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4년 6월 5일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너무나 막연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빠와 살면서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는데 나에게 엄마라는 낯선 이름이 생긴 것이다. 아이 낳고 몇 년간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세뇌시키듯이 엄마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아팠는지 아이 생일마다 이야기하곤 했다. 왜냐하면 진통을 하는 몇 시간 동안 고문받는 게 이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아팠기 때문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나의 일부분이 떼어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아이에게 네가 태어난 행복한 날이지만, 너를 낳기위해 애썼던 엄마도 잊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도 그 고통의 기억이 서서히 잊혀버렸다. 그래서 인지 이제는 온전히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게 되었다.
#2
얼마 전 아이의 10살 생일을 기념하여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어느새 가족 기념일 중 아이 생일이 제일 큰 기념일이 되었다. 신혼 초엔 결혼기념일이 일 년 중 제일 의미 있는 기념일이라 호텔을 가거나 좋은 곳에 갔는데 지금은 결혼기념일엔 치킨배달 정도로 의미를 찾는 작은 기념일이 되어버렸다. 대신 아이 생일 다음날이 공휴일이기도 해서 매년 아이 생일에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한 명밖에 없는 아이라 더 고이고이 키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특별한 날, 파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생일 맞은 여행지에서 다이소를 들렀다. 깜짝 파티를 위해 남편과 아이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급하게 용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풍선과 가렌더, 고깔모자를 몰래 샀다. 생일 한두달 전부터 날짜를 세는 아이를 위해, 디데이를 멋지게 보낼수 있도록 내 마음도 같이 아이 마음에 맞춰 보았다. 아이가 씻을 때 한쪽 벽에 몰래 사온 파티용품으로 꾸며줬더니 "엄마가 다이소 들어갈 때 혹시~ 했는데 진짜였네~'라면서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에 만족감을 드러내는 아이를 보며 나도 만족감이 들었다.
#4
결혼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지지 못했는데 아이 낳고 사람들이 '애기엄마~', '새댁~'이라고 부르며 나의 정체성이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나에게 '어머니~'라고 부른다. 아이로 인해 여자의 정체성이 아이에게는 엄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누구) 어머니가 된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엄마라는 존재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나의 정체성도 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퇴직 후 아이와 제일 오래 시간을 보내는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불리는 이름이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