 , 이미 술 한 잔을 걸치고 귀가하는 날에도, 집에 있다가도 불연듯 치킨을 먹자며 집 앞 호프집으로 가족을 데리고 가곤 하셨다. 자식들이 어릴때는 대부분을 (어쩔수없이) 함께 했지만, 시간이 흘러 아들은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고, 아내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질대로 멀어졌던 아빠는 큰 딸인 나에게 유독 전화가 잦았다.
사실 귀찮았다. 거절을 잘 못했던 나는 , 투덜대며 나가 퉁명하게 앉아서 자리를 채웠던 날도 있었고 , 울리는 전화를 모른척 하며 외면하고 잠 든 날도 있었다. 내가 외면했던 날은 아빠도 저런 모습이였을까? 홀연히 치킨을 먹으며 받지도 않는 전화기를 보고 있었을 사람. 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 며칠이 지나도 먹먹했다.
나이가 들면 부모를 이해한다는 말이 있던데, 연민으로부터 오는게 아닐까 싶다. 평생 서로의 마음 한 번 보듬어 주지도 못하고 , 따뜻한 말 한번 건네지 못했던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서글프다.
부부로 살아보니 , 외로움에 방황했을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연민과 서글픔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과오를 내 안에 묻게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다음에는 좀 더 다가가야지 , 좀 더 다정해야지.’ 물론 대면하면 데면데면할 때가 많겠지만.
아빠가 본인 부모로부터 혹은 배우자로부터 다정함을 느껴봤더라면, 가족에게 다정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우리 가족이 아빠의 “치킨먹자!”는 호출에 하하호호 웃으며 다같이 치킨을 먹으러가는 가족 중 하나였겠지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그럴때마다 남편과 아이에게 좀 더 다정한 말투, 다정한 팔짱을 한 번이라도 더 끼려 노력한다. 부디 가정안에서 느끼는 엄마 그리고 아내의 다정함이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아빠보다 조금 더 세상의 다정함과 사람의 다정함을 경험한 내가 아빠를 향한 방어기제를 내리고 아빠에게 다정한 손길을 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빠 , 조만간 만나면 치킨에 맥주 한잔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