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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 Feb 10. 2019

메콩강의 속도를 구할 수가 없어

팍세에서 타켁으로

팍세에 도착했다. 

우리는 숙소를 잡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작은 마을에는 선량한 눈을 한 사람들이 북적였다. 분명 머무르기 좋은 마을이었지만 머물 수 없었고, 우리는 다음날 아침 버스에 오르기 위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머물렀다면 참 좋았을, 팍세 @까만

    

다시 버스.

로컬버스 안에 외국인은 우리뿐이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버스 복도에는 포대자루가 잔뜩 쌓여 있어서 우리는 몸을 숙이고 포대 위를 걸어가 빈 의자에 앉아야 했다. 커튼은 모두 뜯겨 있었고, 창이 깨진 곳은 투명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군데군데 의자가 내려앉은 버스에서는 아기의 토사물 냄새가 났다.


버스는 중간중간 섰다. 

마을이 있는 곳에서는 닭꼬치며 과자 같은 것들을 잔뜩 든 상인들이 들어와 큰 소리로 음식을 팔고는 서둘러 내렸다. 

우리는 그때마다 손을 들고 이것저것 사 먹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 많았는데, 먹고 난 후에도 끝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라오스의 로컬버스 @까만


마을이 없는 수풀에서는 모두 내려 화장실에 갔다.

버스에서 내리면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으로 흩어졌다. 

수풀이라고 해 봐야 서로 다 보였다. 

재빠르지 못해서 가장 느리게 자리를 잡은 나는 여자아이가 빨간 치마를 쑥 내리는 것을, 그 아이의 엄마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쭈그리고 앉는 것을, 망사 티셔츠에 핫팬츠를 입은 아가씨가 핫팬츠를 쑥 내리는 것을 본다. 

쑥쑥.

나도 가시에 찔려가며 태국 바지를 쑥 내렸다.     


아침 아홉 시 이십 분에 팍세에서 출발한 버스는 380킬로미터 떨어진 타켁에 저녁 일곱 시 이십 분이 되어서 도착했다.

자그마치 열 시간을 반쯤 꺼진 의자에 앉아 있던 우리는 이미 깜깜해진 타켁에 내린 후에 기지개를 켰다.

버스터미널은 메콩 강변에 있었다. 우리가 뗏목을 만들고, 띄우게 될 곳이었다.

메콩 강 건너편 태국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이미 시간이 늦었으므로 우리는 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들어섰다.

옛날 경찰서를 개조해서 만든 호텔은 외관이 아주 멋졌다. 주인이 우리를 이끈 곳은 본관이 아닌 별채 같은 곳이었고, 1층짜리 방이 길게 이어진 그 건물도 외관이 아주 그럴싸했다. 방은 넓었고, 우리는 동시에 “좋아요!”라고 외쳤다.

패트가 1박을 계산하러 간 사이에 혼자 방에 남은 나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괜히 일어나 모기를 잡기 시작했다. 침대 이곳저곳에 들러붙은 모기 여섯 마리를 잡고 나니 큰 방에 가득 찬 수십 마리의 모기가 보였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니 기분이 더 이상했다.

지저분하고 낡은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모기도, 호텔 방의 서늘한 기운도, 강변의 습한 바람도, 그 어느 것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이상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침대에 누웠는데, 이곳이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샤워를 하며 나는 이곳이 감옥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경찰서 옆에 별채처럼 감옥이 붙어있는 것은 그럴듯한 추측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패트는 “이 방에서 누군가 죽었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내가 뭐라고 하자 “하지만 모든 집에서 사람이 죽었을 거야. 안 그래?”라고 덧붙였다. 역시 그는 많은 면에서 옳았다.     


우리는 열한 시에 일어났다.

사흘간의 버스 여행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악몽도 꾸지 않았고, 모기에 물리지도 않았다. 

창밖 어디선가 쿵짝쿵짝 가라오케가 들려왔다. 첫 음에서 기계보다 반박자 늦는 여자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타켁은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웠다.

반나절 동안 단 한 명의 외국인도 보지 못했고, 관광을 할 만한 것도 전혀 없었다. 우리가 만난 그 누구도 영어를 못했으며 우리는 계속 손짓을 해야 했다.

모기장을 사기 위해서 모기 소리를 내며 손뼉을 짝짝 부딪친 후에 커다란 집 모양을 그렸다. 손톱깎이를 살 때는 탁탁 소리를 내면서 손톱 깎는 흉내를 냈다. 얼마인지를 물어볼 때는 돈을 꺼냈다.

아이들은 “싸 바디”라며 해맑게 웃었고, 어른들은 모두 친절했다.

나는 우리가 올바른 곳에 짐을 풀었다는 것을 알았다.


타켁의 시장 @까만


흙 비탈길을 내려가 강가에 선다.

패트는 나뭇가지를 던지고 “괜찮은데.”라고 말한다.

“속도를 재 보자.”

태국의 사원과 강가의 기둥이 일직선으로 겹치는 곳에 나를 세우고 열 걸음을 크게 걷는다.

“자, 10미터야.”

패트는 나뭇가지를 던지고 초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너무 빠르잖아. 패트가 급하게 초를 센다고 생각한 나는 손목시계를 보고 패트의 시간이 정확하다는 것에 놀란다.

60초.

나뭇가지는 나와 강가의 기둥과 사원의 사이에 도착한다.

60초에 10미터, 시속 600미터였다.

우리가 계산한 시속 3-4킬로미터에 한참 못 미치는 속도였다. 걷는 것보다도 훨씬 느렸다. 이 속도라면 하루에 6킬로미터, 3주를 가도 사바나켓이었다.

“안쪽은 빠를 거야.”

패트는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또다시 원점으로,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막막한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메콩강의 속도를 구할 수가 없어.”

숙소에 돌아와 한참 동안 인터넷에 매달려 있던 패트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타켁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메콩강의 속도를 가르쳐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라오스 어를 할 수 없었고, 그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강의 속도는 입으로 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동작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꼭 이번에 하지 않아도 돼. 나중에 다시 오자.”

패트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그냥. 관광지라면 툭툭 기사에게 물어볼 텐데. 여기서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잖아. 너무 답답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안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선택은 두 가지야. 필요한 정보들을 알아내서 다시 오거나, 무작정 시작하는 거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냥 시작하자.”


이제 우리는 이 메콩강에 뗏목을 띄우게 될 터였다. @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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