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밧 모험 여행 l 파미르 ⑤] 하늘 호수를 걷다
실크로드의 중심에 천산산맥이 있다. 중앙아시아와 중국 신장에 걸쳐 펼쳐진 고산들, 5,000m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곳에 가장 높은 산은 포베다(7,439m)이다. 2,555km의 장대한 산맥은 북쪽의 초원길과 남쪽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을 나눈다. 키르기스스탄은 초원길의 중심에 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이식쿨 호수와 만년 설산. 빙하가 어우러진다. 유목민들의 삶의 길을 따라 오르는 알라콜 레이크, 카라콜(Karakol)에서 하늘 호수 트레킹을 시작한다.
비수기 시즌이라서 인지 여행자들이 많지 않다. 숙소 주인께서 아침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셨다. 지도를 보고 가야 할 곳에 대해 살펴보았다. 카라콜 주변 트레킹 코스는 다양하다. 카라콜 피크(Karakol peak) BC에서는 빙하를 걸어볼 수 있다. 7개의 붉은 바위벽으로 유명한 제티오거즈(Jeti Oguz)시작해 알라콜 패스도 인기가 많다.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알라콜 호수다. 천산 산맥의 장엄함과 만년설 위에 펼쳐지는 고원의 호수를 보기 위함이다. 카라콜에서 시작해 알라쿨 호수(3,532m)를 거쳐 알틴 아라산(Altyn arashan)까지 이어지는 2박 3일의 여정이다. 트레킹의 초입 국립공원 입구까지 마슈르카(미니버스)가 운행한다. 택시를 이용하면 차가 다닐 수 있는 계곡 안쪽까지 갈 수 있어 걷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침엽수림이 펼쳐지는 초원지대이다. 15분 정도 이동하니 ‘카라콜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현지인들은 5솜, 외국인은 250솜(1$=68솜)의 입장료를 지불한다. 차이가 많이 나지만 어디든 여행자 요금이 있다고 위안 한다.
비포장길을 오르다 보니 공원 안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말을 탄 목동들이 한 무리의 소 떼를 몰고 이동한다. 입구에서 7km 정도 이동하면 첫 번째 다리가 나온다. 택시로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임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기사님이 트레킹 코스를 수화를 하듯 설명을 해주셨다. 러시아어지만 무슨 말을 하시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내게 손짓을 한다. 트렁크를 열어 사과 한 움큼을 집어주셨다 . 크기는 작지만 달고 맛이 있다. “스빠시바”
조용한 산야에 계곡물소리 깊게 울린다. 혼자만의 시간이다. 유독 말들이 많이 보인다. 친해지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멈칫 거리며 물러선다. 주변에 있는 말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숲속으로 이동한다. 울창한 침엽수림은 사이의 하늘은 파랗고 청명하다. 구불구불 숲길을 돌다 보면 넓은 계곡 평원을 지나기도 한다. 만년 설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차가운 빙하 물이 앞으로 올라갈 고도를 느끼게 한다.
배낭을 멘 커플 여행자를 만났다. 여자 친구의 짐도 만만치 않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외국 여행자들은 남.여 구분이 없이 씩씩하게 다닌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 같은 목적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의 평화로운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잠시 멈춘다. 지나가던 폴란드 친구도 함께했다.
“하이! 난 아밀라(Amila)야. 오늘 어디까지 갈 계획이야?” 그녀가 묻는다
“시로타 캠프까지 갈까 해” 프랑스 커플은 알라콜 호수 아래 유르트 캠프까지 간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발길 닿는 데까지 가다 1박을 하려고 했다. 아밀라는 사전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알라콜 호수의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밀라와 함께 알라콜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운행 거리가 늘어났으니 부지런히 가야겠다. 폴란드에서 오리엔티어링 강사로 활동한 그녀는 산을 좋아한다. 지금은 아랍에미리트항공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비슈케크에 도착하자 바로 산으로 왔다. 폴란드는 세계적인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는 나라다. 내가 좋아하는 산악인이라 잘 알고 있었다.
폴란드 산악인 예지쿠쿠츠카(1,948 ~1,989) :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히말라야 14개 봉을 올랐다. 에베레스트를 제외하고 무산소 등정을 했다. 대부분 신루트. 동계 초등이라는 모험을 추구했다 1.989년 10월 로체 남벽을 등반하던 중 사망한다. 지금까지 1,986년 오른 K2 남벽을 재등한 사람은 없다.
“그는 2인자가 아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하다”
- 라인홀트 매스너-
산과 등반에 대한 관심사가 통해서 편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갈림길에 도착했다. 러시아제 군용 차량들도 보인다. 근처 유르트 캠프에 물품을 전달하거나 사람들을 수송하는데 이용한다.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트레커들은 이 차를 타고 국립공원 입구까지 내려갈 수 있다. 계곡을 따라가면 카라콜 피크 BC에 도착한다. 알라콜 호수는 다리를 건너 경사 있는 길을 올라야 한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에서 체력적인 안배가 필요하다. 3km 정도 오르다 보면 시로타 캠프가 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여행자 유르트 캠프다. 대부분 이곳에서 1박을 한다.
평평한 초지를 다듬어 캠핑장으로 사용한다. 다이닝룸인 유르트 주변으로 개인 텐트들이 준비되었다. 텐트를 렌탈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지그 재그길을 오른다. 한발 한발 고도가 높아진다. 건너편 능선들이 눈높이에 들어선다. 반대편에서 많은 트레커들이 내려오고 있다. 큰 배낭에 캠핑 장비들을 메고 있다. 알라콜 호수까지는 4km 정도 더 가야 한다. 3,532m의 호수까지 600m 고도를 높여야 한다. 족히 2시간은 걸린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벌써 4시가 되었다. 캠프 근처에 폐허가 된 움막이 보인다. 비상 대피소로 사용했던 흔적들이다. 돌 너덜 지대가 시작된다. 바위들이 불안정하고 날카로워서 조심해야 한다. 여기저기 산 위에서 흘러내린 돌들이 쌓여있다.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눈사태 영향이 큰 위험 구간이다. 간간히 쌓인 케른(돌을 쌓아 올려 표시해 놓은 곳)을 보면서 길을 찾아간다.
눈앞에 보이는 바위산의 고개에 오르면 되는데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가다가 힘들면 뒤를 돌아본다. 낙차가 큰 폭포 위에 서면 알라콜 호수다. 물을 받아 시원하게 목을 축인다. 화산재처럼 잘게 부서진 돌길이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한 발 올려도 다시 흘러내러 제 자리다. 걷는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발을 옆으로 해서 교차해가면 수월하다. 고산 증세의 영향이 미치는 고도라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천천히 심호흡으로 급한 마음을 달랜다.
드디어 호수에 도착했다. 청록색의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천산 산맥의 연봉들. 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희열만큼이나 멋진 풍광이다. 호수를 둘러싼 바위 산들은 석양에 붉게 물들었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캠프 사이트에는 이미 많은 텐트들이 설치되었다. 3,500m의 고도라 해가 지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금세 입김이 날 정도로 추워졌다. 늦은 시간인데 랜턴을 켜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낮에 보았던 프랑스 커플이다. ‘시로타 캠핑장에서 야영을 한다고 했는데...’ 반가우면서도 지친 모습에 안쓰럽다. 텐트 마다의 빛은 별빛과 어울린다. 어둠에 적응이 되면 호수가 품은 설산의 모습도 보인다.
트레킹 2일차 : 알라 콜 호수(Alakol Lake) - Pass정상(3,900m) -알틴 아라산/(14km l 8시간 l 최고고도 3,900m)
밤새 추워서 몇 번을 깼다.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닐 수 없기에 여름 침낭을 준비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갔다. 고원의 한기가 느껴진다. 아밀라는 폴란드 국기를 들고 기념 촬영 중이다. 맑은 날씨여서 다행이다. 파란 하늘과 호수 색깔이 어울려 더욱 선명하다. 녹색의 호수는 만년 설과 어울렸다. 녹차 라테에 하얀 토밍을 얹은 것 같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멈추게 하는 곳. 알라콜 호수다.
제대로 호수를 조망하기 위해서 알라콜 패스(3,900m) 올라야 한다. 스낵바와 커피 한 잔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지대 대사면이다. 고도 때문에 숨이 차다. 또 다른 산을 넘는 기분이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능선에 섰다. 발목까지 눈이 쌓여 있다. 호수는 산의 호위를 받고 있다. 정상에 서면 유심히 보아야 한다. 커다란 호수 곁에 숨어 있는 작은 하트 모양이 있다.
능선의 양쪽으로 파노라마 뷰가 펼쳐진다. 천산 산맥이 이어지는 호수와 설산의 장대함을 보았다면 고개를 돌려 하산길을 바라본다. 몽골의 대초원과 같은 곳이다. 유목민 마을 알틴 아라산까지 하산을 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급경사 지대는 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4발 아이젠과 안전 로프를 준비하면 좋다. 패스 아래에 유르트 캠프가 있다. 반대 코스로 올라오는 경우 이곳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트레킹 시즌이라 새로운 유르트를 설치하고 있다. 하신 길은 여름의 목초지다. 먹을 것이 풍부한 들녘에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여유로움에 익숙한지 가까이 지나가도 무신경하다. 고도가 낮아지니 기온이 올라간다. 땀이 나고 덥다. 경사는 심하지 않지만 끊임 없이 내려가야 하기에 때론 지루할 수 있다. 내려온 길을 돌아보면 또 다른 풍경이다.
말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린 목동들 말 타는 모습도 능숙하다. 트레커들과 함께 알틴 아라산에서 부터 올라왔다. 무척 힘들 텐데 말들은 거침없이 오른다. 침엽수림 숲에 들어섰다. 계곡물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마을에 거의 도착했다.
트레킹 3일차 : 알틴 아라산 - AK SU 19KM/740m (19km l 4시간)
물소리, 사람, 별 그리고 청록색 하늘 호수
알틴 아라산은 초원에 있는 유목민 마을이다. 유르트, 캠핑장, 온천이 있다. 카라콜 시내까지 4WD를 이용해 바로 하산할 수 도 있다. 계곡을 따라 20여 km를 내려가면 된다. 아밀라와 하산을 기념하며 점심을 함께한다. 개인 일정으로 차량을 이용해 카라콜로 이동한다. 나는 목가적인 마을에서 휴식을 취한다.
길 위의 인연은 소중하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순간의 기록일 뿐이다. 언제나 현재형일 듯했던 여정들이 아득해진다. 물소리, 사람, 별 그리고 청록색 하늘호수. 가끔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은 보물을 꺼내면 지친 삶의 에너지가 된다.
글. 사진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