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닌텐도' 라는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꽤 오래전 책인것 같다. 요즘 상황으로 바꾸면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넷플릭스'로 바뀌어야 될 것 같다.
어떤 브랜드던 경쟁상대가 있다. 그리고 그 경쟁상대에 대한 정의에 따라서 우리 브랜드의 정의와 전략도 달라진다. 나이키의 경쟁상대가 아디다스 일때와, 넷플릭스 일때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BLOCK을 만들다보니 BLOCK의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그 고민의 과정과 나름의 깨달음에 대해서 나눠볼까 한다.
Wunderlist는 생산생 앱의 대명사다. MS에 인수되후, 아쉽게 서비스는 사라지고, MS To do로 통합 됐다. 처음 BLOCK을 고안했을때는 Wunderlist와 같은 생산생 앱으로 생각했다. 물론 성격은 다르다. Wunderlist는 To do 앱이다. 할일을 정리해주는 앱이다. 그런데 잘 쓰던 Wunderlist도 내 성향에는 맞지 않았다. 단순히 To do list를 관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단순히 정리하면서 의미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워낙 아나로그 타입이라 그런지 매번 스마트폰으로 업무 순위를 체크하는 것도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사용 빈도가 줄었다. 그래서 오히려 집중한 시간을 체크하는 방법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도 크지만 BLOCK을 처음 고안하면서 생각한 경쟁상대는 Wunderlist였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 한것처럼 블록 플래너는 앱이 아닌 플래너로 시작하게 됐다. 블록 플래너가 그것이다. 예정에 없던 플래너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플래너/다이어리/문구류 브랜드를 살펴보게 됐다. 그동안은 개인적인 스테디셀러인 '몰스킨 무지 노트 하드커버'와 '프랭클린 플래너'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문구 브랜드가 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크고 작은 플다문 브랜드가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작은 브랜드들의 디테일함에 놀랐다. 커버 재질, 속지 재질, 디자인에 쏟는 정성이 존경스러웠다. 사실 나에게는 이런 디테일함은 부족했다.
그렇다면 이런 플다문 브랜드가 블록 플래너의 경쟁상대인가? 경쟁상대 이전에 왠지 나도 그들처럼 해야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플래너 커버와 종이의 품질을 높이고, 더 색다른 컨셉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블록플래너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만약 블록 플래너가 이들 브랜드를 경쟁상대로 정의하면, 내 생각에는 백전백패다. 무엇보다 블록 플래너는 품질로 승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아무리 품질이 높다고 해도 알지 못하면 그것은 더 문제다.
몰스킨을 생각해보면 쉽다. 몰스킨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플래너다. 그런데 몰스킨의 품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그런데도 비싼 가격에도 몰스킨을 찾는 사람은 몰스킨만 찾는다. 나도 그중 한사람이다. 난 몰스킨 하드커버중 무지노트만 쓴다. 한권에 3만원 가깝지만, 몰스킨만 찾고, 몰스킨만 쓰고, 몰스킨만 모은다.
그만큼 플래너를 스터디 하면서 몰스킨의 품질이 내가 생각한 것의 반에 반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약간 충격이었다. 하지만 몰스킨 품질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몰스킨을 안 쓰진 않을것이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쓸것이다.
몰스킨은 다빈치가 썼다, 피카소가 썼다는 그 브랜드 스토리에 반해서 쓰기 때문이다. 몰스킨의 하드커버 품질이 내지의 품질이 좋아서 쓰는 것이 아닌 것이다. 몰스킨을 쓰는 순간 내가 다빈치가 피카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몰스킨이 블록플래너의 경쟁상대인가?
그렇지 않다. 몰스킨은 모티브다.
물론 결이 다르다. 몰스킨의 속지 디자인은 크게 특별할게 없다. 반면에 블록 플래너는 특별하다. 기존에 보던 플래너의 내지 디자인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 속지의 디자인을 활용해서 집중 성과를 높여주는 것이 블록플래너의 역할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블록 플래너를 가장 열심히 쓰는 고객층이 내 예측과 달랐다. 블록 플래너는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다. 개인적인 목표와 직장에서 목표를 계획하고, 집중하기 위한 방법론 이었다. 그런데 학생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이 블록 플래너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까지 스터디 플래너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학생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인스타그램에 #공스타그램 해시태그가 #먹스타그램 처럼 인기 있는 해시태그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터디 플래너의 존재를 알게됐다.
스터디 플래너 브랜드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모트모트' 였다. 1년에 무려 100만권이 팔린다고 한다. 학생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브랜드다.
학생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장성으로 보면 스터디 플래너가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학생 분들도 블록 플래너를 사용하면서 아쉬운 점과 스터디 플래너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주셨다.
스터디 플래너는 대부분 10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한다. 1분 1초도 잘 쓰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블록 플래너의 생각은 다르다. 이때부터가 어렵다. 그렇다면 블록 플래너의 철학은 유지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스터디 플래너로서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것이다. 대중의 인식은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천천히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터디 플래너 시장이 크니까, 이쪽 시장으로 진출하면 괜찮겠다는 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학생분들과 약속을 했다. 블록 플래너의 스터디 버전을 만들겠다는. 하지만 그전에 블록 플래너의 철학을 더 깊게 뿌리내리고, 더 많은 고객들이 그 철학을 이해하고, 블록 플래너를 사용하면서 실제로 효과를 얻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문구류를 경쟁상대로 더 많은 종류를 만드는데 집중하거나, 스터디 플래너를 경쟁상대로 스터디 버전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은 이르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누가 경쟁상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꿈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꿈을 바라본다면 블록 플래너의 경쟁상대는..
무엇보다 학생들이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6시에 일어나야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사람은 로봇이 아닌데, 점점 로봇이 되야 한다고 몰고 있는 형국이다. 블록 플래너는 이런 생각에 반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시간에 제대로 집중해서, 몰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쉴때는 제대로 쉴줄 알아야 한다. 잠은 푹 자야 한다. 그래야 오히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블록 플래너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렵다. 블록 플래너를 사용하는 많은 분들이 30분 단위가 아닌 10분 단위로 구분해 달라고 한다.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사는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록 플래너의 꿈은 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나조차도 계속 흔들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는데, 나 혼자서 안되는 생각에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말은 그만큼 블록 플래너에 대한 철학이 얕다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는 우선 '깊게 생각 하지 못하고, 철학을 뿌리 내리지 못한' 내 자신이 경쟁상대이기도 하다.
경쟁상대가 아닌 롤모델은 불렛저널 Bullet Journal 이다. 플래너를 조사하다 알게된 브랜드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점점 알려지고 있다. 조사를 하면서 불렛저널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렛저널이 몰스킨 같은 플래너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불렛저널은 플래너로도 나온다. 플래너는 독일의 유명 문구 브랜드와 협업해서 출시되고 있다. 앱도 있다. 무엇보다 불렛저널에 대한 책도 있다. 이 책이 곧 브랜드 북이다. 불렛저널은 꼭 불렛저널용 플래너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도트노트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불렛저널 방법론을 배우면 불렛저널용 플래너를 살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렛저널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쓰고 공유한다. 인스타그램에 #bulletjournal #bujo를 검색하면 각각 +860만개, +660만개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정말 환상적이다.
나는 이런 꿈을 꾼다.
인스타그램에 #blockplanner가 #bulletjournal 만큼
사람들이사용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