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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Nov 25. 2023

브론테, 브론테, 브론테

이름을 찾아서, 문학편 #9  Brontë X Turner

Edward, awake, awake—

The golden evening gleams

Warm and bright on Arden's lake—

Arouse thee from thy dreams     


에드워드, 깨어나, 깨어나-

황금빛 저녁

따듯하고 밝게 아덴의 호수 위를 비출 때

네 꿈으로부터 너를 일으켜


- 시「A Death-Scene」(1844) 발췌, 에밀리 제인 브론테(번역 워커)

 

  에드워드의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한숨과 죽음을 그린 에밀리 브론테의 시. 브론테가 사람들의 시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긴 호흡의 서사를 드러낸다. 숨죽여 이어가는 긴 호흡의 시. 그들 자신의 삶처럼, 황야를 스치는 바람의 예측하기 어려운 에너지와 바람을 이기며 걷고 헤매는 깊은 노고가 새겨진 시. 브론테들의 삶과 작품을 말하기 위해 그들의 시는 가장 적절한 시작일 것이다.


Gledhow Hall, Yorkshire, Turner


  브론테 가문에는 샬럿과 에밀리, 앤 이외에도 형제자매가 있었다. 샬럿보다 먼저 태어난 두 언니, 마리아와 엘리자벳은 열 살을 갓 넘기고 폐결핵으로 죽었다. 19세기초, 춥고, 외지고, 황량한 둔덕들 사이의 요크셔 하워드(Haworth)에서 가난한 성공회 목사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이들을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체벌과 엄격한 훈육이 당연시되던 시절, 청교도적인 검소함을 추구하는 기숙사 학교의 위생과 영양 수준은 그런 것이었다.


  살아남은 샬롯과 에밀리, 앤, 그리고 유일한 남자 형제 브란웰은 모두 살아 있는 동안 신체적으로는 병약한 창조자들이었다. 형제자매 중 넷째였던 브란웰이 31세의 나이에 역시 폐결핵으로 죽었다. 브란웰이 세상을 떠난 그해에 에밀리 또한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이듬해 앤도 세상을 떠났다. 29세의 젊은 나이다. 샬롯은 더 오래 살았지만 결혼 후 임신과 관련된 질환으로 숨졌다. 하워드의 스산한 바람과 황야는 그들을 몽상의 세계로 이끌었으나, 그들의 몸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남겼던가 보다.


  성공회와 청교도, 하워드의 황무지, 바람, 끝없는 걷기, 기숙사 학교, 몽상과 죽음을 떠나 브론테 가문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샬럿과 에밀리, 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 척박하고 외딴곳에서, 기적처럼 세상 밖으로 나와 고전이 된 작품을 남겼다. 브란웰 역시 자연스럽게 문필가로 성장해 세상에 작품을 남기고자 했지만 술과 마약, 도박의 강박과 고통이 먼저 그를 데려갔다.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Sunset Over Water, Turner


  그들 모두는 살아가는 방편으로 교사가 되기를 원했다. 작품을 써서 출간하는 것이 본연의 일이라면 교사가 되는 것은 세상 속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해 괜찮아 보이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였다. 샬럿은 짧게나마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 학교와 교사, 가정교사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품 속에 많이 남겼다. 극히 내향적인 자유에 천착한 에밀리와 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 듯싶다. 브란웰마저도 좌절을 겪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앤 브론테는 함께 시집과 책을 출간한다. 관행을 따라 남성형 이름을 사용해 여성 작가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필명으로 사용한 ‘Bell’이라는 성은 샬럿의 남편이 된 아서 벨 니콜스의 중간 이름을 사용한 것이라는 학설이 맞을 것이다. 샬럿에게 아서 벨은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와의 결혼은 샬럿의 삶을 외피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충족시켜 주었음을 여러 문헌이 증명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샬럿의 지향이 결국 에밀리와 앤의 삶과 창작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이기도 하다. 영문학의 역사에 빛나는 작품들이 한 가족의 손에서 창조된 것은, 고립된 골짜기에서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놀라운 재능을 자연스레 받쳐주고 융합하며 응집한 결과이기도 하겠으나, 사실상 맏이였던 샬럿의 영향력은 에밀리와 앤, 브란웰에게 어쩌면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을지 모른다.


  샬럿은 동생들이 죽은 뒤 남긴 서신들 상당수를 폐기했, 작품들 역시 폐기하거나 편집했다. 원전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 함께 자라며 나눈 인문학에 대한 지향과 수련이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한다면, 완벽하게 다른 개성의 소유자였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작품을 샬럿의 눈과 잣대로 마주해야 하는 것은 아쉽다. 죽기 전에 출간된 「폭풍의 언덕」과 「아그네스 그레이」의 존재가 위안을 준다.     


A Great Tree (ca. 1796), Turner


커러 벨/샬럿 브론테


  샬럿 브론테는 살아서 작가로서의 명예와 영광을 누렸다. 여전히 여성의 이름으로는 책을 출간하기 어려웠던 시절, 남성형 필명으로 책을 냈지만, 동생들의 죽음 후 과감히 자신을 드러내고 샬럿 브론테로서 세상의 찬사를 받았다. 당대로서는 보기 드문 성공이었다.


  그에게 대성공을 가져다준 「제인 에어」는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교사나 가정교사로서의 경험이 녹아들어 가 있고, 어린 시절 환경이 가져다준 고난 속에서도 공부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제인 에어의 성장스토리 역시 작가 자신의 삶을 연상하게 한다.


  고난 속에서도 성장하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는 이야기의 틀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아동에 대한 포악한 학대, 그로 인한 친구의 죽음, 온갖 역경도 자신의 원하는 바를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강인함, 귀족의 자녀를 돌보는 가정교사로서의 삶, 이교도적인 느낌마저 드는 광증을 앓는 부인과 음산한 택, 친척의 유산으로 인한 새로운 삶 같은 이야기 요소들은 폭넓은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신데렐라 스토리의 성장형 변주곡 같아 보일 수 있는 「제인 에어」의 이런 요소들을 가장 민감하게 고민한 사람은 샬럿 브론테 자신이었을 것이다. 제인이 로체스터가 이미 결혼한 인물임을 알고 손필드를 떠난 뒤, 무일푼으로 황야를 떠돌다 목사 세인트존의 가족을 만나 새로운 삶을 경험하며 정신적으로 치유받고 성장해 나가는 소설의 뒷부분은 종교적인 대화로 채워진다.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제인이 친척의 유산을 받아 자신의 삶을 경영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인 자유를 얻고 사촌들을 확인하게 되게 되는 과정도 작가의 중요한 장치들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있던 독자로서는 다소 의아해지는 전개가 아닐 수 없지만 제인의 삶과 사랑에 대한 주체적인 각성과 선택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목구비가 조화롭지 못한 제인, 예쁘지 않지만, 의지와 지각을 가진 표정의 제인’ 같은 인물 서술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을 보면, 시대를 넘어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작가의 역량을 느끼게 된다. 작가 자신이 평소 외모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흔적을 생각할 때, 이 역시 작가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제인 에어」가 19세기 영국 여성의 삶에 있어 중요한 정치적인 변화의 조짐들을 드러내고, 새로운 각성을 촉구한 작품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 사랑이라는 당의정을 본질로 볼 것인가, 도구로 볼 것인가의 판단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The Mewstone, Devon, Turner


엘리스 벨/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1847년 스스로를 엘리스 벨이라 밝힌 작가의 작품이다. 엘리스 벨은, 그를 가르치던 교수로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철 같은 사고력과 논리력의 소유자라 평가받은 에밀리 브론테의 필명이다. 당대의 개념으로는 차라리 가명에 가까운 것이지만, 엘리스 벨로서 폭풍의 언덕을 펴냈다. 소설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야성적이고 거침없는 문체와 구성 덕분레, 당대에도 작가가 남성임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던 모양이다.


  작품 속 「워더링 하이츠」의 스산하고 차갑게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구성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고 분위기는 차라리 이국적이다. 펄떡이며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새로움은 수 세기를 앞선다. 더구나 그 새로움은 인위적인 구석이 조금도 없다. 우리들 자신의 이상스러움과 괴벽스러움, 위선과 거짓, 열정과 배신을 거울상처럼 드러낼 뿐이다. 종교적 윤리를 넘어선 인간의 새로운 국면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하워드의 침울한 황야를 밤낮으로 거닐었던 작가 자신의 리듬이 꿈틀거리는 문체 속에 살아 숨 쉰다. 고딕 괴기물 같은 음산한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채운다. 이런 작품이 결국 고전이 된다.


  에밀리는 소설을 남기고 일 년 뒤 엘리스 벨로서 죽었다. 살아서 작가로서의 영광을 구가하지 못했다. 애초 「폭풍의 언덕」이 영미 문학권에서 그 작품성을 높이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들어서다. 당대에 외로운 천재의 길이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샬럿이 남긴 에밀리에 대한 인상은 오로지 자유로움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 존재, 지극히 내면 안으로 침잠하던 자폐적 존재지만, 강인하게 논리적으로 파고들며 논쟁을 피하지 않는 에밀리를 증언하는 자료들도 많다. 작가로서의 강력한 개성과 에너지가 없었다면 「폭풍의 언덕」과 같은 시대를 뛰어넘은 괴작이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에밀리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가난한 채로 외롭게 죽었지만, 그가 남긴 유일한 작품 「폭풍의 언덕」은 세계 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 비극들의 경지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예술의 아이러니다.     


View of Farnley Hall in Yorkshire (1808 - 1825), Turner


액턴 벨/앤 브론테


  스스로 존재감을 고민하다 세상을 떠난 브란웰만큼이나 앤 브론테 역시 아쉬움을 주는 존재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살아남았지만, 아직은 하나의 과정에 서 있던 작품이다. 만약 앤이 몇 년이라도 더 생존했다면 「폭풍의 언덕」 정도의 작품을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브론테 가족의 아버지 패트릭은 자녀들의 공부를 최대한 지원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패트릭 자신이 고전을 탐독하여 상당한 책을 소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호머, 베르길리우스,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과 스콧을 읽으며 성장했다. 역사와 지리, 생물학 책들과 당대의 중요한 잡지를 집에서 접할 수 있었다.


  앤은 특히, 에밀리와는 쌍둥이처럼 닮은 정신의 소유자로 함께 성장한 작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에밀리와 함께 앉아 ‘Gondal’이라는 공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환상의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브론테 가족이 공유한 이런 배경들이야말로 창조의 충실한 자양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앤 역시 액턴 벨이라는 필명으로 시집과 소설을 펴냈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두 자매를 가르치는 가정교사 아그네스의 이야기다. 신앙심 가득하고 선한 인물 아그네스가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블룸필드 가문과 머레이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허영과 교만, 사악함, 세속적인 욕망을 그렸다. 그들은 아그네스를 그저 조금 배웠을 뿐인 하인으로 대한다. 목사 보조와의 사랑이 등장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이야기다. 브론테 자매들이 경험한 환경의 제한 때문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자신감 넘치는 문장과 풍부한 어휘, 상상력은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듦에 부족하지 않다. 액턴 벨의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1848년에 나왔지만, 에밀리와 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샬럿의 결정으로 재판되지 못했다. 샬럿은 이 작품이 남겨도 좋은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구시대적인 ‘사회와 법체계’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그린다. 작가로서 앤의 참모습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지점에 서 있던 작품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밀리가 남긴 작품도 그가 죽은 뒤 샬럿의 결정으로 출간되지 못한 것을 돌이켜 보면, 다시 한번 큰 아쉬움을 갖게 된다. 그러나 샬럿 브론테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Sick of mankind and their disgusting ways, "

  인류와 그들의 구역질 나는 삶의 방식에 질렸다는 앤의 낙서가 그의 기도문 한구석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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