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만 Feb 17. 2019

“Now we are floating.”

타켁

뗏목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나무, 타이어, 햇빛을 가려줄 큰 우산이었다. 대충 다녀본 마을에서 그중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것들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는 여행책자를 펼쳐 들었고, 영어가 가능한 매니저가 있는 식당을 찾았다.

매니저 여자는 친절했다. 우산은 시장에 가면 살 수 있겠지만, 타이어와 나무는 모두 비엔티엔에 가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나무와 타이어가 없다면 우산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뗏목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비엔티엔까지 갈 수도 없었다.

패트는 차가 다니는 큰 도시이니 반드시 타이어가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큰 도로변을 걷다가 카센터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들어가서 커다란 타이어를 가리켰다. 이번에도 우리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타이어를 부풀리는 흉내를 냈다. 모든 직원이 일을 멈추고 우리가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양 볼을 부풀려가며 허공의 타이어에 바람을 불어넣는 모양을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는 라오스 어로 한바탕 토론을 벌이더니 우리에게 약도를 그려 주고,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었다.

“내일이면 타이어를 구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희망적이 되어 손을 꼭 잡았다.

계속해서 이곳저곳으로 상점들을 오가다가 나무문을 파는 가게를 찾아냈다.

“그래, 나무문을 사용할 수 있겠어.”

우리는 계단을 밟고 가게로 올라섰고 거기서 격자로 짜인 훌륭한 나무판을 발견했다.

“완벽해! 바로 이거야.”

그런 구조면 로프로 타이어에 쉽게 연결할 수 있었고, 통으로 된 나무판보다 훨씬 가벼울 것이었다. 우린 흥분했고, 돈을 꺼내 보여서 가격을 물었다. 겨우 2만 킵. 3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우리는 내일 오겠다고 손짓으로 말하고 가게를 나섰다.


식당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뗏목을 구상해 보았다.

큰 파라솔 우산은 바람의 영향을 쉽게 받고 무거워 지탱이 힘들 것이다. 우산 대신에 나무막대에 천을 덧대기로 했다.

우리는 어떻게 나무를 고정하고 천을 달지 구상했다.

작은 비스킷이 뗏목, 이쑤시개가 나무막대, 분홍색 티슈가 천이었다.

비스킷에 이쑤시개를 그냥 꽂으면, 그러니까 뗏목에 나무막대를 그냥 꽂으면 흔들릴 수 있으니까 지탱할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나무막대의 한 끝을 뗏목의 중앙에 고정시킨 후에 다른 끝에 로프를 매달아 뗏목의 끝에 단단히 묶기로 했다. 다음은 티슈. 해가 움직이므로 천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천을 한쪽으로 길게 내리고 해가 방향을 바꾸면 천의 위치도 바꾸기로 했다. 그러다 이쑤시개를 여러 개 꽂고 분홍색 티슈를 죽 찢어서 이쑤시개 위에 티슈 반쪽을 고정하고 남은 반쪽은 해의 위치에 따라 위치를 바꾸어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 이제 우리는 머릿속에서 배를 그려볼 수 있었다.

남은 것은 그 배를 실제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했다. 사야 할 것이 많았다.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 5만 킵을 주고 오토바이를 빌렸다. 걸어 다니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타이어 같은 것들을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어제의 카센터를 찾아 거기서부터 길을 찾기로 했다.

카센터 직원이 적어준 No.3 마켓에서 어렵지 않게 타이어 튜브를 찾을 수 있었다. 타이어 안에 들어가는 튜브는 크고 무겁고 튼튼했다. 시험 삼아 바람을 넣어 보니 예상보다 커서 4개를 구입했다. 하나에 14만 킵. 헌 튜브 두 개도 샀다. 하나는 스페어로 쓸 것이고, 하나는 4개 타이어 가운데에 넣을 작은 크기의 튜브였다. 각각 7만 킵과 4만 킵.


친절했던 타이어 상점 @까만


숙소에 들러 튜브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No.1 마켓으로 향한다.

양복점에 들러 천을 산다. 가장 싼 천으로, 해를 충분히 가리는지를 확인하고. 2만 8천 킵, 4미터.

잡화점, 얼굴에 쏟아질 해를 가릴 베트남 모자 5천 킵, 같은 가게에서 뗏목 위에 얹을 대나무 매트 2만 킵.

우산처럼 펼쳐져서 텐트처럼 쓰는 유용한 모기장, 어느 날은 뗏목에서 자야 했으므로.

옷가게, 뗏목 위에서 쌀쌀한 밤바람을 막아 줄 두꺼운 카디건.

철물점, 타이어와 나무판을 단단히 묶어줄 로프 3만 5천 킵.

No.2 마켓, 타이어에 바람을 넣을 펌프 4천 킵.

돌아오는 길에 잡화점에 다시 들른다. 시골에서 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대나무 밥통을 하나 샀다. 만 킵.

모든 것이 순조롭다.


타켁의 시장 @까만


마지막으로 어제 본 격자무늬 나무판을 사러 가구점에 다시 갔는데 그 나무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열심히 손짓으로 그 나무판을 설명하지만 여자는 계속 라오스 어로 뭔가를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우선 가게를 나와 영어를 말할 수 있는 매니저가 있는 식당으로 다시 향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종이와 펜을 빌려서 우리가 어제 본 나무판을 그렸다. 그리고 영어를 할 수 있는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라오스 어로 ‘우리는 이 판을 두 개 사고 싶습니다.’라고 써넣었다.

우린 종이를 들고 다시 돌아갔다.


우리는 이 판을 두 개 사고 싶습니다. @까만


여자주인의 아들이 같이 있었는데, 그들은 같이 그림을 보고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나무가 몇 개인지 세기도 했다. 나무 개수가 문제가 아니었던 패트는 손을 내저으며 어제 여기서 봤다고 말하지만 통할 리 없다. 여자는 라오스 어로 우리는 영어와 손짓으로 설명하지만 결국 여자는 고개를 젓고 패트 역시 고개를 젓는다.

“우리한테 팔 생각이 없는 거야.”

패트는 그냥 나가자고 나를 끌었다.

“아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는 여자가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곤란해하는 것과 동시에 몹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패트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패트는 전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여행할 수 있었고, 단 한 번도 언어로 인해 곤경에 빠진 적이 없는 것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그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언어가 사람을 얼마나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언어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고, 기본 회화책을 뒤져가며 식은땀을 흘리면서 모르는 언어를 더듬거려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여자의 방어적인 감정을 이해했고,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침입자처럼 불쑥 그들의 땅에, 그들의 삶에 들어와 있는 우리가 그들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라오스에서 뗏목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본적인 라오스 어도 배우지 않은 우리의 무례였고, 실수였다.

나는 우리가 가져간 종이의 그림에 대충 침대를 그려 넣었다. 사람도 옆에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림 속 상판 부분을 가리키고 여자 옆에 있던 상판을 가리켰다. 여자가 끄덕였다. 나는 그 상판에 X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던 나무판자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여자는 라오스 어로 무언가를 외치고, 나는 여자의 눈에 깃든 확신을 읽고는 끄덕였다.

여자는 우리를 가게 뒤편 방으로 이끌었고, 그곳에 놓여 있던 침대 나무판을 들어 보였다. 그 아래에 바로 그 격자무늬 나무판이 있었다. 우리가 박수를 치며 “Okay!”라고 소리치자 여자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여자는 만 5천 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나무판을 내주었다. 그리고 두 판을 고정할 나무 막대를 찾는 것도 도와주고, 가게 앞에 버려져 있던 나무막대에 붙어 있던 개똥도 닦아 주었다. 나무막대 값은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우리를 도와주었던 가구점 @까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패트에게 비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이 겪는 영어 공포증에 대해 설명했다. 패트는 끄덕거리면서 자신이 무지했고 무례했다고 했다.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함께 간단한 라오스 어를 익히기로 다짐했다.     


이제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우리는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재료를 강변으로 가지고 내려가야 했는데, 타이어니 나무판이니 크고 무거웠으므로 몇 번에 걸쳐서 양손에 하나씩 들고 날랐다.

패트는 나무판과 나무막대를 로프로 촘촘히 감아 고정했고, 나는 타이어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펌프가 지름 5cm가 안 되는 작은 거여서 트럭 타이어 튜브에 바람을 넣는 게 쉽지 않았지만, 우리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좋았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고 함께 결정했다. 그리고 함께 일해서 뗏목을 만들고 있었다.


마을 아저씨가 다가와 펌프를 내놓으라고 손짓을 하더니 펌프질을 도와줬다. 얼마 안 있어 마을 청년 하나가 와서 패트가 로프를 감을 때 맞은편에서 바짝 잡아서 당겨주었다.

둘은 타이어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 로프를 감고 배를 띄우고 다시 분리하는 것까지 모두 도왔다. 해가 져 깜깜해진 후에는 오토바이를 가져와 전등을 켜 불을 밝혀주고는 우리가 강변 위로 올라가야 할 때는 태워주기도 했다.



다섯 개의 타이어 튜브, 두 개의 나무판, 몇 가닥의 로프로 뗏목이 떴다.

패트가 먼저 올랐고, 얼마나를 버티는지 알기 위해 나도 따라 올랐다. 뗏목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서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앉았고, 눕기도 했다. 나무판 두 개가 서로 고정되지 않고 따로 흔들렸다. 흔들리는 나무판을 고정할 나무막대가 더 필요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우리는 떠 있었다.

“Now we are floating.”

우리는 입을 맞췄다. 그와 나는 이제 메콩강을 따라 흐를 것이다.


메콩강,  뗏목, 그리고 그 @까만


이전 13화 메콩강의 속도를 구할 수가 없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