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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Oct 22. 2023

아빠육아의 시작 2

왼쪽에는 '돈과 안정', 오른쪽에는 '가족과 모험'을 써놓고 했던 고민

2022년 봄, 저희 가족은 제주도에서 2주 살이를 했습니다. 회사에서 특별 휴가를 받은 덕이었는데, 당시에도 제가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과 고민이 있었고 그에 대해 대표님에게도 털어놨던 터라 대표님의 배려로 그런 시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담당하는 일이 많아서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2주 간의 가족휴가는 저희에게 매우 특별했습니다. 생후 8개월이었던 소망이와 처음으로 떠난 장거리 여행이기도 했고 일상과 육아에 지친 저희 부부에게도 일종의 해방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소망이는 참 잘 먹는 아이예요. "우리 애는 밥을 안 먹어서 늘 걱정이에요."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주변에 꽤 있는데 소망이는 먹는 걸로는 저희를 힘들게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뭐가 힘들었느냐, 바로 잠이었어요. 여느 부모가 그렇듯 저희도 아이를 일찍 재우기 위해 노력을 참 많이 했었는데요, 하지만 소망이는 10시를 넘기는 건 기본, 심할 때는 11시가 넘을 때까지 울고불고 떼를 쓰다 겨우 잠들곤 했습니다. 제주도에 2주 살이를 갔을 때가 딱 그런 시기였어요. 겨우 잠에 들어도 몇 번씩 깨서 울음을 터뜨려서 아내와 저는 잠이 부족해 컨디션도 안 좋고 예민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사실 걱정이 앞섰어요. 낯선 곳에서 잘 잘 수 있을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자동차 안에서 편안하게 있을지 염려가 됐습니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소망이는 첫 제주도에서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하루종일 돌아다니니 피곤해서 저녁 8시만 되면 알아서 꾸벅꾸벅 졸았고 아침 일찍 저희보다 먼저 일어나서는 울지도 않고 혼자 놀다가 엄마, 아빠가 일어나면 생긋 웃어 보였어요. 오죽하면 그 모습이 신기해서 사진으로 남겨두었을 정도로 푹 자고 일어난 아이의 얼굴이 참 생그러웠습니다. 덕분에 저와 아내도 행복하게 보냈어요. 봄의 제주는 당연히 아름다웠고 일찍 잠든 아이 덕에 이야기를 나누는 등 평소에 갖지 못했던 시간과 여유를 누렸습니다. 


2022년 봄의 제주여행은 저희 가족에게 큰 의미로 남았어요. 그래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자연이 좋은 곳으로 가서 아이를 키우자'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그 목적지는 제주였습니다. 제 고향이 강원도라 고향 근처로 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제주는 그 특성상 아이 키우는 젊은 부부들의 이주가 많아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동체 문화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부분이 제주에 살며 느끼는 서울과 가장 다른 부분이에요.)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시기와 방안들에 대해 아내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마음 한편에 두려움은 있었지만 '가족, 특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아내에게도 '내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었어요. 삼성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던가 대기업 대신 초기 스타트업을 선택한다던가 하는 모험들을 통해 나름대로 근육이 붙어온 터라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회사 대표님께 그러한 계획들과 함께 퇴사 의사를 밝혔어요.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유대를 쌓은 관계라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을 다 터놓고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정작 마음에 큰 동요가 온 것은 퇴사 예정일을 두 달 정도 남겨둔 2023년 1월 초였어요.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가 지나간 차분한 때라서 그랬을까요? 평범한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곧 사라진다는 게 갑자기 크게 다가왔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산책을 하는데 강남 한복판의 풍경에서 월급이나 보너스, 사회적인 지위, 도시의 인프라 같은 것들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남들은 경력 단절을 걱정하는데 자발적으로 커리어와 도시의 삶을 중단하고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게 새삼 너무 크게 느껴져서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그러면서 타협 아닌 타협으로 가긴 가되 일 년만 더 채우고 가면 어떨지, 그래서 돈을 얼마 정도 더 모으고 가면 마음이 더 편하지는 않을지 같은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녁, 소망이를 재우고 아내와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저는 A4용지를 하나 꺼내서 가로로 놓고 가운데에 세로로 줄을 하나 그었어요. 그리고 왼쪽은 Stay, 오른쪽은 Go로 나누고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키워드들을 썼습니다. 쭉 쓰고 보니 결국 왼쪽은 '돈과 안정'이었고 오른쪽은 '가족과 모험'이었어요. 왼쪽을 택하면 일상에 변화를 줄 필요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생활이 이어지겠지만 제가 아이와 (그리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부족할 테고 아내는 '내 일'을 또다시 미래로 미루고 육아를 전담해야 할 테죠. 오른쪽을 택하면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특히 아빠와의 시간이) 아내의 일상도 훨씬 다채로워지겠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끊기고 경력 단절에 따른 불투명한 미래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A4용지에 글씨를 써가며 얘기를 나눌 때 사실 저는 마음 한 구석에 Stay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내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고 아내가 Stay를 얘기한다면 그 방향으로 가고 Go를 얘기한다면 역시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혼란스러우니까 함께 결정하는 파트너인 아내가 어느 한쪽을 선택해 주길 바랐던 거죠. 저희 아내는 변화를 추구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저는 아내가 Stay를 고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내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고 말했고 제주에 가면 많은 변화들이 있겠지만 그 덕에 우리가 가족으로서 더 끈끈해지는 '환경'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마지막으로 한 차례의 고심을 거듭한 끝에 저희는 Go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지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건 사람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차원이지 가족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의 가치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닙니다. 전업으로 육아를 하는 아빠로서 저는 이제 아이가 무슨 말을 새롭게 배웠는지, 어떤 언니 오빠를 가장 좋아하고 무슨 놀이를 하며 노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뽀로로 캐릭터 중 패티를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고 색깔을 가까운 사람에 빗대에 얘기한다는 걸 압니다. 도토리나 앵두 같은 열매만 보면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관찰한다는 걸 알고 하루에 귤을 기본 10개 이상은 먹고 똥도 세네 번은 싼다는 것도 당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소망이는 "아빠 아나줘-"라는 말을 많이 하고 안아주면 온몸으로 착 붙어 안기는 사랑이 넘치는 아이입니다. 넘어져서 아플 때보다 감정적으로 서운할 때 더 많이 울음을 터뜨리고 씻을 때 얼굴에 물이 묻는 걸 싫어해서 머리를 감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밤에 자러 들어갈 땐 최소 다섯 번은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고 뽀뽀를 반복한 뒤에야 침대에 오릅니다. 새벽에 깨면 옆에 누워있는 엄마를 천진난만하게 부르기도 하고 최근에는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혼자 끝까지 부르게 됐습니다. 이런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매일 아이와 경험한다는 게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파랗고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그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온몸이 다 쑤시고 특히 감정적으로 어려울 때가 많지만 ('내 자식인데도 이렇게 화가 날 수 있다니' 하며 감정을 조절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아빠육아를 하는 지금이 저는 참 소중합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생생한 이야기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아빠육아 일기를 짬짬이 쓰고 있습니다. 


전업육아 아빠로서 느끼는 것들을 기록한 일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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