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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Nov 18. 2023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름을 찾아서, 문학편 #7 Wollstonecraft X Blake

  「여성이 단순히 남성을 기쁘게 하고 남성에게 복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결론은 오로지, 그녀가 자신을 남성에게 적합하게 만들고자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기 보존의 동물적 욕망을 그녀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원천이 되게 하라. 그 동물적 욕망이, 여성들이 가지는 모든 도덕적 · 육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특성을 억지로 부풀리거나 혹은 축소해서라도 거기에 끼워 맞추어야만 하는 운명의 철침대라면 말이다.... 」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의 권리 옹호' 중에서, 1792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초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이 한마디를 오늘의 시선으로 읽는다면 한없이 제한적인 언설로 보인다. 당대의 시각으로서도 편협하기 짝이 없는 루소의 여성에 대한 언설을 설파하기 위한 냉소주의 전략으로 보이기는 한다. 적어도 오늘의 시민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우리는, 단지 부정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여성이 단순히 남성을 기쁘게 하고 남성에게 복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전제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브 신화의 구도. 기독교의 오랜 인식 프레임은 18세기 유럽인들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언설이다. 설사 그것이 최초의 여성주의 철학서라 불리는 「여성의 권리옹호」 속, 작가 울스턴크래프트 자신의 언설이라 하더라도. 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특히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운명의 철침대’까지를 연상하게 만든 인물은 장 자크 루소인 만큼 비난은 오로지 그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성차별에 대한 문제 인식 역시 시대를 앞선 것임에 자명하다. 그러나 해법은 더욱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이미 어려서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학교를 직접 설립한 교육학자답게 「국민교육」을 통해 성별에 무관하게 동일한 교육 커리큘럼의 적용을 통해, 차별의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회 문제로 인식했다는 사실은 전향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18세기의 편중된 분위기 속에서도 중요한 사회적 목소리로서 부각될 수 있었던 역량과 성과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울스턴크래프트가 교육에 뜻을 두고 학교를 설립할 무렵, 당시의 경험이 녹아든 책들이 바로 「딸들의 교육에 대한 성찰(Thoughts on the Education of Daughters, 1787)」, 장편소설 「메리, 한 편의 소설(Mary: a Fiction, 1788)」, 동화 「실생활 속의 새로운 이야기들(Original Stories from Real Life, 1788)」이다.


  루소의 교육론, 그 결정판인 「에밀(Emile, 1762)」이 유럽을 사로잡고 있을 무렵, 울스턴크래프트의 교육에 대한 성찰은 후에 「인간의 권리옹호(Vindication of the Rights of Men, 1791)」, 「여성의 권리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2)」로 이어지며 권리의 올바른 행사를 위한 법론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실생황 속의 새로운 이야기들 내지 삽화,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


운명의 철침대 너머를 비행하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여기 제한된 면에 다루는 것은 충분히 가소로운 일이다. 수백 년에 걸쳐 그의 삶을 다루려는 사람들은 많았다. 특히 가장 처참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그 삶에 대한 회고록은 마지막 남편이자 실은 유일한 남편 윌리엄 고드윈이 쓴 「여성의 권리옹호 저자에 대한 회고록(Momoires of the author of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8)」일 것이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열렬히 사랑했던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사생활을 숨김없이 저술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의 명예마저 죽인 회고록으로 비판받았다.


  윌리엄 고드윈의 ‘솔직함’이라는 망령은 오랫동안 울스턴크래프트의 시대를 넘은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어렵게 만들었다. 고드윈의 기억들과 기억에 대한 언급이 옳든 그르든, 어떤 의도로 쓰였든, 울스턴크래프트가 남긴 저술에 대한 평가 이전에 그의 삶에 대한 끝없는 논란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어간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브의 유혹과 추락, 윌리엄 블레이크, 1808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평평하게 만들어 몇 마디 말로 서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불행한 삶의 표상이 거기 있다. 어려서는 몰락하는 집안,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로부터 지키고 싶었던 가족들이 그에게 중요한 키워드였다. 현실의 비극을 감당하며 살아간 어머니와 동생들이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싸워 지키고자 한 존재였다.


  불과 38년의 짧은 생을 산욕열로 마감하기까지 그는 철학자, 교육학자, 사회학자이자, 프랑스혁명을 옹호하고 한편으로 이를 비관한 명민한 문필가로 살았다. 이상적인 세계관을 공유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퓨질리, 임레이, 고드윈과 질풍노도와도 같은 사랑에 기꺼이 빠진 결과, 당대에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못한 출산과 여러 번의 자살 시도 같은 고난들을 겪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인생의 온갖 불행 속에서도 번뜩이는 지성과 삶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는 지지 않고 살아남아 그의 인생 전체를 지탱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막 시작된 낭만주의의 흐름은 그 삶의 중요한 환경이었고, 사랑과 열정은 삶을 관통한 언어였다. 우울과 몽상은 섬세한 정신의 부가적인 산출물이었을 것이다. 그 자신, 극도의 우울과 몽상을 오가는 사이에서도 지치지 않는 지성의 산물들이 세상에 나와 알려진 것이 그나마 작지 않은 위안일 뿐이다.    


순수의 노래 표지, 윌리언 블래이크, 1789


혁명의 배신     


  평생에 걸쳐 사회의 혁신을 바라고 실천하던 그는 살아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을 마주하고 혁명의 일부이자 관찰자가 되었다. 프랑스혁명은 울스턴크래프트에게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현장의 혁명이었다.


  그는 루이 16세가 국민의회로 끌려가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다. 온갖 생존을 위협하는 어려움에도 혁명기 파리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그의 사회학자로서의 관점은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도덕적 관점(An Historical and Moral View of the French Revolution, 1794)」에 담겼다.


  인류 역사의 방향을 틀어 새로운 세계를 열 것으로 기대한 프랑스혁명은, 그럼에도, 그의 이상과는 정확히 반대의 길을 걸었다. 소위 혁명의 과격파 자코뱅은 인간의 권리를 부르짖으면서도 여성의 권리만은 철저히 외면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에밀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소피,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자코뱅이 마리 앙트와네트를 변태적인 성욕을 지닌 어머니로 기소했을 때, 울스턴크래프트가 느꼈을 충격을 짐작해 본다. 평소 앙트와네트를 구체제의 혐오스러운 부산물로 여겼던 울스턴크래프트였지만, 여성혐오에 가까운 자코뱅의 작태는 이중 삼중으로 그를 괴롭혔다. 혁명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암흑으로 세상을 뒤덮고, 동지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동지들이 죽어가는 혁명기의 파리에서 그는 홀로 딸을 낳았다.


  자코뱅이 실각하고 프랑스혁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프랑스혁명의 성패와 무관하게, 이상적 국가, 이상적 세계에 대한 울스턴크래프트 자신의 꿈이 꺾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몽상가는 오늘의 실패가 영원의 실패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아직 길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모든 가치를 무참히 파괴하는 것은 애초 그의 혁명이 아니었음을 읽을 수 있는 서신 일부를 여기 담는다.     


  I cannot yet give up the hope, that a fairer day is dawning on Europe, though I must hesitatingly observe, that little is to be expected from the narrow principle of commerce, which seems everywhere to be shoving aside the point of honour of the noblesse [nobility].      


  나는 유럽에 더 공정한 날이 밝아오고 있다는 희망을 아직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저하며 관찰해야 하겠지만, 모든 국면에서 귀족, 고귀함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좁은 교환의 원칙으로는 기대할 것이 거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서신 중에서                


               

기묘한 가계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울스턴크래프트가 길버트 임레이와의 파괴적인 관계에서 길을 잃고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문명을 뒤흔든 걸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레이와의 사이에 낳은 풍운의 아이 페니 임레이는 안타깝게 2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나, 고드윈과의 사이에서 1797년 태어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는 살아남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역작을 남겼다.


  유럽 문명의 질풍노도기에 세상을 살다 간 한 천재 가족의 가계도를 나는 무심히 바라본다. 메리 셸리는 그의 삶이나 작품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 어머니의 불행한 삶에서 그가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18세기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어머니의 삶이, 그 고통이 어린 메리 셸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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