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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Oct 21. 2023

프롤로그


가족여행 중 아이가 엄마도 같이 카약을 타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엄마는 물에 젖는 거 싫어, 빠질까 봐 무서워- 혼자타~ 다른 아이들도 혼자 잘 타네' 하면서 아이 손을 놓고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경험보다 아이의 경험을 중요시하고 나는 안 해도 되고, 나는 나중에 해도 되고, 내 취향과 우선순위가 아이에게 밀리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어딜가도 아이 위주로 다니고 자연스레 뭘 해도 그냥 아이가하는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나는 사실 물이 옷이 젖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도 한때는 일단 해보는걸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성격이었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왜 이렇게 귀찮고 두려운 게 많아진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되고부터 나의 존재보단 엄마라는 존재와 형식에 얽매여 삼시세끼 밥 끼니만 걱정하고 마트 장보기 앱만끌어안고 있었다. 생필품 세일 소식에 반응하며 나의 모든 정신이 가족의 안위와 먹는 데에만 정신이 쏠려있었다. 아이와 책을 보다가 패러글라이딩? ‘엄마도 해봤어~’ 하면서 마드리드? 이스탄불? ‘엄마도 거기 다 가봤지~’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어느새 과거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회사에서도 오래 있다 보니 어느새 라떼만 얘기하는 나를 보고 놀라곤 했는데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엄마라는 존재보단 예전의 생기 있고 꿈이 있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도 많이 읽고, 그림도 그리고, 인문학과 글쓰기도 배우고 있다. 


작년 여름부터 '동양의 인문학'이라는 문구에 꽂혀 명리학도 배우게 되었다. 사주에서 나는 작은 땅의 토를 상징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큰 산의 넓은 땅도 아닌 작은 땅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생각을 바꾸고 작은 땅이라도 잘 키워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땅을 잘 일궈 꽃도 심고 나무도 심으며 향기 나는 정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땅이라 오히려 더 가꾸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채운 나만의 작은 정원을 살뜰히 가꾸다 보면 어느새 멋진 정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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