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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 Jan 20. 2019

무장경찰 앞에서의 사랑의 인사

델리 공항

공항 안에서 인사를 나누려던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인도의 공항은 출입구부터 무장경찰이 지키고 서서 비행기표가 없으면 공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거기서 인사하고 헤어지려는데 패트가 두 손을 맞잡고 경찰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인사할 시간을 달라는 거였다.

“Please, please, please.”

패트가 얼마나 간절하게 사정하는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경찰은 처음엔 안 된다고 고개를 젓다가 패트의 부탁에 마음을 돌렸는지 입구의 복도에서 딱 5분만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딱 5분.

우리는 다시 만날 계획도, 약속도 없었다. 우리에겐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 삶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고작 하루 전에 알아챈 사랑이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고, 기대할 수 없었다. 
다시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헤어지는 거다.

딱, 5분 후에.


경찰의 호의로 우리는 입구의 유리문과 공항 내부의 유리문 사이, 복도에 앉아 5분의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패트는 바쁘게 여러 가지 주의사항들을 늘어놓았다. 모르는 사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길을 건널 때는 차를 꼭 살펴야 한다, 밤늦게 다닐 때는 더 조심해라 등등 부주의한 내가 조심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었다.

시간이 마구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패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얼굴을, 그 눈을, 그 아름다운 파란 눈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트가 내게 입을 맞췄다.

“이제 우리를 총으로 쏘겠지.”

우린 같이 웃었다. 다행히 무장경찰은 우리를 쏘지 않았다. 계속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으나 그건 인도인들의 흔히 보이는 애정 어린 호기심에 찬 시선이었다. 인도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입을 맞췄다.

공항 입구 복도.

“I will miss you.”

“I will miss you.”

우린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Love you.”

패트가 나를 안고는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울음을 터뜨렸다.

“See you again.”

“See you again.”

5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일어났고, 패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는 아주 간신히, “Love you.”라고 말했다.

“Love you, sweetheart.”

패트가 내 눈을 보고 인사했다.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



*

Hello beautiful Sue,

I'm writing this on the toilet as you pack your bags outside with all your last minute shopping.

I really am going to miss you girl.

You've been so much fun and I never realised that I'd have such a good time with you and that we'd get along so well.

This is a sad farewell indeed.

You are fucking amazing.     


LOVE

PAT

XXX     


I want to see you again.


*

여기 하나의 길이 있어.

단 한 대의 차도,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는 내 무릎에 손을 얹고 있어.

여기 하나의 창문이 있어.

금빛 성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우린 사막을 향해 가는 남녀에 대한 소설을 만들고 있어.

여기 하나의 사막이 있어.

눈이 빨개진 내게 넌 칭기즈칸의 후예가 아니라며 웃고 있어.

여기 하나의 방이 있어.

우린 빌어먹게 미안하다고 소리치며 싸우고 있지.

여기 하나의 거리가 있어.

손을 잡고 걷는 우리에게 누군가는 럭키가이라고 소리치고, 누군가는 럭키걸이라고 소리치지,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으라는 듯이.

여기 하나의 마당이 있어.

이방인 부부의 약속을 바라보며 너는 우리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여기서 하자고 했고, 나는 내일 밤이 좋겠다고 했지.     

인도가 있고, 성난 릭샤왈라가 있고, 다정하게 내 목에 손을 올리는 네가 있고, 뜨거운 물이 담긴 양동이가 있고, 단 한 번도 빨지 않았을 것 같은 담요가 있고, 미지근한 맥주가 있고, 웃음을 터뜨리는 내가 있고, 매일 커져가는 배낭이 있고, 열한 명의 애인을 가진 인도 남자가 있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있고, 선한 눈의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짜이가 있고, 장난을 치는 네가 있고, 해가 진 후에 첫 별이 뜬 호수가 있고, 화장을 한 소년이 춤을 추는 사막이 있고, 우리가 키스를 나눈 금빛 하벨리의 계단이 있고, 울고 있는 내가 있고, 그리고 또다시 인도가 있지. 또다시 네가 있고.     

안녕, 내가 과연 이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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