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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 Feb 03. 2019

꼭 뗏목이어야 해?

-라오스로

캄보디아, 처음 만난 때로부터 꼭 1년 후,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찬 펍스트릿의 거리에서 우린 새해를 맞았다. 작년과 달리 마이크를 잡은 누군가가 카운트를 셌다. 새해가 되었음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자 나는 패트에게 한국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패트 역시 내게 한국어로 “새해 복 많이 받아”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새해가 되었고, 우리는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옮겨갈 준비를 했다.

인도의 사막에서 덜컥 약속해 버린, 뗏목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으로 뗏목을 만드는 법이나 메콩강의 댐 위치를 검색하다가 패트가 침대에 털썩 누우면서 미얀마에 가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꼭 뗏목 여행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패트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단지 시간이 걱정돼서 그래.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겠어. 며칠을 가도 마을 하나 없을 수도 있고, 뗏목 위에서 자야 할 수도 있어. 땡볕에서 며칠을 견디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어.”

그는 매우 걱정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나는 잠자코 패트의 말을 들었다.

“메콩강 물아래에는 나무도 많고 돌도 많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 사실 정보가 거의 없어. 이런 여행을 앞서 했던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

패트 말이 맞았다. 뗏목 여행은 무모했다. 계획을 짤 수도 없었고, 앞일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도 없었다.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었고, 너무나 지루할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고, 그러니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패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뗏목 여행을 꼭 가야 하는 건 아냐.”

그러나 이건 그의 계획이었고, 1년간 기다린 것도 그였다.

“우리가 막막한 건 이게 완전히 새롭고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야. 다른 것을 해 보기 위해 넌 호주를 떠났고, 우린 이 여행을 1년간을 이야기해 왔잖아. 지금 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건 이 여행이 정말 무모하고 위험하다는 걸 우리가 받아들이는 거고, 그럼 우린 다시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될 거야. 지금, 라오스로 가고 있는 지금, 뗏목 여행을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하게 되는 거야. 한걸음을 내딛거나 뒤로 돌아가는 거야.”

그는 끄덕였고 내게 입을 맞췄다.

“고마워. You make me feel better.”

우리는 그렇게 다시, 뗏목에 오르기로 했다.


막막한 뗏목 여행을 구체적이고 예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뗏목의 속도를 구하고 라오스 지도를 보며 대략적인 일정을 짰다. 뗏목은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고, 우리는 북쪽의 도시 팍벵을 출발지로 정해서 손가락 마디로 메콩강을 옮겨 가며 뗏목의 경로를 짚어 보았다. 팍벵에서 출발해 라오스를 관통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한마디로 터무니없었다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팍벵부터 비엔티엔까지는 대형 여행사들이 보트여행을 하는 여정이었고, 그들의 일정을 참고할 수도 있겠지만 뗏목을 직접 만들어서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에 가 보기로 했다. 그 여행사 일정에 없는 곳.

그렇게 우리는 여행사들과 반대로 비엔티엔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가기로 한다. 남쪽의 4000개의 섬.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여행책자를 읽고 있는 패트 @까만


뗏목 여행을 대비해 갖가지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간다.

웬만한 것들은 한국에서 모두 가져왔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이 꽤 있다.

우리는 손목시계를 하나 사서 알람을 테스트한다. 아침 일찍 배에 올라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마을을 찾아야 한다.

몸에 바르는 선크림을 산다. 하루 종일 뗏목에서 해를 받고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팬티를 몇 장 더 산다. 빨래를 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거라 생각해서이다.

머리끈을 산다. 긴 머리를 묶어야 미리 사 둔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쓰는 데 편했다.

국제전화가 가능한 전화방(?)을 찾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한국에 휴대폰을 두고 와서 엄마는 걱정이 많다.

괜찮아, 엄마. 응,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자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패트가 자는 동안, 라오스 여행 책자를 살펴보며 출발지를 좀 더 아래로 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비엔티엔부터 4000개의 섬까지는 700km라 우리가 계획한 3주로는 어림도 없는 데다가 중간에 큰 마을이 많아서 이동이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패트가 일어나기를 기다려 같이 인터넷으로 지도를 들여다본 후에 출발지로 타켁이라는 마을을 잡는다. 

여행 책자의 지도에는 타켁에 대한 정보가 없을뿐더러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아 우리는 출발지가 매우 마음에 든다. 타켁의 아래로 강을 따라 작은 마을이 늘어서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다만 4000개의 섬에 도착하기 전에 100km나 이어지는 정글을 뚫고 지나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강가에서 몇 킬로미터를 정글 속을 걸어서 마을을 찾아야 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좀 더 자세한 지도를 구할 것.


가방을 싼다. 

최소한의 짐. 침낭. 일기장은 두 개의 비닐봉지에 두 번을 묶는다. 내가 소지한 것들 중에 일기장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디지털카메라 속의 사진은 모두 노트북에 옮긴다. 노트북은 캄보디아에 두고 갈 거라 사진을 모두 USB에 다시 옮긴다. 그리고 몇 개의 사진을 추려 웹하드에 올린다. 

자,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준비가 되었다.     


손목시계 @까만


네 시 사십오 분 알람을 듣지 못했다. 시장에서 산 손목시계는 다섯 시에 삑 하고 작은 소리를 냈고,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그 소리에 잠을 깼다.

이를 닦고, 옆에 준비해놓은 옷을 챙겨 입고, 모두 꾸려 놓은 가방을 메고 십 분 만에 방을 나섰다.

아직 밖은 깜깜하고 몹시 차가웠다. 나는 셔츠 단추를 여몄다.


라오스의 사천 개의 섬을 향해 달리는 버스는 여섯 시 출발 예정이었으나 여섯 시 오십 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버스는 열두 시간 후에 사천 개의 섬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사천 개의 섬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바로 야간 버스로 팍세까지 올라갈 계획이었다.      

열두 시가 넘어서 도착한 휴게소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 시트에는 학과 초가집이 거꾸로 그려져 있다. 오래된 한국 버스의 의자엔 손잡이가 떨어져 있고, 의자는 몹시 불편하다. 


버스 @까만


저녁 일곱 시 반, 승객의 한 명인 줄 알았던 캄보디아 남자가 우리를 향해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일 분 뒤에 버스에서 내려서 내일 아침 여덟 시 삼십 분에 버스터미널에 다시 모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버스는 국경을 넘어 라오스의 사천 개의 섬으로 향하는 버스였고,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티켓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어이! 거기!”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내렸다.

그 버스에 타고 있던 외국인은 총 여덟 명. 두 쌍의 (영국 억양의) 호주 커플, 시드니에서 산다는 한국 여자, 한국인인 줄 몰랐던 한국 남자가 우리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내일 모이게 될 버스터미널을 알려주겠다는 캄보디아 남자를 따라 여덟 명의 외국인은 배낭을 메고 걸었다. 그중 누구도 우리가 내린 이 마을의 이름이 무엇인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숙박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우리는 이름 모를 마을이 아닌 사천 개의 섬에 닿았어야 했다. 야간 버스로 갈아타 팍세로 올라갈 수 있었어야 했다.     

캄보디아 남자가 우리를 이끈 곳은 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였다. 

“이 앞에서 아침 여덟 시에 모여서 여덟 시 반까지 아까 여러분이 내린 터미널에 가게 될 겁니다. 그러니 여기 묵는 게 편할 겁니다.”

여덟 명의 외국인은 이름 모를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앞에 모여 ‘여기 묵는 것이 편할 겁니다’라는 문장의 모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열세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온 우리에게는 그것을 따지고 들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름 모를 게스트하우스 @까만


아침, 전날 우리를 게스트하우스로 이끈 캄보디아 남자는 약속시간보다 삼십 분 늦게 나타나 우리에게 어디로 갈지를 묻고 돈을 더 걷었다. 

한국 남자애는 팍세로 가는 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돈뎃으로 목적지를 옮겼고, 나와 패트는 돈뎃으로 가는 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팍세로 가고 싶었으므로 한국 남자애와 표를 한 장 바꿨는데, 캄보디아 남자는 절대 안 된다며 얼굴을 굳혔다. 이름도 없는 표를 왜 바꾸면 안 되냐는 말은 소용이 없었다.

팍세까지 가는 표는 13달러라고 했다. 돈뎃에서 팍세는 무척 가까웠으므로 13달러는 터무니없었다.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타는 버스에서 내리는 곳은 버스정류장이 아니에요. 그래서 거기서 팍세에 가려면 트럭 택시를 잡아야 되는데, 동승객이 없으면 150달러를 내야 해요.”

남자의 말이 전형적인 사기이고 협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13달러를 더 내고 팍세로 가는 표를 얻었다.     


국경 앞에서 비자 신청을 위해 잠시 내렸고, 또 다른 캄보디아 남자가 라오스 비자를 발급신청서를 나눠주며 40달러씩을 내라고 했다. 비자 발급 비용이 30달러라고 들었던 우리는 우리가 직접 발급 신청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손사래를 치면서 버스가 늦게 출발해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다.     


국경에서 우리는 오래 기다렸다.


국경을 넘자 작은 봉고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걸어서 문을 하나 지나왔을 뿐인데 라오스의 공기가, 풍경이 캄보디아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건조했다.     

돈뎃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화이트보드에 우리가 13달러를 주고 산 팍세행 버스가 7달러라고 쓰여 있다. 

우리는 버스기사에게 표를 보여주고 가방을 실었다. 소형버스에는 자리가 없었고, 패트는 다른 버스를 타고 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버스기사는 안 된다고 했다.

“13달러나 주고 표를 샀는데 서서 갈 수는 없잖아요.”

패트는 항의했지만 버스기사는 자기 티켓을 샀으니 자기 버스를 타야 한다고 표정 없이 말했다. 그렇게 우리 가방을 실은 버스에 시동이 걸리고 우리는 서둘러 앞좌석에 올랐다.

열두 시. 패트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덮인 엔진 위에 앉아서 엉덩이가 달아오른다고 불평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라오스 여행을 시작했다.


라오스로 가는 버스 @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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