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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agirl Jan 12. 2019

하루키가 골프를 친다면

하루키가 골프를 친다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2년 가을부터 시작해 꾸준히 달리고 있는 소설가 겸 러너입니다. 자신의 묘비명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적히기를 소망하는 작가. 거의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적어도 매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장단거리 레이스에도 참가한다고 하네요. 그는 하프 마라톤, 마라톤, 철인 삼종 경기를 구실로 아테네를, 도쿄를, 하와이를, 보스턴을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래서인가 그의 수필에는 달리기에 대한 그의 일화들, 생각들, 그리고 철학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심지어 달리기를 주제로  여러 개의 에세이를 엮어 만든 책도 있습니다. 달리기에 대한 그의 글을 가만히 읽노라면 하루키가 단지 달리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아니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가 달릴  그것은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삶을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가 글을  , 그것은 달리는 일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연소시켜가며 정해진 거리를  채워갈  저는 그것을 단순히 달리기가 아닌 글쓰기에 대한 메타포이자 삶에 대한 메타포로 읽게 됩니다. 하루키  자신이 그런 독해를 의도했고 그렇게 해석되기를 바랐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 말을 머릿속에서 만트라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글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감지하는 세계를 되도록 좁게 한정하려고 애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겨우 3미터 정도 앞의 지면으로, 그보다 앞은 알 수 없다.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있다. 그 앞의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도, 바람도, 풀도, 그 풀을 먹는 소들도, 구경꾼도, 성원도, 호수도, 소설도, 진실도, 과거도, 기억도, 나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물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점까지 다리를 움직인다. 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2009)


제가 직간접적으로 아는 모든 인간 중 제일 규칙적이며 근면하다고 할 수 있는 그가 마라톤 경기 중에 계속 마주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달릴 때 그는 자신을 인간이 아닌 기계라 생각하려 합니다. 그 기계가 당면한 세계는 반경 3미터가 전부입니다. 성인 남자가 서너 발자국이면 도달하는 거리와 그만큼의 시간만을 그는 생각합니다. 이미 달려온 길이나 서너 발자국 너머에서 그를 기다릴 시간과 거리는 그에게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처럼 느끼고 생각하기. 아니, 기계이므로 아무것도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냥 휘두르기만 하는 기계가 되어 버리기. 그래서 아직 닿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공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손안에 있는 것을 휘두르기. 그래서 내 샷이 샷이 아닌 스윙이 되게 하기. 그것이 하루키의 스윙법 아닐까요. 그리고 이것은 조르바의 골프 법과도, 요가의 구루들이 알려주는 마음을 비우는 비법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하기. 지금만을 살고 여기만을 살기. 몸과 마음 가득 제자리에 머무르기.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골프에서도 적용되는 핵심입니다만,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골프에서도 정말 어려운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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