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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Oct 06. 2023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동백동산에서 떠오른 어린 시절의 우리 가족

육지에서 추석을 보내고 내려오니 날이 많이 차졌다. 날씨 페이지의 온도만 보면 제주는 서울보다 한참 따듯해 보이지만, 여름의 그 뜨거운 햇볕과 끈적한 습기가 없어졌다 싶더니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요즘이다. 오늘 새벽에는 차가운 공기에 이불을 둘둘 말아 몸을 옆으로 웅크려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오늘 오전엔 우리 가족 모두 각자의 일정이 있었다. 소망이는 9시 반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했고 아내는 10시부터 12시까지 교회 엄마 모임이 있었다. 순서대로 아이와 아내를 내려주고 나는 교회 근처 세화리의 워케이션 공간/문화센터인 질그랭이 센터에서 일을 했다.


모임이 끝난 아내와 처음 가보는 일식당에서 튀김 정식을 먹고 시간이 남아 바닷가를 산책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고는 했지만 낮에는 날씨가 더없이 좋다. 공기는 선선한데 햇빛은 따듯해서 상쾌했다.


"와, 진짜 얼마 없을 좋은 계절이다!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니까."


아내의 말에 이번엔 오름이나 산에 가고 싶어졌다. 제주에 사는 덕에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자주 접하긴 하지만 막상 여름엔 너무 덥고 습했던 터라 이렇게 날씨가 좋을 때 숲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우린 어린이집에서 소망이를 픽업한 후에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동백동산에 갔다.


동백동산에는 '먼물깍'이라는 작은 습지가 있다. 선흘리 마을 쪽 입구에서 1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아담한 습지인데 연못을 감싼 나무와 하늘이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물에는 갈대 같은 식물이 빼곡한데 햇볕이나 바람에 의해 한쪽으로 누워 있는 모양새라 꼭 근사한 풍경 사진의 한 장면 같다.


꽤 거리가 되니 유모차를 꺼내 소망이를 앉혔다. 아내와 함께 숲으로 들어가는데 금세 소망이는 "아-나줘" 하며 두 손을 내민다. 결국 유모차는 입구에 세워두고 소망이를 안고 '먼물깍'으로 향했다. 12킬로그램이 된 소망이를 안고 걷는 건 생각보다 힘이 든다. 그럴 땐 운동한다 생각하고 허리와 어깨를 곧게 펴고 발 끝에도 힘을 주며 걷는다. 소망이는 신이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곧 내 어깨 위로 고개를 떨구고 양팔에도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먼물깍' 벤치에 아내와 함께 앉았다. 소망이는 여전히 꿈나라, 아이를 안고 있느라 땀이 나지만 날이 시원해서 불편하진 않다. 동백동산이란 이름답게 주위엔 동백나무가 많았다. 


"겨울이 되면 진짜 아름답겠다, 눈 내린 숲길에 동백꽃이 있겠네."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동백꽃 하면 떠오르는 노래, 송창식의 <선운사>가 생각났다. 품에는 소망이를 안고 옆자리엔 아내가 앉아 있는 그 벤치에서 나는 <선운사>를 조용히 불렀다. 


...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송창식 아저씨는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분이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은 보통 잘 모르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송창식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송창식을 좋아했던 아버지 때문, 덕분에 어릴 적 우리 집 자동차에는 송창식 테이프가 많았고 할머니댁 같이 장거리를 갈 때면 자주 그 노래들을 들었다. 


뜻도 모르고 들은 어릴 적 노래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것도 내가 좋아해서 들은 것도 아닌, 그저 틀어져 있던 노래가 그 가사는 물론 당시의 상황이나 기분까지 상기시킨다니 말이다. 앞 좌석의 아버지와 어머니, 옆자리의 여동생, 그리고 창밖의 대관령 산길이나 밤하늘이 눈에 선한 노래... 그 노래를 이제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 아내와 내 품에서 곤히 잠든 딸아이와 함께 앉아 읊조린다.


...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노래의 마지막에는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내 어릴 적 기억이 아름다운 노래와 노랫말로 남아있다는 게 좋아서, 그 노래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장소가 고마워서, 그리고 함께 하는 아내와 아이가 행복해서 자칫 눈물을 보일뻔했다. 


감사하고 소중한 요즘이다.


2023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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