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향기 나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시절 머리 감을때 샴푸를 대충 헹궜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향이 오래 남을 거라 착각했다. 그리고 젖은 머리의 여자가 청순해 보인다고 생각해 드라이도 안 하고 머리도 안 말리고 수건으로만 살짝 털고 다녔다. 어깨에 머리에서 내려온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때는 그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젖은 머리로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수면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시간이 없었나? 왜 머리도 안 말리고 물에 빠진 생쥐꼴로 돌아다니지? 하는 느낌말이다.
#2
대학교 때 향수가 유행이었다. 유명한 향수 이름은 꿰고 있어야 유행을 좀 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유명했던 향수를 기억해 보면 아기 분냄새가 나는 '쁘띠마망', 달달한 향의 여성적인 '안나수이', 시원한 꽃향기의 '플라워바이 겐조', 남자친구 향수의 대명사 '불가리 블루' 등이 생각난다. 나는 여성적이지도 남성적이지도 않은 중성적인 느낌의 향수를 찾았는데, 푸른빛의 패키지에 시원해 보이는 랄프로렌 향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랄프로렌 향수냄새를 맡았는데 대학교 때 강남역 어딘가를 돌아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핑클의 '약속해 줘~'노래가 흘러나왔고, 노티카 잠바를 입고 강남역 타워레코드 앞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기억이다. 타워레코드는 그 다음 해에 없어지고 그 건물은 지오다노매장으로 바뀌었다. 시대는 변했는데 향기는 여전했다.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향을 맡고 지금은 없어진 20여 년 전 공간을 추억한
다. 잠깐 몇 초 스친 향인데 그때의 공기와 기분을 떠올릴수 있는 게 향기가 가진 힘이다.
#3
지금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인위적인 향을 싫어하기도 하고 향수의 향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벤조페논, 유화제등의 화학물질이 들어있어 우리 몸에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보고부터는 천연재료로 만든 향이 아니면 꺼려져 피하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후로는 화장품도, 샴푸도, 바디샤워도 친환경으로 쓰려고 하고 바디로션은 향이 없는 걸 쓴다. 때때로 선물 받는 핸드크림으로 나의 냄새를 채운다.
#4
어느 날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아이가 오더니, 엄마에게서 나는 꽃향기를 맡고 엄마를 찾았다고 했다. 평소에는 섬유유연제 대신 식초를 쓰는데 여름이라 꿉꿉해서 향이 있는 섬유유연제를 넣었었다. 아이가 세제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온 것 같았지만 엄마에게서 나는 향이라고 생각한게 귀여웠다. 향기나는 여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아이에게만은 향기로운 엄마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