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망이 아빠 Oct 22. 2023

아빠육아의 시작

하루 한 시간 같이 보내기 힘들었던 아빠가 전업 육아 아빠가 되기까지

아이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시나요? 


아이를 키우는 대다수의 부모들에게는 아마 쉽지 않은 질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너무 적어서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갖는 아빠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독박육아'를 하며 내 시간은 가질 여유가 없는 엄마들도 있을 거예요. 물론 일과 육아 모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도 있을 거고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들을 생각하며 고민만 하고 있는 아빠들도 있겠죠. 


저희 부부는 2023년 10월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첫째 소망이는 이제 생후 26개월이 지났고 둘째 다니엘은 (태명) 연말에 태어날 예정으로 엄마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어요. 아직 갈 길이 먼 초보 엄마, 아빠지만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부부로서 또 부모로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고요.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제 배경에 대해 공유할게요.

 

저는 IT업계에서 쭉 일했습니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International Business 관련 일을 하고 싶었고 IT산업이 해외 무대에서 일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 첫 사회생활을 삼성SDS라는 IT인프라/솔루션 회사에서 시작했어요. 해외영업 직무라 중국, 인도, 스리랑카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일했고 점차 '이 넓은 세상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결국 2년을 고민한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약 10개월간 남미, 유럽 등을 여행했습니다.


아내를 만난 건 여행에서 돌아와 창업을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하며 이것저것 준비하던 때였어요. 미국에서 공부했고 대기업 출신이기도 했지만 소속도 없고 가진 것도 많지 않던 때라 나이에 맞지 않게 꽤 순수한 연애를 했던 것 같아요. 서른이 넘어서 만난 남녀가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편의점 커피를 사서 산책을 하기도 했으니 (저희 둘 다 실속 있는 편이지만) 당시의 서로의 상황 덕분에 사람과 미래를 보고 연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한 IT스타트업에서 면접 제의를 받았고 다루는 기술이나 인력 수준이 훌륭해서 미래가치가 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창업을 하기 전에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는 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결국 스타트업에 조인했고 최근까지 약 4년을 근무했어요.


4년의 시간 동안 회사는 크게 성장했고 저도 대기업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몇 차례의 승진을 거쳐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이 되어 마지막 1년은 CBO로 (Chief Business Officer) 근무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아직 서비스도 출시하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에 조인해서 회사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 투자를 받고, 서비스를 출시하고, 제휴를 맺고, 많은 유저를 획득하고, 서비스 기능을 고도화하고, 해외사장까지 진출하는 경험을 했다는 게 큰 자산이 되었어요.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고 보람도 컸습니다.


스타트업에서 바쁘게 일하던 중에 결혼을 했고 소망이가 태어났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당연히) 처음이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경험을 해왔고 때마다 새로운 도전들을 거쳐왔기 때문에 육아도 큰 어려움 없이 잘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종료 휘슬'이 없기 때문에 육아가 축구보다 힘들다고 한 박지성 선수의 말처럼 한 생명체를 24시간 케어해야 한다는 건 그동안 해온 도전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능력 있고 일 잘하면 더 빨리 많은 걸 할 수 있는 회사 일과 다르게 육아는 내 모든 시간이 온전히 투입되면서도 끝이 없으니 몸과 마음이 지치기 일수였어요.


돌이켜보면 가장 힘들었던 건 아내와의 시차였어요.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는 남편의 입장과 하루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의 입장은 서로 아무리 얘기를 한들 좁혀지기가 어려운 차이였어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서로의 고충이 있는데 그걸 반씩 나눌 수도 없으니 자칫 골이 깊어지기 쉽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밖에서 일하는 시간들이 '가족을 위한' 가장의 노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옆에 딱 붙어서 온종일 보내는 아내에겐 (가장에 대한 고마움과는 별개로) 경력 단절 없이 자기 일을 하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부러운 모습이었을 거예요.


실제로 얼마 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는 제가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수입도 크게 증가하는 게 '내 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에게는 커리어와 사회생활이라는 하나의 삶이 있고 자기에게는 육아라는 또 다른 삶이 있어서 '우리의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주말에 이야기를 나눌 때도 저는 회사일 얘기를 많이 하고 아내는 육아나 일상 같은 얘기를 많이 했었고요.


그러다가 육아 분담 문제 등으로 부딪치게 되면 서로 묻어두었던 서운함이나 상대방에 대한 생각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니 육아의 일부로 인정해 주길 바랐고 아내는 제가 더 많은 육아와 집안일을 해주길 바랐어요. 저는 인정을 바랐고 아내는 공감을 바랐습니다. 전업 육아 아빠로 8개월가량을 살아온 지금 생각하면 이제 양쪽 다 이해가 됩니다. 상대방의 삶을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육아는 그 특성상 종료휘슬도 없고 작전타임도 없기 때문에 한 번씩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고 지쳐가게 마련인 것 같아요.


소망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희 부부는 생후 36개월까지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말자고 얘기했었어요.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 자라는 게 가장 좋고 특히 그 시기에 많은 부분의 정서적 발달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유대와 사랑을 느끼는 게 가장 좋은 보육이라고 믿었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엄마 혼자 온전히 하루를 책임져야 하는 일상에서는 그게 막상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저희는 피부로 느꼈어요. 


한 번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이제 더 이상 안 되겠어'라는 한 마디의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파트 단지의 가정 어린이집이라도 보내겠다고 힘든 감정을 토로하는 아내를 달래며 머릿속이 복잡했던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모 품에서 아이를 키우자'는 다짐을 다시 한번 일깨우면서도 정작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모순을 느꼈어요. 개인적으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매일 밤 지친 아내의 얼굴과 굽은 등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여러 시도도 해봤습니다. 회사에서 여러 성과를 내고 승진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수입이 매년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베이비 시터를 고용해보기도 했고 매월 제 월급날이면 150만 원을 육아와 살림에 대한 아내의 '월급' 명목으로 이체했습니다. 물론 실제 그 가치는 훨씬 크겠지만 생활비 외에 아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일정 금액의 돈을 매월 주어 아내도 경제적인 보람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를 보육할 사람을 고용한다는 건 돈 문제를 떠나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서로의 입장차나 '내 일'을 하지 못하는 육아맘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돈은 충분조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점차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아내에게도 '내 일'을 하고 '내 꿈'을 좇는 시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나이나 연차보다 실제 성과가 중요한 스타트업에 근무한 덕분에 또래의 일반 직장인보다는 빠르게 승진을 했고 감사하게도 큰 수입을 얻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경제적인 풍요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22년 가을, 그러니까 딱 1년 전에 아내와 진지하게 새로운 삶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실행을 전제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자연이 좋은 곳으로 가서 아이를 키우자, 그래서 낮 시간엔 제가 주로 육아를 하고 아내는 다시 '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2023년 3월에 퇴사를 했고 6월에 제주도로 이사를 왔습니다. 


물론 그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36살에 직업이 없는 가장이 된다는 것, 큰 수입을 내려놓는다는 것, 익숙한 곳을 떠나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 안정과 모험 중 모험을 선택한다는 것이 아직도 '진짜 결정하고 실천한 게 신기하네' 싶을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