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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북부_와라즈와 수도 리마

by 소망이 아빠


에콰도르 쿠엥카에서 페루 와라즈까지, 33여시간의 여정


직선거리로 800km, 거리만 따지면 그렇게 오래 걸릴 길은 아니다. 서울-부산이 500km 정도인데 4~5시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길어봤자 12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안데스 산맥을 따라가는 고산지대에 일자로 쭉 뚫린 고속도로가 있을 리 없고 쿠엥카-와라즈 (Cuenca-Huaraz) 구간의 직통 버스도 없어서 여러 도시를 경유해야 했다. 12월 13일 밤 9시, 나는 일단 쿠엥카에서 페루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구간인 치클라요 (Chiclayo) 행 버스를 탔다. (Azuay사)


내가 이용한 Azuay사 사무실의 모습. 작지만 와이파이가 잘 되어 좋았다.


비오는 밤, 타일 바닥이 빛나는 쿠엥카의 풍경을 창 밖으로 내다보다 이내 잠이 들었다. 5시간쯤 지났을까, 버스가 멈추었다. 페루 국경에 다다른 것이다. 외딴 곳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버스 안의 짐들을 검사하더니 곧 출입국 심사를 시작했다. 중남미 여행 중 참 마음에 들었던 에콰도르의 출국 도장을 받고, 여행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페루의 입국 도장을 받았다.


페루 국경 사무소의 모습. 입국심사를 마친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새로운 나라에 왔다는 감상 따위는 잠에 밀려 떠오르지 않았다.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아침 10시 반에 페루 치클라요에 도착했다. 짐을 찾자마자 바로 와라즈행 버스를 물어봤는데 예상한 대로 직통 버스는 없었다. 일단 4시간 거리의 트루히요에 (Trujillo) 가서 다시 와라즈행 버스를 타야 한단다. 페루도 운수회사 별로 사무실이 다 따로 있어서 나는 이번엔 Emtrafesa사 터미널에 가서 트루히요행 버스를 탔다.


긴 시간 운행하는 야간버스는 그나마 안락한 편이었는데 4시간 짜리 버스는 훈련병 때 탔던 낡은 버스가 떠오를 만큼 불편했다. 하지만 사람이 졸리고 배고프면 불편함 따위 별로 상관이 없는지 나는 빵이랑 과자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또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오후 5시쯤, 페루 북부의 작은 도시 트루히요에 도착했다. 전날 밤 9시에 쿠엥카를 떠났으니 20시간이 걸려서 트루히요까지 온 것이다. 터미널이라도 같은 곳이면 좋을 텐데, 와라즈행 버스는 또 다른 회사인 Movil tours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6솔을 내고 택시를 탔다.


치클라요에서 트루히요로 향하던 버스에서 본 창 밖 풍경. 바로 전에 있었던 에콰도르랑 비교하면 길거리가 지저분하고 쓰레기도 많은 모습이었다.



밤 10시 반, 33시간 여정의 마지막 버스인 와라즈행 버스를 탔다. 에콰도르의 장거리 버스는 주로 2층 버스인데 나는 발을 앞으로 쭉 뻗을 수 있다는 2층 맨 앞자리를 골랐다. 버스에서 틀어주는 영화 소리 같은 건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나 보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또 창 밖이 밝아 왔다. 12월 15일 새벽 6시, 페루의 첫 목적지 와라즈에 도착했다. 33시간 동안 세 번의 버스를 타고 도착한 와라즈의 새벽 공기는 떨릴 만큼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33시간 여정의 마지막 버스를 탄 트루히요의 Terrapuerto 터미널. 트루히요가 페루 북부 교통의중심지인가 싶을 정도로 크고 깨끗했다.
Movil tours 2층버스. 이번 여행 중 처음 탄 2층버스에서는 마치 기내식처럼 음료와 스낵을 줬는데 맨 앞자리라 앞이 통유리도 되어있고 발도 뻗을 수 있어서 좋았다.



*구간별 정보

- 쿠엥카~치클라요 : 12시간, USD 25

- 치클라요~트루히요 : 4시간, 15솔 (약 USD 5)

- 트루히요~와라즈 : 8시간, 50솔 (약 USD 16)








끝없는 절경, 와라즈 69호수 트래킹



와라즈에서는 여러 종류의 트래킹을 할 수 있다. 3박4일이 걸리는 Santa Cruz 트래킹, 빙하를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Pastoruri 트래킹, 해발 4,600m에서 코발트 블루 빛깔의 호수를 만나는 69호수 트래킹 등이 있다. 와라즈의 둘 째날 새벽 5시, 나는 69호수 트래킹을 위해 호스텔을 나섰다.

69호수는 와스카란 국립공원에 위치한 호수 중 하나인데 400여 개의 호수 중 69번째 호수라서 Laguna 69라 (69 호수) 불린다. 해발 4,600m에 위치한 호수로 만년설 바로 아래에 있어서 여기서 녹아 내리는 물이 1차적으로 모여 눈부신 빛깔을 자랑하는 곳이다. 새벽 6시쯤 와라즈 시내를 출발한 버스는 8시 반쯤 와스카란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아름다운 호수가 하나 나오고 여행객들은 잠시 내려 구경을 하게 된다. 400여 개의 호수가 있다더니, 트래킹 전에 만난 호수도 눈부신 빛깔로 우리 마음을 설러게 했다.


9시쯤 본격적으로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해발고도 약 3,900m의 시작점에서 편도로 7km 정도를 걸어 올라야 69 호수에 도착하게 된다. 사전에 인터넷에서 워낙 힘든 코스라는 후기를 많이 봐서 조금 겁먹었었는데, 충분히 할 만한 정도였다. (아마 리마로 입국해서 여행을 시작한 분들이 채 고산지대에 적응되기 전에 트래킹을 해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닌가 싶다.) 트래킹을 시작하면 한동안 평평한 초원의 오솔길을 따라 정면에 보이는 가파른 산을 향해 걸어간다. 아마존 강을 축소해 놓은 듯한 꼬불꼬불한 냇물이 흐르고 풀을 뜯는 소들과 수많은 소똥이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주장하는 듯 했다.


벌써부터 경치가 기가 막히다. 초원지대를 따라 가면 점점 웅장한 산이 가까워지고 흰 눈으로 가득한 꼭대기가 구름에 가렸다 보였다를 반복한다. (Laguna 69는 이 설산 바로 아래에 위치해서 녹아내리는 물이 이 곳으로 모인다. 트래킹 초반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저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지레 엄두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곧이어 조금씩 경사가 생기고 함께 출발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워낙 가파른 산이라 대부분의 오르막길은 지그재그로 그 덕에 이방향 저방향을 계속 볼 수 있었다. 산 꼭대기에서부터 흐르는 물은 호수와 호수로 연결되는 듯했고 그래서 등산 중에 여러 개의 폭포를 볼 수 있었다. 오르고 오를수록 설산이 조금씩 또렷하고 가깝게 보인다. 수시로 물을 마시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어느덧 산 하나를 넘었다.


전체적으로 3개 정도의 산을 넘었다. 힘에 부칠쯤 되면 하나를 넘어서 다시 평지가 나왔고 한참 평지를 걸으면 또 큰 산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마지막 산을 거의 다 오르면 어느덧 주변엔 작고 낮은 나무들만이 남고 고개를 들면 설산이 코 앞에 보인다. 뒤를 돌면 정말 이 길을 다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웅장한 풍경이 저 아래에 펼쳐진다. '이것만 넘으면 도착일거야, 그럴거야!' 하는 생각이 간절해질쯤 척박한 평지가 나오고 저멀리 Laguna 69의 코발트 블루 빛깔이 반짝인다. "우와!!!" 나와 동행 친구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지고 설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새하얀 설산, 새파란 하늘, 그리고 마치 또다른 색을 더하고파서 신께서 그 색을 달리 칠한 듯한 호수가 장관을 이룬다. 설산에서 녹아 내리는 물이 69호수로 흐르고 또 여기서 흘러 내리는 물이 올라오면서 본 다른 호수와 폭포로 이어진 것이었다. 자연의 섭리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 풍경이었다. 저 아래에 있을 땐 아마존 같은 냇가가 여기서 시작된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내가 모르는 위대한 과정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해발 4,600m에 위치한 눈부신 호수 Laguna 69, 가파른 산세에 폭 쌓여서 그런지 바람도 없이 고요했다.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고 잠시 들르는 호수, 그 빛깔에 벌써부터 여행자들을 설레게 한다.
트래킹이 시작되면 한동안 평평한 초원이 이어진다. 냇물이 흐르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평지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점점 산이 가까워 오고 가파른 설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오르면 오를수록 주변에 나무가 사라지고 점점 고산지대의 모습이 가까워진다. 설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군데군데 호수를 이루어 올라가는 길에 작은 호수를 만날 수 있다.


3시간 여의 등산 끝에 나타나는 Laguna 69. 설산과 하늘, 그리고 호수의 빛깔이 장관을 이룬다.










미라플로레스의 뜨거운 크리스마스



이론적으로 남미는 지금 여름이다. 이 큰 대륙을 하나로 묶어서 계절을 얘기할 수도 없고 특히 고산지역은 계절의 의미가 무색할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하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론 그렇다. 지구 반대편 남반구에 위치한 이곳 페루는 요즘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길거리나 가게에서 Feliz Navidad 문구나 (Happy holidays) 반짝이는 장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리마의 미라플로레스 (Miraflores) 바닷가는 그야말로 한여름이었다. 오늘 점심쯤, 나는 간단히 브런치를 먹고 San Isidro의 Javier Prado 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메트로폴리타노에 (Metropolitano: 지상에서 달리는 사실상의 버스지만 전철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올랐다. 미라플로레스는 리마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쭉 펼쳐진 해변과 번화가, 고급 주거지역이 있는 부자동네다. 역에 내려서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Bajada Balta 거리로 조금만 걸어가면 '아 여기는 완전 다른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6일간 머물렀던 숙소 근처 메트로폴리타노 Javier Prado역의 모습
Bajada Balta 거리 왼쪽으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는 공원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식당가가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지 오랜만에 영어로 된 입간판도 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거대한 맥도날드, 남미를 여행하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패스트푸드점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 걸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게 있는 곳이면 자연스레 '여기가 굉장히 번화한, 외국인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Bajada Balta 거리 왼쪽으로는 초록이 상큼한 공원이 있고 오른쪽으로 크고 작은 식당과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그새 배가 고파진 나는 햄버거를 하나 사먹고 바닷가쪽으로 더 걸어 나갔다.


바닷가에 가까워지면 언덕 위 고급 주택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산 해운대가 떠오르는 곳이었다. 언덕 위로 고급 아파트와 호텔이 들어서 있고 단지 안에는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있었다. 바다 바로 앞에 높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건물과 길이 있는 지형이라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길을 따라 좀 더 걸었다. 곧 눈이 부셔오고, 뜨거운 햇살과 부서지는 파도 때문에 조그은 뿌연 바닷가 풍경이 나타났다. 해변 바로 앞에 높은 언덕이 막고 서있어서 그런지 방금 전까지 걸었던 Bajada Balta 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래로 이어진 계단길을 따라가면 곧 저멀리 바다가 보인다.


양옆으로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람과 파도가 강한 지역이라 그런지 하늘엔 패러글라이딩 낙하산들이 날아다니고 바다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몽돌해변이라 파도가 들락거릴 때마다 수십만개의 돌들이 끝없이 재잘댔다. 눈부신 햇살과 습한 공기, 흐르는 땀과 바다냄새, 며칠 뒤가 크리스마스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뜨거운 여름의 한 컷이었다. 나는 청바지를 입은 걸 후회하며 해변에 앉아 한참동안 몽돌의 재잘거림을 들었다.


가파른 언덕 위에는 고급 아파트가 쭉 들어서 있고 패러글라이딩 낙하산도 보인다. 차들은 쌩쌩 지나도 몇미터 옆 사람들은 해수욕에 여념이 없다.












Historico 지역에서 보낸 리마의 마지막 날



중남미의 대도시들은 크게 3~4가지 구역으로 나뉘는 것 같다. 먼저 가장 오래된 중심지인 Historico 역사지구가 있고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Commercial district가 있다. 주거지역이 밀집한 '보통 동네'가 있고 마지막으로 바다나 강이 인접한 화려한 부촌이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 역시 구역마다 특색에 따라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리마의 마지막 날, 나는 Historico 지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머무르는 San Isidro 상업지구의 전철역 Javier Prado. 리마에서 가장 많이 갔던 곳이다.
Historico 광장 한 쪽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리마 대성당
광장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대통령 궁의 모습. 잔디가 초록초록하지만 곧 이곳도 크리스마스다.


보통 Historico 역사지구는 광장을 중심으로 유서깊은 교회와 성당, 정부청사, 궁전 등이 모여있다. 그래서 역사지구를 찾는 여행객들은 보통 중심 광장에 먼저 들러 정취를 느끼고 곧 주변을 구경한다. 다음날 탈 버스표를 예매하고 점심을 먹으니 어느덧 오후 1시, 나는 메트로폴리타노를 타고 리마 북쪽의 역사지구로 향했다. 가까운 역에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도심 광장이 나오는데 대도시의 광장답게 크고 화려한 첫인상을 받았다.


여느 도심 광장이 그렇듯 일단 한 쪽 면에 위치한 거대한 성당이 눈을 사로 잡는다. 중남미를 여행하다보면 금세 지루해지는 게 바로 성당, 어딜 가든 있으니 더운날 햇빛을 피할 요량이 아니면 그다지 반가운 명소는 아니다. (내게는 덕분에 여행 중에 자주 기도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되고 있지만.) 광장의 다른 쪽 면으로는 대통령 궁이 있고 나머지 두 면은 정부청사와 상가가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도심 광장, 평범한 풍경이지만 여전히 햇살이 밝고 분수대 물줄기가 활기차서 일단 광장에 앉아 숨을 좀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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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근처의 이런저런 모습들


사진을 좀 찍고 여기저기 발이 아프게 돌아다녔다. 평일엔 박물관으로만 쓰인다는 성당도 들여다보고 대통령궁을 지키는 병사도 지켜보고 상점에서 엽서랑 냉장고 자석도 샀다. 그러다 곧 대통령 궁 뒤쪽 옆으로 자리한 '페루 문학의 집'이 (Casa de la literatura Peruana) 궁금해져서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런 실내, 페루의 유명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박물관 구역과 학생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도서관 구역이 같이 있었는데 테라스에 자리잡은 이 공부 구역이 맘에 쏙 들었다.


삼청동에 가면 아기자기한 예쁜 상점들이 많다. 하지만 그에 비할 바 없는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는데 바로 정독도서관이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삼청동 메인 거리에 있지만 일단 들어가면 바깥 세상과 차단된 듯 조용하고 편안한 공기가 흐르는 곳, 그래서 퇴사 후에 매일 출근하듯 찾고 글을 쓰거나 공부를 했던 곳이다. '페루 문학의 집' 테라스는 정독도서관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바쁜 바깥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곳에 바람이 솔솔 불고,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페루 문학의 집 내부와 테라스. 평화로운 분위기의 테라스가 너무 맘에 들었는데 좋은 카메라를 가져갈 걸 후회한 날.


또 한 군데 인상적이었던 곳은 Basílic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de Lima, 샌프란시스코 수도원/성당이었다. 이곳은 몇 백년 전부터 천주교 수도승들이 생활했던 곳으로 단순한 성당을 넘어 페루 천주교사에 있어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내겐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유해가 보관된 곳이라 인상적이었다. 입장료를 내면 곧 안내 가이드가 자기 그룹을 구성해서 수도원 안을 설명해준다. 큰 규모와 화려한 내부가 제법 인상적이지만 곧 지하에서 수많은 사람의 해골과 뼈를 보면 그 인상은 잊혀지게 된다. 작은 욕조 정도 사이즈의 구덩이가 여러개 있고 여기에 해골은 해골끼리 허벅지 뼈는 허벅지 뼈끼리 모여져 있다. 딱히 땅에 뭍혀 있지도 않고 오직 해골과 크고 긴 허벅지 뼈만 가득하다. 가이드가 배경을 설명해주긴 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저 옛 수도승들이 했던 대로 보전할 뿐이란다. (수도원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수도원의 모습. 내부에 스산한 유골들이 가득하지만 겉모습만은 예쁜 아이보리 색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걸은 탓에 피곤했지만 다음날 탈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또 한참을 걸어 터미널을 확인했다.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한 터라 혹시나 다음날 아침에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랬더니 벌써 7시, 배가 고팠지만 일단 동네로 돌아가려고 메트로폴리타노를 탔다. 우리로 치면 올림픽대로쯤 되는 큰 메인도로를 달리는 메트로폴리타노, 그래서 그 풍경은 마치 서울의 퇴근길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가끔 길거리에 쥐나 큼지막한 바퀴벌레, 그리고 담벼락에 오줌을 싸는 아저씨의 뒷모습까지 보이긴 하지만...


해질녘 눈에 띄었던 핑크색 교회. 지는 해에 자기만 빛나는 듯 했다

다음날 탈 버스 정류장을 찾아 걸었던 길. 오토바이를 개조한 과일 트럭을 모는 아버지와 그 등에 매달린 아들이 옆을 지났다. 이제 이런 광경을 보면 아이보다 아버지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저걸로 생계는 유지 되는지, 이 매연 가득한 길거리를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맘은 편할지 등 오지랖을 떨었다.


다음날 페루 남부 Pisco로 떠나는 버스를 탈 정류장을 미리 확인했다. 내가 아주 어릴적 원주 시외버스 터미널도 약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밤을 기념해서 작은 사치를 부리기로 했다. 리마의 첫 날 밤에 갔던 한국식당 '아리랑'에서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일반 현지식당 가격의 2~3배를 내야 하지만 또 당분간 작은 도시들에서 페루나 중국음식만 먹을 게 뻔하니 얼큰한 국물을 든든히 먹어 두었다.


리마의 마지막 밤거리, 라면수프 맛일거라 예상한 순두부 찌개는 의외로 해산물도 많고 국물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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