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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Oct 22. 2023

제주의 첫가을을 폭 즐기고 싶어서 떠난 서귀포 여행

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느낄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여름의 제주가 제일 별로라는 것이다. 너무 덥고 습해서 활동하기가 참 어려운 계절인데 정작 여행으로 제주에 올 때는 여름휴가철에 가장 많이 왔었다는 걸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반면에 9월, 10월의 가을 제주는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파란 하늘을 매일 볼 수 있고 시원한 공기와 따듯한 햇살이 너무나 상쾌하다. 서울과 5도에서 10도까지도 차이나는 따듯한 기후, 억새와 메밀꽃이 흩날리는 들판과 오름, 한라산 정상이 선명히 보이는 맑은 날씨에 열대바다의 반짝거림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바다까지... 한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가을을 꼽을 것 같다.


지난주에는 이 계절이 지나가는 게 아쉬워서 날씨 어플을 열어봤다. 주간 날씨를 보니 계속해서 최고 23도 최저 17도 정도의 맑은 날씨가 계속되길래 이 시기를 십분 살리고픈 생각이 들어 여행을 계획했다. 제주시에 살기 때문에 평소에 가기 힘든 서귀포를 목적지로 잡고 즉흥적으로 숙소도 알아보고 아이와 함께 갈만한 곳들을 여러 개 찾아서 동선을 짰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 1박 2일로 우리 가족은 서귀포 여행을 떠났다.


어린이집에 가는 줄 알았던 소망이는 "소망아 우리 지금 여행 가는 거야"하고 설명하는 엄마, 아빠의 말과 평소와 다른 동선을 인지하고는 신나서 깔깔댔다. 예정대로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우리는 기분 좋게 남조로를 따라 서귀포시 남원읍으로 향했다. 첫 목적지는 한 감귤농장, 귤 따기 체험과 더불어 각종 동물을 만져보거나 귤나무를 끼고 모노레일을 탈 수 있는 어린이 체험장이었다. 요즘 귤 맛을 들여서 하루에 10개도 넘게 귤을 먹어치운 소망이에게 눈앞에 펼쳐진 귤나무와 동그랗고 샛노란 귤들은 "우와~"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평소와 다름없는 식당에서의 점심식사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여유롭게 마을 길을 산책하다 보니 한라산 정상에 구름이 한 점 없다. 시야가 깨끗해서 백록담을 이루는 바위의 선 같은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와 아내는 소망이를 안고 연신 셀카를 찍었고 소망이도 신이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여행 첫날, 우리는 정방폭포와 그 바로 앞에 있는 왈종미술관에 들러 바다와 산,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해 질 녘에는 카멜리아힐에 가서 산방산이 내려다보이는 가을정원의 노을을 보며 급격히 내려가는 기온에 서로 얼싸안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7만 원짜리 작은 펜션도 모처럼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특별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제주도에 사는데도 평소 가기 힘든 동네를 여행하니 어디 멀리라도 간 것 마냥 즐거웠다.


다음날의 메인 일정은 뽀로로 테마파크, 소망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캐릭터들이 넘쳐나고 뽀로로 주제곡이 끝없이 나오는 곳이니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지 큰 기대를 안고 있었다. 테마파크 입구에서 익숙한 캐릭터들이 나타났을 때 소망이는 또 특유의 탄성을 "우-와"하고 질렀다.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유쾌한 일이 부모에게 있을까, 특히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내는 놀라움이 섞인 탄성은 잘 만든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상큼하고 청량하다. 뽀로로 테마파크에서 소망이는 수없이 많은 웃음과 춤사위를 보였고 나와 아내도 우리 가족이 경험하는 첫 놀이공원의 분위기를 맘껏 즐겼다.


가족과 함께 이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는 요즘이다. 여행이라 특별한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한 순간들도 가족이기에 빛나는 경우가 참 많다. 소파에 기대고 바닥에 앉아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을 때 달려 나오는 발소리와 반가운 얼굴, 또 아침에 잠에서 깨서 방문을 열고 나온 아이를 "쏘미!"하고 부르며 꼭 안아줄 때의 그 따듯한 순두부 같은 순간은 가장으로서 느낄 수 있는 너무나 행복한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작년과 똑같은 가을을 살았더라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특별함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마저 든다. 가족이 계속해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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