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는 '프리 샷 루틴 pre-shot routine'이라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공을 치기 전 자세를 점검하거나 긴장을 풀면서 스윙을 준비하는 일관되고도 규칙적인 일련의 행동입니다. 이 루틴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골퍼마다 나름의 연습과 경험의 축적으로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류의 루틴은 골프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데, 이를테면 야구선수(타자)의 경우 스윙에 앞서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친다던가, 배트를 돌린다던가, 장갑을 땠다 붙였다 한다거나, 왼발을 든다던가 하는 식의 동작들을 하면서 스윙을 준비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프리 샷 루틴이 다음과 같습니다. 목표 방향을 쳐다보기, 볼 옆에 클럽을 갖다 놓기, 왼손으로 클럽을 잡아 클럽 헤드를 공에 정렬하기, 핸드 퍼스트를 체크하기, 클럽을 지면과 평행하게 올리며 그립하기, 클럽을 내려놓으며 다시 핸드 퍼스트 체크하기, 보폭 및 발의 위치 조정하기, 어깨를 내렸는지 점검하기 등. 잉여골퍼답게 어딘가 어설프고 꽤 번잡합니다. 많은 골퍼들이 프리 샷 루틴에서 '웨글 waggle'이라는 것도 합니다. 손목을 살짝 흔들어준다거나 테이크 어웨이를 하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죠. 이렇게 웨글을 하는 것은 스윙 전 긴장감을 완화하고 손목에서부터 시작돼 몸통까지 이어지는 몸의 경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훌륭한 골퍼가 웨글하는 동작을 보면 초보자의 눈에는 그것이 단순히 몸에서 조바심을 덜게 하려는 동작이거나, 혹은 스파이크로 더 확고한 발판을 잡으려는 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골퍼는 나도 앞에서 말했듯 더욱더 큰 목적 아래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전신의 조화를 완성시켜 가면서 샷의 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제부터 구사하려는 신체의 각부를 본능적으로 점검하여 주의를 주어, 스윙하는 동안의 동작에 대해 각 부위를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편집부, 벤 호건 모던골프, 전원문화사, 1994)
우리에게도 일상의 프리 샷 루틴이 있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 목을 가다듬고 마이크를 체크하듯, 수영선수가 시합에 앞서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어깨와 팔의 긴장을 풀듯, 바둑기사가 승부수를 두기 전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집을 세듯 하는, 매일의 성공을 기원하는 몸과 마음의 습관과 같은 동작들입니다.
저의 아침 프리 샷 루틴은 커피만들기 입니다. 사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를 만든다기보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는 표현이 적절한 정도로 저는 이 루틴을 즐깁니다. 자, 밀크 팟에 물을 끓이면서 원두를 정성스레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깨끗이 씻어둔 케멕스에 필터를 올려 따뜻한 물을 부어 데우고, 방금 막 간 원두를 두 스푼 가득 넣습니다. 때마침 요란한 소리로 끓기 시작하는 팟의 불을 꺼 물을 2분 정도 식히고 목이 좁은 주전자로 옮겨, 케멕스 위로 쪼르르 부어줍니다. 귀로는 아침 라디오 방송의 부지런한 사회자가 전해주는 간밤의 소식들을 들으며, '이제부터 구사하려는 각부를 점검하고 주의를 주어' 오늘 하루라는 멋진 스윙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문을 겁니다. "나이스 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