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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Oct 21. 2023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20대 때 윤도현의 `나는 나비`라는 노래를 들으며 미래에 펼쳐질 나의 삶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나를 나비에 대입하여 언젠가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기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미대로 내세울 만한 학교도 아니고 성적이 좋지도 않고 학비를 버느라 바빴던, 튀지 않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애벌레가 힘든 시간을 견디고 화려한 나비가 되는 모습이 멋지게만 느껴져 나이가 들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나도 어디 내세울 것 없는 존재였지만, 30대가 되면 번듯한 직장의 디자이너가 되어 있거나 전시도 하고 상품도 판매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성체가 된 나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짝짓기와 번식이다.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로 인고의 시간을 거쳐 겨우날개를 펴고 나왔는데 짝짓기 후 얼마 살지도 않고 죽는다니 나의 환상이 무너졌다. 나비를 상상하면 몇 번의 변태끝에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라 자유롭게 살아갈것 같았는데 그 모든 과정이 번식을 위한 과정이었다니 이상과 현실이 깨지는 순간이다. 현실의 나 또한 나비와 다르지 않았다. 20대를 지나 직장에 취업하고 나니 결혼, 임신, 출산의 기간을 과정을 지나야 했다. 이 세 가지를 겪고 나니 ‘나’라는 존재는 없고 엄마라는 존재만 남아있었다.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번데기로만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날개는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


나비는 번식이 끝나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번식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나의 존재 이유

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20대에는 현실을 부정하며 이상만 찾았고 30대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이상과 현실에서 부딪히며 살아왔다. 40대가 된 나는 아이가 조금 커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0대가 되어서야 무모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이상을 좇아 고민하고 탐구하고 있다.


1~20대에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그토록 갈망하고 꿈꿨을까. 나비가 번식하고 한살이 과정을 하는 것처럼 나도 애벌레가 되어 나의 삶의 한살이를 다시 시작한다. 애벌레가 먹는 나뭇잎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많이 먹어 빨리 자라는 것이 애벌레의 임무이기에 다시 애벌레가 되길 자처한 나는 많은 양의 지식을 흡수하려고 책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나를 살찌우고 있다. 나비는 한두 달 만에 알에서 나비가 되지만 어떤 나비는 몇 년에 걸쳐 나비가 되기도 한다. 애벌레와 번데기의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괴로워하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날개를 활짝 펴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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