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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Nov 15. 2023

마담 드 라파예트, 마리 마들렌

이름을 찾아서, 문학 편 #6

  마리 마들렌은 겉보기에 무난한 삶을 살았다. 그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루이 14세가 즉위한다. 그의 성장기는 태양왕의 시대였다. 절대 왕정에 대한 반감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얀센주의자들과 친밀하게 교류했고, 얀센파 그룹의 중추였던 라로슈푸코와는 특별히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그가 남긴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속 클레브 공작부인과 느무르 공의 관계가 그들의 것과 같았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당대에도, 지금까지도 추측일 뿐이다. 이 문학과 철학의 즐거움을 나눈 친구이자 동지에 관해 마리 마들렌은 이렇게 말했다. “라로슈푸코는 나에게 정신을 주었고, 나는 그의 심장을 만져주었다.” 1660년 즈음에 빚어낸 명문(名文)이다.



  얀센주의자들은 대체로 절대 왕정 시대의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신의 섭리, 그 엄격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름내 날 정도로 썩어빠진 당대의 현실 종교라는 늪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여겼을 것이다. 창세기를 하나의 역사책으로 받아들인, 얀센주의자 파스칼(우리가 아는 그 파스칼이 맞다.)은 구원자에 대한 전적인 복종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믿었다. 신에 대한 철저한 귀의, 자유의지에 대한 회의는 역설적으로 얀센주의자들을 냉담한 무신론자들처럼 보이게도 한다. 이런 그들에게 절대 왕정은 폭력적인 어릿광대 놀음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마리 마들렌, 마담 드 라파예트


  비록 대단한 귀족 가문은 아니었지만, 마리 마들렌은 어린 시절부터 학식 넘치는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성을 건축하는 공병 장교였던 아버지와 공작부인의 시녀였던 어머니 주변에는 학자들, 특히 수학자들과 법률가들이 모여들었다.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는 그가 파리 사교계를 놀라게 할 만큼 지적인 작가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1650년에는 안 도트리슈 왕비의 시녀가 되어 스승인 질 메나주를 만난다. 질 메나주는 그에게 라틴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165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파리의 유명한 살롱 느베르 저택을 오갔는데, 얀센파와의 교류도 여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당시 느베르 저택은 얀센파들이 모이는 집결지였다. 파리의 사교계는 그를 냉철하고 속을 알 수 없는 관찰자로 여겼다. 작가로서, 응집된 에너지는 그런 품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마리 마들렌을 마담 드 라파예트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가 1655년에 자신보다 열여덟 살이나 더 많은 프랑수와 드 라파예트 백작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1658년에 장남이 태어났지만, 이 결혼은 대체로 건조하고, 서로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되 정중함 만은 남겨두었던 관계처럼 보인다. 1661년에는 별거 가족이 된다. 사랑을 사랑하되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그의 사랑론은 결혼에서마저 관철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마리 마들렌은 마담 드 라파예트가 되었다. 문학사에서 마리 마들렌 피오슈 드 라 베르뉴라는 이름은 지워졌다. 마담 드 라파예트라니, 이미 당대에 널리 읽히고 이제는 클래식이 된 작품을 남긴 위대한 작가의 이름으로는 석연치 않다. 마담 드 라파예트는 이름이 아니다. 지위를 일컫는 말이다. 마담 드 라파예트라는 지칭은 그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호칭 안에서 그는 시선의 사각(死角)에 서있는 미묘한 그림자로 다가올 뿐이다. 애초 그의 저작물은 가명으로 출간되었다. 당대에 여성으로서 작가임을 내걸고 그 작품을 존중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의 그늘은 우리가 그의 이름을 영원히 부르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 했다. 아쉬운 일이다.



(그따위) 쓸데없는 소설이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그따위) 쓸데없는 클레브 공작부인 같은 소설이 있다.”라는 말을 남겨 프랑스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은 프랑스의 23대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였다. ‘그따위’는 환청처럼 내 귀에 도달한 비난의 어투를 강조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삽입해 보았다. 말의 맛이 살아난다.


  신자유주의자 사르코지는 5년 동안 대통령을 하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소 체감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되기 전 나름 신자유주의적 실용주의 방향성의 한 사례로서 언급한 한마디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엘리제궁으로「클레브 공작부인」책을 사서 보내고, ‘나는「클레브 공작부인」을 읽는다’라는 캠페인을 프랑스 전역에서 벌이는 것을 바라보며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체감했을 것이다.



  표피적으로 읽는다면, 소설이란 대체로 그런 것인지 모른다. 그따위 것. 쓸모없는 것. ‘실용성’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다. 반어적인 냉소로 가득 찬 소설을 읽은 후라면 이런 류의 가당치 않은 후려치기를 더더욱 자제해야 한다. 문해력을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정도의 냉기 어린 지성이 ‘스타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평가하고, 앙드레 지드가 ‘완벽한 예술의 극치’라 부른 문학사적인 소설이 사르코지에게는 한가한 궁정 연애담, 그것도 사랑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아리송한 모호함으로 가득한 궁정 치정극으로 보였을 뿐이다.


  21세기 프랑스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마주하며, 화염병 대신 「클레브 공작부인」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그것대로 전투적이다.


하나의 장르, 하나의 세계를 열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언뜻 열정적인 연애 소설처럼 보이지만, 역사적 사실(史實)들과 그 배후,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략, 전술, 특히 심리전을 생생하게 그린다. 대담하게도 실존 인물들, 나라를 움직인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를 극사실적으로 심리까지 엮어 풀어냈다. 궁정 안에서 권력 투쟁과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는 사랑의 미궁들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거대한 에픽을 사랑 이야기의 당의정으로 감싸 전달하는 요즘의 이야기 틀은 결국 클레브 공작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과연 17세기의 소설이 맞을까. 특히, 역사적인 사실을 그릴 때, 간혹 로망이라고 불린 당대의 영웅 소설이나 영웅 서사시가 그리는 관용적인 패턴들이 보이지만 ‘누벨’의 장르에 역사를 담아내기 위한 조금은 과도기적인 전략일 뿐이다. 형식과는 무관하게 그 내용물은 오히려 반영웅적이기까지 하다. 끝없는 반어와 냉소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현대 소설의 정신을 발견한다.



  마리 마들렌의 세계관에서는 희대의 제왕도 사랑과 야망의 정념에 휩싸인 광대다. 주인공 클레브 공작부인은 본질적으로 이 모든 광대짓의 거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소설 속에서 그가 사랑한 느무르 공마저 실존 인물인데, 클레브 공작부인만은 작가가 구상한 가공의 인물이다. 그는 관능적이기까지 한 사랑에 지독하게 빠져있는 듯 보이지만, 그러하기에 오히려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고 오히려 멀어진다. 이런 이율배반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 얀센주의 작가의 신념을 담고 있다. 그에게 사랑은 불편한 것이다.      


  당신은 자유롭고 저 역시 자유로우니 우리가 함께해도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남자들이 영원한 약속 안에서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요? 그런 기적이 제게 일어날까요? 제 모든 행복이 될 그 열정이 결국에는 사그라지는 걸 분명 지켜봐야 할 거예요. 아마 클레브 공작만이 결혼해도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거예요. 제 운명은 얄궂게도 제게 그런 행복을 주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그의 열정이 지속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제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그가 알아서였을 거예요.

 「클레브 공작부인」 중 발췌, 류재화 역(譯)     


  간명한 이야기 틀 안에 담은 그만의 독창적인 서술, 말맛의 향연은 더욱 놀랍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그들을 움직이는 동인에 대한 창의적인 서술들은 문장의 효율과 전달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심상으로 이끄는 지름길 같은 서술들이 이어진다. 이토록 쉽게 읽히는 17세기에 쓰인 소설이라니 대체 몇 세기를 앞서간 것일까. 역사적인 인물들의 전경과 후경을 들여다보는 스토리텔링의 재미는 말할 것도 없다. 


  쾌락을 바라보지만, 쾌락의 한가운데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쾌락의 조짐을 음미할 뿐인 클레브 공작부인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마도 영원히, 널리 수용되는 장르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무언가의 최초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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